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김현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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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설렘보다는 불안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그 얼굴은 이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나를 친구처럼 여겼고, 인생에 관해 진지하게 얘기할 줄 알았다. 타국살이의 만만치 않음을 통해 그는 무르익었다.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을 앞에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란 어떤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일까. 못 먹던음식을 먹게 되거나 속내와는 다른 감정을 표출하는 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길 줄 아는 온유함, 지금 해야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 단호함, 나의 생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가늠해볼 줄 아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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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김현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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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그늘이 되어주려는 사람과 식물에만 그늘을 보여주려는 사람은 분명 다른 여름을 산다. 젊은 부모가 실평수가 스무 평도 채 되지 않는 연립주택을 그토록 식물로 채워놓으려고 한 건 마음의 허기를 어쩔 줄 몰라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식물 한가운데로 처음으로 동물을 들였던 부모는 자식들에게 종종 말하곤 했다.
"저 개만도 못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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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교육 민음의 시 260
송승언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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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들어왔다가 어디로 나가는
내가 나였다가 나 아니게 되는

비 온 다음 날 길 위의 웅덩이들처럼
다음 날의 다음 날처럼
네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는 나 있을 때

혀가 슬슬 망가지고
시는 이미 망가졌고

길에서 나 붙잡은 사람이
당신이 묻힌 뒤 당신은 어디로 갈 것 같냐고 물을 때
어디 안 가요 대답하고 네가 있던 방으로 갈 때

망가지지 않는 죽음이
어떤 추상에서 벗어나
어떤에서 벗어나
오늘 오후 구체적으로 내 무릎 위에 포개어질 때

- 「문틈에서 문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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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교육 민음의 시 260
송승언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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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먼저 끌어내 줘요.

나의 말을 기다리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기 전에
천국에 묶여 있는 개를 만나기 전에
올해의 첫눈이 내리기 전에두 눈동자가 새하얗게 뒤덮이기 전에
입술 사이로 더운 숨결이 들어오기 전에
당신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기 전에
최종 단어를 발음하기 전에
싸늘한 손을 내밀기 전에
그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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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겠네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그후로 뭔가가 사라졌어요. 성공하고 싶은 마음, 뭐 그런 것들이요. 사람들한테는 고시 공부중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해요. 청년이 말했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거라고,
딸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얼음땡 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혼자 얼음이 되었다고. 그후로 나는 딸과 얼음땡 놀이를 자주 했다. 아침에 딸을 깨울 때도 그랬다. 딸이 얼음이라고 외치면 내가 땡 하고 말하며 딸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나는 청년에게 말했다. 그때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얼음 하고 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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