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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정치인이야 누구에게나 지지자와 안티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시민 전 장관처럼 지지자와 안티가 극명하게 구분되는 정치인 전현직 대통령들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하여 ‘정치인 유시민’보다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 유시민’이 더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인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입시공부에 지쳐있던 고등학교 시절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대학에 들어와 ‘책 좀 많이 볼까’하고 야심차게(!) 독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첫 번째로 읽은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대한민국 개조론]을 읽으면서 어쩌면 상반될 수도 있는 두 가지 느낌이 들었다.
첫째는 ‘역시 그는 살아 있구나’하는 감정이었다.
흔히 국민들은 그와 이념적 지향성을 같이하는 조직으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적인 사회단체를 생각하고,
반대로 정치적 대척점에 한나라당과 조중동 언론이 있음을 인지한다.
그러나 유시민 전 장관은 이들에게 “책임성 없는 진보, 일관성 없는 보수”라는 가차없는 메스를 들이댄다.
그 뿐만 아니라 헌법에 의해 국가의 권력 원천이라 칭해지는 국민들에 대해서도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눈 좀 똑바로 뜨고 사십시오!”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둘째로 느낀 감정은 좀 애매한데...
현실 정치과 행정에 참여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타협적으로 변했다는 느낌을 들게 하였다.
뭐랄까. 일반 국민이 접하기 힘든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그전까지의 모습에서 다소나마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하면 맞을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이 ‘타협’이란 것이 유시민 전 장관이 추상적인 구호에서부터 현실성을 획득한 소산임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 전 장관이 제시한 논리대로라면
지금 MB정부를 비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었다.
사실 MB정부, 또는 현재의 공무원들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국가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런 정보의 불균형성 속에서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도록 하는 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유시민 전 장관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을 ‘왕’으로 칭하고 있다.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왕이라... 무척 듣기 좋은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왕이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에 따라,
주위의 간신 모리배들과 아첨꾼들의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않고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왕이란 자리는 또한 무척이나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조선시대 절대왕권에 대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언을 쏟아낸
남명 조식 선생을 본으로 삼아서 현대 민주주의의 ‘왕’인 국민들을 향하여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때론 눈물겨운 울부짖음으로, 때론 질책으로, 때론 쓴소리로 호소한다.
이 호소는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한, 대한민국의 주인을 ‘개조하고’, 궁극적으로는 왕인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전략임을 이야기한다.
먼저 저자는 대한민국이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의 통합을 향후 국가발전의 전략틀로서 주장한다.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선택한 통상국가의 틀이 40여년간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가 그 틀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에는 너무나 늦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기왕이며 선진적인 통상국가가 되어야 하며, 그런 취지에서 한미 FTA도 추진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선진통상국가는 대내적인 사회투자국가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와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개발의 이익을 고스란히 소수의 재벌과 권력자에게만 분배했던 개발독재의 구습을 타파하고,
대한민국의 인적자질 향상과 다음 세대의 형평성 있는 출발을 위한 국가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체적인 전략틀 하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력답게 저자는 우리의 보건복지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과 비효율성을 타파해야 함을 역설한다.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고, 안정된 일자리의 욕구는 높으면서도 ‘고용없는 성장’을 지속해온 우리 사회에서 사회서비스 시장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주장한다.
모랄 해저드(moral hazard)와 급격한 재정부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의료급여제도의 개선은 결코 차별적인 것이 아니며, 무상의료제도은 실현가능성이 없음을 말한다.
다국적 제약기업과 미국 정부의 요구보다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국민의료비의 안정을 가져오는 약가정책이 선별등재목록이었으며, 이를 관철한 것이 한미 FTA의 의약품 분야 협상결과였음을 술회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 즉, 노인부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제도에 대해서는 국민적 저항이 있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전면적인 개혁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보건의료에 다소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개인적 입장에서 본다면 몇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당시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지금의 경제위기 시기를 맞아서
이 위기를 극복할 때까지라는 단서조항을 달더라도 저자의 주장과는 다소 다른 형태의 보건복지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유시민 전 장관에게 ‘충신’이라는 호칭을 아끼지 않으련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사리사욕을 돌보지 않고, 선공후사를 실천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사람에게 ‘충신’이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나는 그의 용기와 실천력, 솔직함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좀 더 정치적으로 표현하자면 만약 내가 사는 지역구에 출마한다면 당연히 한 표를 찍어드릴 용의도 있다.
우선 바라기는 유시민 전 장관과 같은 용기와 소신이 우리 정치계와 국민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지한 논의의 주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고,
그 논의가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국가의 안정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타협하고 협력하는 모습으로 열매맺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