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아이 -상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7년전, 후다미 소아종합병원 아동정신과에서 세 명의 아이가 만나게 된다.

‘구사카 유키’는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입원한 후,
세면장에서 호스를 휘둘러 자기 몸에 물을 뿌리는 이상행동을 보인 후부터 별명이 루핀(돌고래의 약칭)이 된다.

‘아리사와 료헤이’는 부모의 이혼과 학대로 아동정신과에 입원한 소년이다.
그의 별명은 지라프(기린)였는데, 엄마가 담뱃불로 온몸을 지진 흉터가 기린과 같은 무늬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세 쇼이치로’ 역시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문란한 생활로 입원하였다.
그 시절 별명은 모울(두더지)이었는데, 그것은 그는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세 명의 아이가 퇴원하기로 되어 있던 날, 병원의 전통이던 퇴원 기념 등산 행사 도중에 추락사고가 일어난다.
그리고 세 명의 아이는 흩어지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셋이면서 하나일 수밖에 없는’ 세 아이의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이들은 17년 후 29세의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고, 이들 주위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마치 어린 시절, 이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상처에 대한 보복처럼...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는 유키(루핀), 료헤이(지라프), 쇼이치로(모울),
이 3명의 아이들이 12세였던 시절 아동정신병원에 보낸 약 1년간의 생활과
병원에서 퇴원한 후 29세의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생활을 교차시키면서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상처와 그 상처로부터의 구원에서부터
아동학대나 치매 노인의 돌봄, 가족의 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병리의 문제까지를 한 작품 안에 녹여내고 있는 책이다.

2000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뒤에 벌어질 일이 너무나 궁금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줄거리에만 빠져들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때는 세 명의 아이가 받은 ‘아동학대’에 대해서 혼자 흥분하고,
그런 학대를 너무도 당연하게 행하는 소설 속의 부모들을 향해 혼자 울분을 터뜨리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번에 [영원의 아이]를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그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픔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아마도 그동안 익숙한 것이 갑작스럽게 낯선 것이 되어버린 ‘낯설음’에 있지 않을까 한다.
살아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낯설음은 큰 공포가 되고,
익숙한 사람들 대신에 낯선 사람들 속에 들어갈 때, 익숙한 장소와 풍경 대신에 낯선 장소와 풍경 가운데 있어야 할 때 공포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가족은 어떨까?
우리들의 머리 속에는 가족은 가장 익숙한 것, 그래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고 따뜻함을 느껴야 하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익숙한 가족의 모습이 깨어질 때, 그로 인한 공포는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특히 가장 큰 사랑을 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일어나는 학대는 가족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와 저주, 죄의식을 남기게 된다.

아동소아과에서 만난 유키, 료헤이, 쇼이치로는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초가을 밤,
병원 근처 숲 속의 거대한 녹나무 구멍 안에서 자기자신과 가족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을 공유함으로써 구원의 실마리를 찾는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놓음으로써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힘들게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구원을 위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
그 선택은 또다른 마음의 상처를 새기고 마는 계기가 되고, 결국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이들의 삶을 비극으로 이끌고 간다.

이들은 각자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였다.
업무에 헌신하면서, 금욕적으로, 일에 충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고, 칭찬을 받으려 하고, 어떻게든 세상을 헤쳐보려 하였다.
이 과정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이렇게 아픈 마음을 움켜쥐고 살아가는데, 너무도 몰라주는구나'하는 안타까움과..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남긴 아픈 상처가 서로에 대하여,
그리고 주위 사람들(다른 가족, 연인, 직장동료..)에 대하여
서투른 인간관계의 표현으로 나타날 때의 안타까움이 뒤섞인 채로 말이다.

텐도 아라타가 그리고 있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가슴 아파서 읽는 도중 몇 번이나 책을 덮도록 만들었다.
주위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일반적인 성장소설의 범주와는 180도 다른,
죄의식과 증오 속에서 파국으로 달려가고 마는 성장의 경험.
그 성장이 가져온 마지막 비극의 장면을 읽으면서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애써 참아야 했다.

아동학대와 가족의 붕괴가 이제 더이상 어쩌다 한번씩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뉴스의 수준을 벗어난 지금의 사회.
그러면서도 이들에 대해 무엇이 올바른 치료와 구원인지 아직도 서투르기만 한 우리 사회.
나는 개인적으로 어릴 때 함께 비밀을 나누었던 곳으로 돌아온 료헤이의 마지막 독백.
그 독백이 아동학대, 또는 가족의 붕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와 구원의 힘을 줄 수 있는 말이 되었으면 한다.

셋이서 같이 얘기했었지. 녹나무에 팔을 두르고, 셋이서 울었었어.
그 후에 구멍에 들어가 손을 마주 잡고, 서로 몸을 꼭 껴안듯 기대고,
우리는 줄곧 같은 말만 나누었던 것 같아.
우리는 오직 이 말만을, 오로지 이 한 마디 말만을 주고받았었어.
“살아 있어도 괜찮아. 너는 … 살아 있어도 괜찮아. 정말로, 살아 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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