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성격이 못되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블랙코미디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주인공들에게 다가오는 ‘운명의 장난’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사회가 가진 모순이 충돌해서 발생한 것이거나,
인간 본성의 약점에서 기인한 것임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는 어쩌면 소설이라는 일종의 허구를 그토록 오랫동안 존재하게 했던 힘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은 인간 본성에 숨겨진 추악한 양면성과,
그 양면성이 사회적 위치와 결합되어 나타난 도덕이나 사회적 모랄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그야말로 신랄하게 까고(!!!) 있는 시원한 작품입니다.

구조주의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사회적 현상 뿐만 아니라 그 현상에 대한 해석이란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것이라고 파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듣고 있는 도덕 역시 교묘하게 ‘구성되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죠. 착하게 살아야 하고,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만합니다.
그런데 ‘국민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살아야 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오면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군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나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데모나 파업은 나쁜 것이다’라는 도덕에 오면 이것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도덕이나 사회적 규범이란 이런 것입니다.
누가 주장하느냐에 따라서,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서, 또 누가 그것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모두 ‘비도덕적’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고,
또 이지메 현상에서 보이듯이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집단적 폭력이 가해지는 광기로 치달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암스테르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도덕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도덕의 위대함은 다른 상대방이 가진 도덕의 정당성 앞에 빛을 잃게 되고 위선으로 몰락해 버립니다.

클라이브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세계,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따라서 각자의 다른 취향을 인정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라는 대중매체로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하는 버넌의 행각은 부도덕합니다.
그럼 클라이브가 행한 일, 즉, 강간미수범을 신고하지 않은 일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도덕성으로 가려질까요?

버넌은 언론인으로서 공인인 외무장관의 독특한 취향을 알리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도덕적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황색저널리즘으로 비하하거나, 불의를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 이런 버넌의 고상한 도덕성 이면에 외무장관 개인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죠?

조지에게 아내인 몰리와 과거에 사귄 남자들은 모두 부정직한 사람일 수 있겠죠.
‘결혼의 신성성’이라는 신화와 같은 도덕율을 어기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조지가 취한 사진의 공개라는 조치는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거기다 재력을 바탕으로 한 특수관계를 이용해서까지 말이죠.

외무장관 가머니는 자칫 사회적 생명을 잃을뻔한 위기를 아내의 도움으로 일단 극복합니다.
클라이브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그의 취향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지나 아내인 로즈 앞에서는 어떨까요? ‘남의 아내와 놀아난 놈’이라고 비난한다면 가머니는 무엇이라 답합니까?
자신과 관련없는 아내의 힘으로 자기의 책임을 모면한 것은 고도의 이미지전술이 아닐까요?

그리고 버넌을 배신한 프랭크나 버넌의 성공을 배아파하며 떡고물이라도 기대하다가 일순 도덕의 투사로 변신하는 다른 언론사들도
자신이 외치는 도덕의 그림자 속에 지저분한 자기합리화와 자기정당화를 숨겨놓고 있을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지막 배경으로 ‘암스테르담’을 선택한 것에 대해 서평을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 지적대로 네덜란드는 안락사, 낙태, 동성애, 매춘 등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안락사, 낙태, 동성애, 매춘에 대한 도덕적 잣대는 어떻습니까?
전통적인 도덕에서 이런 일들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그야말로 ‘비도덕적’인 일들입니다.
입으로 지고지순한 도덕을 외쳤던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곳에 들어가서, 가장 비도덕적인 방법인 ‘살인’을 통해 자신의 솟구치는 분노와 복수심을 해결하여 했다니...
역설적이지만, 그 도덕은 근거가 얼마나 허위적인 것이었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순간적이든 일정 기간이든 ‘비도덕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게 불완전한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라인홀드 니버가 그의 명저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도덕적인 세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이나 배척 이상의 ‘변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마음과 행동만은 잊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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