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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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의 [캐비닛]은 책으로는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영화로는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이 책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시종 유쾌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만큼 평론가들로부터 작품성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고,
먼저 읽은 독자들의 서평에는 작가의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과 재미에 대한 칭송이 넘쳐났다.
하지만, 이 책은 내내 읽으면서도 서글픈 감정을 들게 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인 ‘심토머(symptomer)’들은 현재의 사회질서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과 이성으로 생각해 보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돌연변이’들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미친 사람들’과 ‘돌연변이’들을 향해 사회가 대하는 태도이다.

지금 사회가 개인이 추구해야 할 긍정적인 가치로 요구하는 것은
좋은 성적-좋은 직장-좋은 가정.... 이런 것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안정적으로 살면서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고, 쓸데없는 생각말고 맡은 바 일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반항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정말 되고 싶은 것으로 방향을 튼다.
바쁜 생활을 뒤로 하고 잠들어 버리거나(토포러), 행복을 찾아 시간의 절대성에 도전한다(메모리모자이커). 고양이라는 하급 생물이 되기를 원하기도 하고, 외계를 고향으로 생각하여 외계인과 소통하려고 한다.
자신의 생명을 완전히 은행나무에 바친 이야기에 이르면, 이들 ‘심토머’들의 반항은 극에 이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증상들은 개인별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현대의 생활, 특히 도시 생활은 사람을 얼마나 분주하게 만드는가.
물질적 성공에 대한 신화와 배금주의는 또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고 삭막하게 만드는가.
질서와 안보의 이름 하에서 획일화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습이 아닌가.
물론 일탈을 꿈꾸지만, 여러 가지 제약으로 실제 실천에 옮기지는 못한다.
여기에 반항하고 스스로의 개성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사람’, ‘사회부적응자’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아니면,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한 먹잇감이 되는 키메라처럼 돈벌이의 대상이 되고 만다.

[캐비닛]은 이처럼 거대한 현실 앞에 왜소해 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최소한의 저항을 블랙유머로 환기시킴으로서 내가 지금 처한 현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일을 해낸다.
13호 캐비닛 속에 들어가는 특이한 삶을 사는 것에 자신이 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다들 자기만의 조그마한 개성을 가지고, 작게나마의 일탈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분출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이 좀 더 많아지고, 좀 더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용인되기를 바란다.

13호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는 375명의 이 사회의 ‘심토머’들은 그 후 어떤 결말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권박사는 조만간 사망할 것이고, 권대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로 피해 버린 데다가, 키메라를 노리는 기업은 그 노력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심토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상담해 줄 사람, 함께 술마시고 생활하면서 웃고 울어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이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지 걱정과 함께 궁금함이 든다.

비록 허구인 소설 속의 이야기라 해도, 앞서 언급한대로 여기에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희생을 감내해야만 하는 이들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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