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이것 참...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사실 읽는 내내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책이었다.
예전에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 책에서는 저자(정혜윤 PD)와 나 사이에 다른 여러 사람들이 끼어 들어가 있어서였을까?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생소함이 [침대와 책]에서는 느껴졌다.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거기서 비롯된 깊은 성찰에 맞장구치고 싶기도 하고
내 독서량이야 부끄럽지만, 그래도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이 보일 때 반갑기도 하고,
때때로 마음 속 깊이 묻어둔 단어들.. 예를 들어 마르크스나 범민족대회, 차라투스트라 이런 단어들을 만났을 때는 순간적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냥 두고 페이지를 넘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말들.
성찬(盛饌)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뭐랄까. 거리감. 그래. 왜 나는 이 책에서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 걸까?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속의 글들은 왜 그런지 낯설다. 이유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그건 내 독서취향에서 나오는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따뜻함’과 아울러 ‘시원함’도 원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아울러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서 이런이런 건 마음에 안든다하고 시원하게 까주고(?),
때론 무모할 정도로 ‘뭐 이런 책이 다 있나?’라고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면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침대와 책]은 너무 착한 독서일기 같다.
자신의 삶 가운데 영향을 주었던 책과 주인공, 스스로의 성찰에 도움이 되는 책과 주인공을 모아 두었다는 느낌이 순간순간 들었고,
그래서인지 저자는 다양한 작품 속 인물, 또는 위대한 작가들의 말에 의탁하고 때때로 그 가운데로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글쓰기가 다른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최고의 강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삶을 긍정하고,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밑줄쳐가며 뽑아내는 독자들에게 정혜윤 PD는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각 장마다 붙인 제목들도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가 언제든지 경험하는 것들 아닌가.
가족이나 친구와 싸웠을 때, 또는 가족이나 친구의 하소연과 눈물을 어떤 위로의 말을 찾을 수도 없이 그저 들어주어야만 했을 때.
내가 도대체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변화하고 싶고 일탈하고 싶고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정혜윤 PD는 그런 시기마다 독자들에게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꿈을 되살려 주고, 또다른 꿈을 꾸게 해주는 글을 쓰는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함 가운데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의 시선이 놀랍다.
행복한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울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라디오 PD라는 직업 때문에 그럴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저자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최근 <시사In>을 통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 정혜윤 PD의 공개편지를 본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작가에게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원한’ 글을 요구한다면, 나는 너무 못된 사람일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말은 정말 내 머리로는 이해 불가이다.
침대=관능의 이미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