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을 날아서
프랜시스 하딩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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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문세를 좋아하는 연령대라면 그의 노래 제목으로 더 익숙한 제목이지만,
이루기 어려운 사랑을 꿈속에서라도 이루어보고자 하는 로맨틱한 노래 내용과 달리 책이 담고 있는 소재는 다소 무겁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무거움은 소재일 뿐이고, 책 내용 자체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면서도 한 소녀의 자아찾기가 흥미롭게 그려진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영국의 촉망받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랜시스 하딩의 [깊은 밤을 날아서]는 글읽기가 금지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열쇠장이 길드, 출판업자 길드, 뱃사공 길드 등 3개 길드가 지배하는 땅인 맨들리온.
왕국 전역에서는 글을 읽고 쓰고 배우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거리에 글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이라도 떨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눈을 돌려 피해야 하고, 잠깐이라도 이를 본 사람은 바로 감옥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깊은 밤’과 같은 상황에서 모스카란 한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몰래 글을 배웠고, 아버지가 죽은 후 친구인지 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클렌트라는 사기꾼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맨들리온에 들어온 모스카는 거기서 거대한 음모 속에 빠진다.
도시를 장악하기 위하여 벌이던 3개 길드와 도시 지배 귀족들 사이의 권력투쟁 속으로...

어떻게 보면 우리는 ‘글’과 ‘책’이란 것을 당연히 존재해 왔던 것처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매일같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읽을거리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글을 읽고 쓴다는 것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겉으로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어떠한 제한도 없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민중들이 책읽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서’나 ‘분서갱유’라는 이름의 제도화된 글읽기 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지식은 통제를 당하거나, 지배층의 입맛에 맞는 것으로 변용된 후에야 기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국방부에 의해 규정된 소위 불온서적이란 것을 보면 이런 제도화된 억압이 얼마나 질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깊은 밤을 날아서]의 배경인 맨들리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출판업자 길드의 승인을 받지 않은 유인물이 나돌고, 각 길드와 당국은 이 유인물을 인쇄한 불법인쇄기를 찾으려 한다.
진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자신들의 지배구조가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맨들리온의 지배층들은 서로를 배신하고 속이면서 급박한 반전을 만들어 낸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급박하게 돌아가는 맨들리온의 상황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도 들어 있다.
지배층이 말과 글을 가리고, ‘불온’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진실이 알려져 자신들이 말해 온 것이 혹시 거짓이 될까봐 두려워서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진실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고 없애려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을까?
정말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상대편에 ‘불온’이란 낙인을 찍고 권력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는지,
그리고 진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진실의 입을 막으려 하는 것이며,
그러한 노력은 성공해 본 적도 없고 자신들의 몰락을 촉진시킬 뿐이란 사실을.

입장의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문제일수록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에 대한 존중, 각자의 입장에 대한 토론과 합리적 해결방안 모색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이런 해결방법을 도덕 교과서 속에 사장시키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깊은 밤을 날아서]의 주인공 모스카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벌이는 천방지축 모험을 보면서 무척이나 유쾌하기도 했지만,
또 혹시나 우리 사회가 진실을 알기 위한 모험이 필요한 사회로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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