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전쟁은 모든 것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배자들에게 전쟁은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실현시켜 주는 도구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애국심과 투쟁심을 고취하기 위한 온갖 번지르르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여 배제시키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렇다면 일반 민중들에게 전쟁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전쟁은 합목적적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어쩌면 그저 자기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총칼을 들고 직접, 또는 후방에서 지원하며 간접적으로 나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재산과 삶의 터전은 물론이고 생명을 잃을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사건이 건강이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지배자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민중들은 자신의 최소한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에 ‘끌려들어간다’

 

이탈로 칼비노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이처럼 전쟁에 ‘끌려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전쟁은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매춘부인 누나와 함께 살고 있던 주인공 ‘핀’은 누나를 찾아오는 독일군에게서 권총을 훔친다.
권총을 자신만의 장소인 ‘거미집’에 감춘 핀은 감옥에서 탈출하여 독일군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들의 유격대에 속하게 된다.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독일군과의 격렬한 전투에서 한 발 물러서 있던 어느 날
핀은 유격대를 떠나 권총을 숨겨두었던 거미집으로 향한 오솔길로 돌아온다.

 

핀이 속했던 레지스탕스 유격대의 사람들은 ‘이름’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나오듯이
한 인물이 가지는 이름은 고유명사로서 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사촌, 오른팔, 왼손잡이, 헌병, 공작, 후작, 남작, 펠레 등등 비아냥의 뉘앙스가 담긴 그들만의 불리워진다.
그들에게는 레지스탕스라는 정체성도 부족하고, 공산주의든 파시즘이든 사상적 기반도 없었다.
그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었고, 오히려 전쟁에 방해만 되는 쓸모가 없는 낙오자들이다.
이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가 가진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왜 싸우는 것일까?
자신이 더 이상 창녀의 동생이 되지 않기 위해 싸운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
그리고 ‘남부 출신’의 네 동서들은 가난한 이주자이며 이방인으로 비치는 ‘남부 출신’이 되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저 헌병은 자기 동료들과 붙어 다니는 똘마니, 헌병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사촌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배반한 여인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우린 모두 비밀스러운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운다.
(page 161)

 

나는 개인적으로 칼비노가 말한 ‘상처’는 ‘희망’과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벗어나고자 하는 상처란 것은 곧 새로운 자신의 희망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핀이 숨겨놓은 권총은 상처의 의미 뿐만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으로 수호하고자 하는 마지막 희망의 근거를 의미하는 것이며,
허구일지도 모르게 환상적으로 그려진 ‘거미집’은 전쟁이란 피폐상황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한 구석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자기가 숨긴 권총을 생각하여 힘을 얻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자기 정당성을 찾는 핀의 모습에서
총칼을 들지 않았다 뿐이지 ‘생존전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현재의 전쟁에 끌려나온 우리의 모습도 투영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핀이 마음을 연 진실된 친구 사촌을 얻어서
그 마음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공유하며 캄캄한 밤을 밝히는 반딧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듯이
지켜야 할 희망의 근거를 공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전쟁’ 속에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