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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잘 짜여진 요리 레시피처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책이며,
수면 위는 잔잔한데, 그 아래는 소용돌이가 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책이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상당히 격정적이고 치명적이면서 한 번 툭 치기만 하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긴장감을 담고 있는데,
이야기하는 방식은 요리책을 읽듯이 조단조단하다.
사랑하던 연인을 전직 모델에게 빼앗겨 버린 요리사 정지원.
그녀는 자신의 연인 한석주를 가로챈 연적을 납치하여 그녀의 혀를 자르고, 그것으로 요리를 만들어 애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대접한다.
한석주와 혀를 맞대는 입맞춤을 의식처럼 치르면서 말이다.
이 부분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에서 사다가 동거하던 기치조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그의 성기를 잘라내어 간직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사랑하는 연인을 영원히 ‘자기의 것’으로 두고 싶어했던 러브홀릭이 빚어낸 엽기를 [혀]에서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연인의 혀 요리를 먹은 한석주가 이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으나,
적어도 정지원은 애인이었던 한석주를 영원히 간직하게 된 셈이다. 마치 사다처럼 말이다.
조경란의 [혀]는 읽는 내내 붉고 축축한 혀를 상상하게 만든다.
평소에는 입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혀가 모습을 드러낼 때는 동시에 반드시 주인의 쾌락 충족이라는 목적도 함께 드러내게 된다.
먹는 행동에서, 말하는 행동에서, 사랑을 나누는 행동에서 혀는 단순한 신체 기관의 일부가 아니라 ‘본능’과 ‘생존’, ‘본질’과 ‘자아’의 표상으로 격상된다.
그래서일까? [혀]라는 제목은 묘하게 ‘미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에만 구속되어 있지 않다.
주인공에게 혀를 사용하는 모든 의식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존재를 가치있게 하는 거룩한 종교적 제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혀를 매개로 맺어진 연인 한석주는 자신에게서 절대로 떨어질 수 없고,
그 혀를 빼앗아간 연적의 혀를 잘라 제물로 내어 놓을 때에만 복수는 완성된다.
그렇지만 이런 ‘러브홀릭’은 나 같은 사람에게 엽기적으로 보인다.
정지원식 자아찾기와 정지원식 복수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인정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혀]라는 작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보여준 감각의 제의화, 감각의 격상, 감각의 독점, 감각의 환유가 내게는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요리를 잘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작가인 조경란의 마지막 말.
“다 읽고 나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나는 작가에게 낚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