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기 위해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낮이 길어지면 지루해서 하품을 해댔다 봄 안에서 봄을 기다렸다 보지 않은 것처럼, 아직 볼 게 남은 것처럼 밤은 남몰래 어두워졌다.

봄밤에는 산책하는 연인들이 있었다 모래알들을 밟으며 앞길을 내다보았다 막막했다 눈썹달을 바라보며 좋은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봄이 코앞이라고 믿기로 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봄을 기다렸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까마득하구나

- 「봄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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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에게도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이 어리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선반 위에 있는 사탕 단지에 가 닿을 수 없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어른을 앞지를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파악하는 순간이. 자신의 손가락으로는 버스의 벨을 누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억울해서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순간이. 온몸으로 우는 순간이. 개개의 손가락이 파들파들 떨리는 순간이.
열정이 늘 꿀단지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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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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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떤 아이들은 세상만사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른들은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을 흉내내고있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일찍 알게 되기도 하는 법이다. 

- 「꿈, 잠자리,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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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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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문학이 양립할 수 없는 거라면,
나는 행복의 뒷모습을 배웅하면서, 문학 쪽에 서 있을 거다.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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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은 결코 목표를 향해 돌진하듯 써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쓰고 싶은 대상 앞에서 망설이고, 자주 기다립니다. 매일 겪어온 아침을 처음 겪는 아침인 듯 다시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을 질문합니다. 많은 것이 적은 것이 될 때까지, 긴 것이 짧은 것이 될 때까지 두리번거립니다. 쉬운 길을 찾는 대신다른 길을 만들어 봅니다. 느린 속도로, 불편함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움직이게 합니다. 모든 좋은 시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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