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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
최복현 지음 / 휴먼드림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극히 적은 책”이라는
고전에 대한 웃지 못할 정의는
두껍기만 하고 어딘지 모르게 재미는 없을 것 같고,
시험에 나온다니까 읽긴 읽어야겠지만, 시간을 투자하기에는 그다지 내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고전’이 가지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선입견을 극복해보기 위해서인지
문학평론가나 작가들, 때론 문학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영역의 유명인사들도 자신만의 고전을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전읽기를 권하는 책을 많이 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도 읽기 전에는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진 책의 한 종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읽으면서 몇 가지 점에서 다른 책들과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문적인 이론이나 미사여구에 가득찬 수식보다
실제 생활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한 번씩은 경험해 보았을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쉬운 글쓰기를 통해서 고전을 소개하는 분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최복현님처럼 ‘아. 내가 이 사람과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친숙한 글을 쓰는 경우는 쉽게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 친숙함은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저자의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저는 그 어떤 책소개보다 다음 부분이 가장 좋았고, 실감이 났습니다.
가끔은 로또를 사곤 한다. 그렇다고 제대로 한 번 당첨된 적은 없지만 로또 한 장 사서 주머니에 넣어두면 며칠간은 그런대로 희망을 가지고 산다. 기왕이면 월요일에 구입하면 일주일은 그런 기대할 할 것이고, 토요일 쪽으로 가까울수록 기대와 설렘의 시간은 줄어들므로 기왕이면 월요일에 사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229)
전 윗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어떤 고전문학 소개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
그렇지만 지금 2009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사실 술자리에서 친구들하고나 할 이야기이긴 하되, 공개적으로 책에 써서 말하기는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이런 이야기들로부터 글을 써주셔서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냥 따뜻한 이야기로만 일관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긴장이 건강에 더 좋듯이,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다 생동감있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3장 <여러 사랑의 색깔들> 부분이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연인간에, 또는 가족간에 사랑이야 말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세상의 더러움과 고통을 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랑에 대한 고전도 ‘낭만주의’에 걸맞는 작품들을 선택할 것 같은데,
의외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적과 흑], 사랑에서 준거를 찾지 못하는 [보바리 부인], 사랑이란 미명에 가려진 추악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목로주점]과 [비계덩어리], 사랑의 상실을 보여준 [에덴의 동쪽], 비정상적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오디푸스 컴플렉스가 나타난 [아들과 연인들] 과 같은 ‘자연주의’ 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최복현님은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여유롭고 따뜻한 눈길을 가지고 고전을 보고는 있습니다만,
자연주의 사조의 가장 큰 미덕이 그렇듯이 저자는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 ‘차가운 머리’도 잃지 않은 듯 합니다.
이런 생각은 뒤이어 나오는 제4장 <삶의 모순들>에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고전작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완전히 저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랜만에 인생의 선배로부터 차를 마시며 편안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후배로서, 또한 나름대로 고전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극히 적은 책’이라는 고전과 독자들의 간극을 좁히는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지속되면서
어렵고 딱딱한 책이라는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불식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밝히고 인간이 걸어갈 길을 제시해주는 좋은 고전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