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파스칼 메르시어의 [레아]..
며칠 동안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생각난 것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는 중산층 가정이지만, 안으로는 고통받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밤으로의 긴 여로].
마찬가지로 이 채, [레아] 역시 겉으로는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듯한 사람이지만,
안으로는 잠시 동안의 쉴 여유조차 없는 급박하고 목말라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태워 자신의 생명까지 대신하고 만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가 죽은 이후 침울하게 지내던 레아는 우연히 길거리 바이올린 연주를 듣게 되고, 운명처럼 바이올린에 빠져들게 됩니다.
점차 자기 안에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재능을 발견하는 레아. 그러나 첫 번째 콘서트에서 그만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이후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과 자기 충족감,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실력을 한 계단씩 발전하던 레아는 생모리츠서 열린 콩쿠르에서 다비드 레비라는 당대의 바이올린 교사를 만납니다.
레비의 지도 하에 ‘마드모아젤 바흐'라는 칭송까지 듣는 레아. 그러나 레비를 사랑하던 레아는 그의 배신으로 충격을 받고 무너져 내립니다.
그 모든 과정을 불안 속에 바라보던 아버지 반 블리에트는 자신의 연구비까지 횡령하여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인 과르네리 델 제수를 얻기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파국과 파멸의 시작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일생에서 관계망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들은
순간순간의 삶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선 그 사람의 일평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관계맺음’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기술인지라,
이것에 능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여기에 무척이나 서투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관계맺음에 서투르고, 잘 풀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르시스처럼 자신만을 사랑하거나,
또는 반대로 에코처럼 특정한 대상만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강박적인 의무로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보임으로써 인간관계의 미숙함은 더욱 깊어집니다.

평행선이 교차선보다 그나마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그래서 깨어질 염려가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레아]에는
평행선이 아니라 마주보고 달리는, 그래서 언젠가는 교차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모두 인간 사이의 관계맺음에 서투른 사람들.
비극적인 것은 이 두 사람의 겉모습과 속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뭉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면 깊숙한 곳에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마음을 숨겨놓고 표현하지 못합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그런 사람을 위해 무엇이나 해주고 희생하고자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그런 희생과 마음씀씀이가 가져오는 속박을 못견뎌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 두 사람이 딸과 아버지의 관계라는 것.
이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의 파국과 모두의 파멸을 예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레아]는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자신과 주위에 솔직하지 못한 덕분에,
때론 자신과 주위를 속이려고 하는 덕분에 스스로를 나락에 밀어넣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어쩌면 이런 기만은 우리들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정도로 그 기만이 심각한 것이냐, 아니면 소주 한 잔 마시면서 내뱉는 솔직한 토로와 함께 해소할 수 있느냐 하는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요즘에는 자신에 대한 강박관념과 의무에만 충실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마치 레아가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자부심이란 의무에, 블리에트가 아버라는 자신의 신분적인 의무에 속박당하여 부녀간의 솔직한 소통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풀사이즈의 바이올린을 구입한 후 파티를 열기로 했으나 초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레아.
딸로서 사랑하지만, 애초에는 자녀를 키울 책임감을 두려워했고, 가슴 속 깊이 ‘이 딸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
이런 삭막하고 비극적인 모습이 의무감에 빠진 현재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소통이란 것이 중요하고,
그 소통의 첫 번째 조건은 자신만의 의무를 내려놓을 뿐만 아니라
그 의무만이 신성한 것이다라는 아집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기만의 의무는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을 재단해 버리는 오만과 독선과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의 자기의무 충족감은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파스칼 메르시어는 책 첫머리에 쓴 고대 아르메니아의 묘비명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 감정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 위에 드리우고, 그들은
그들의 그림자를 우리 위에 드리운다.

그러나 그들이 없다면
우리 인생에는 아무런 빛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 사이의 소통의 문제는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가 전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이야기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내 옆에 앉게 될지 모르는 ‘기차여행’이라는 미지의 여행에서 함께 목적지까지 가야만 하는 다른 손님과의 소통말입니다.

[레아]에서 소통에 실패한 딸과 아버지는 모두 비극적인 삶을 살았고,
이것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메르시어의 다음 작품에서는 이 소통이 구원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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