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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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 <아낌없이 뺏는 사랑> 리뷰


 Imageⓒ aladin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아자르는 본인의 책 <자기 앞의 생>에서 '사랑에 미쳐본 자들만이 생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말한다. 그렇게만 본다면, 피터 스완슨의  이 책은 '사랑에 미친' 어떤 남자의 우여곡절을 그린, 조금은 '기이한' 로맨스 소설이다. 아니,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로맨스는 쏙 빠지고 스릴러와 추리물만 남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 예삿일이다. 이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베스트셀러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작가 피터 스완슨의 신작인 <아낌없이 뺏는 사랑>에 대한 요약이다. 제목부터 남다른 이 책은, 첫사랑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호구가 되어버린(?) '조지 포스'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아낌없이 '빼앗긴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도, 신분이 보장되는 아늑한 삶도, 그리고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조금은 안타까운 주인공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뒷장이 궁금해 페이지를 급하게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평범하게 생겨서?" "그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조지 포스는 잡지사에서 일하는 회계사원이다. 그에게는 같은 잡지사에서 일하던 여자친구도 있다. 이렇게 평범하고 지루하고 그래서 가끔은 남의 일에 참견이라도 해보고 싶을 만큼 조용한 그의 일상에, 난데없이 대학시절의 첫사랑이 돌아온다. 근데 이 첫사랑이 조금 이상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청순하고 가련하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가끔은 생각이 나서 다른 일을 멈추게 만들 만큼 먹먹한, 그런 이미지의 여인이 아니다. 그녀는 오래전 대학시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그길로 사라졌었다. 감쪽같이. 그런 그녀가 갑자기 눈앞에 돌아오니 주인공으로서는 어리둥절하는 동시에, 그녀를 잡고 싶을 뿐이다. 오랜시간 사라졌던 일을 해명하기에 앞서, 갑자기 곤경에 처한 자신을 도와달라는 그녀(리아나)의 말에 조지는 홀린 듯이 그녀의 일을 돕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극이 시작된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고, 조지는 애써 그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까 구룡에서 리아나는 아이린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조지가 아는 한 리아나는 아이린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저녁 리아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왜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을까?


- p. 109


우리가 틀에 박힌 것처럼 생각하는 대학 첫사랑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뭉치에 궁지에 몰리면 사라지기 일쑤인, 묘한 느낌의 여인이 조지의 첫사랑이라는 지점부터 불안감이 스친다. 하지만 조지는 그녀와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그녀의 비이성적인 부탁에도 어쩔 수없이 말려들고 만다. 그렇게 또다시 살인사건에 연루된 리아나와 그녀의 일을 도와주다가 경찰조사를 받게 된 조지의 동행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감이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어버리는 조지의 답답한 태도에 화가 나다가도, 당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을 꼬아내기만 하는 리아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Imageⓒ 푸른숲_가제본_아낌없이 뺏는 사랑


이 책은 두 개의 시간이 병행하여 전개된다. 하나는 거의 십년만에 리아나를 다시 만나 비극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조지의 현재를 비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아나와 조지가 처음 만나 사귀게 된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다. 작가는 이 두 개의 시간을 병치하여 보여주면서, 신원을 속인 채 학교를 다니며 살인사건의 용의자로까지 지목된 리아나와 조지의 파국의 시작점을 보여준다. 사실은 주인공이 알고 있는 로맨틱한 첫사랑의 기억은 거진 대부분이 날조된 것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순수했을 것만 같았던 대학생 시절부터 무언가 잘못 되었던 리아나의 실체를 확인하면, 이 책이 다소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계속되는 반전에 또 다른 반전이 더 있을까 싶어, 책의 뒷장을 자꾸만 흘끗흘끗 넘겨보게 만든다. 순식간에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리아나의 이야기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드리가 다시 자기 이름을 찾고 싶다고 했을 때 네 기분은 어땠어? 

넌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 텐데."


- P. 238


첫사랑에 대한 발칙하고도 무서운 상상

공부도 외모도, 그 특유의 매력으로도 빠지는 데가 없었던 리아나가 이토록 삶을 파국으로 치닫도록 설계하는 데에는 그녀 삶에 대한 비관이 있다. 가난하고 별볼일 없으며, 빈민촌에 살며 성상납까지 해야만 했던 리아나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어쩌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녀가 조지를 끌어들였던 것도, 어린 시절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도, 그녀 자신이 원하는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한 비정상적인 욕망 때문이었음을 책의 뒷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 자기것으로 만들고 나서도, 계속해서 쫓기는 삶을 사는 리아나는 결국 다시금 사라진다. (조지는 그녀가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는다) 죽음으로 처리되어서라도 다른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리아나가 책 속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등장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책을 덮었다.


"넌 마치 사람은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 다른 신분으로 살 수 있다는 듯이 말하잖아.

그렇게는 안 돼. 

원래의 내가 싫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린 여전히 그런 사람인 거야."


"언제든 다른 신분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냐. 

변한 모습이 진짜 나라는 거지. 

영화에서처럼. 

모든 걸 지어냈다 해도 그게 룰루의 실체잖아."


- p. 287.


피터 스완슨의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비이성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지라도 감정이 뒤섞인 상대가 하는 말을 이성적으로 듣기란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랑에는 단순히 주고 받고, 고마워하고 그리워하며, 이별에 아파하는 잔잔하고 정상적인 루트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아닐까. '아낌없이 빼앗아 상대를 말라죽이는 사랑'도 과연 사랑이라 믿을 수 있을까. '첫사랑'에 대한 조금은 발칙하고 무시무시한 상상. 피터 스완슨의 책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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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정치의 시대
한홍구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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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정치의 시대 :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리뷰


Imageⓒ 네이버책


시작은 학생들의 작은 시위였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불공정한 성적평가에 대해 규탄하며 일어난 몇몇 학생들의 무리에 불과했다. 처음엔 그저 타인의 기회를 빼앗아 자기 밥그릇을 채우는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려니 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일은 우리 사회에 아주 오래 전부터 뿌리내려 왔던 관습, 어쩌면 악습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번도 저번과 같겠지. 달라지는 것 없이 소리를 내지르는 이들의 목구멍만 아픈, 그러나 결코 변하는 것은 없는 뉴스 몇 줄에 지나지 않겠지. 누구도 오랫동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겠지, 라는 생각. 


하지만 어느새 이는 우리 사회의 썩어빠진 단면을 뿌리 뽑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어 박근혜-최순실이 중심이 된 국정농단, 그리고 여기에 개입했던 수많은 우리 사회의 민낯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국정농단의 윤곽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는 지난한 6개월의 여정동안, 그 긴시간을 지치지 않고 붙잡아 준 힘은 단연코 시민들의 촛불이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촛불'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비아냥에도, '거짓과 선동 시위'라는 가짜뉴스의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광장의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도 격동하는 우리 한국사회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흘러간 2016년 연말부터 장미대선을 치른 2017년의 5월이라는 시간동안, 대한민국을 움직인 건 '광장의 민주주의'다. 


"왜 이런 촛불 현상을 하버마스나 지젝한테 물어봐야 합니까? 

그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기득권 부패는 국민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지만, 동시에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무관심을 해소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치인을 혐오하고,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던 다수의 시민들은 점차 자신만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근 몇 년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불어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수준도 고양되었다. 이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사회의 사각지대를 바라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함께 나서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의 민주주의 정치를 바꾸려는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의 시대'라는 강의를 하지만, 여러분 정치권을, 정치인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우리가 현대사에서 여러 번의 기회를 놓쳤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우리의 힘입니다. 

저는 우리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p. 90, 대한민국호의 무게중심


역사학자 한홍구는 "여의도 민심과 일반 민심이 따로 노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 말하며,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지니고 있는 한계에 대해 먼저 짚는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중 효과적인 제도이기는 하나, 현실적인 한계점들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광장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하나의 변곡점이 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실제 삶과 유리되어 있는 기존 정치에 만족하지 못한 국민들의 행동이 지금과 같은 변화의 시간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현대사에서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그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리를 역사학자인 제가 책임지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쉬운 언어로 짚어주는 우리나라 현대정치사

한홍구의 <정치의 시대 :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는 2017년 상반기에 출판사 창비에서 진행했던 ‘정치의 시대―2017 시민혁명을 위한 연속특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결과물이다.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쉬운 언어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솔직히 깊이 있는 강의는 아니지만(현대정치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한국현대정치사를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입문서다. 흐름을 이해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책으로 보인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 있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떤 것들을 해나가야 할까.



"우리는 헌법을 어기고 주권자인 국민을 핍박한 사람들을 현실의 법정에 세우지 못했습니다. 

현실의 감옥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 할 거 아닙니까."


- p.116,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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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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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가지고 있다 

-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리뷰 -

Imageⓒ 창비 페이스북


'사회적 공감'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불우한 사연을 텔레비전이나 여타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안타깝다' '돕고 싶다' 혹은 '나라가 이런 일에 가만히 있으면 되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분명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 마주칠까 말까한 사람들을 두고 왜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가. 그것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창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일들을 두고 말이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특별하고 기이한 것이라, 내가 겪은 일이 아니어도 한 순간의 감정일지라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로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사회에서 이 '공감' 능력이라는 것은 필요조건에 속한다. 다시 말해, 공감 능력이 없으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말.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나아가 타인의 감정까지 유추해내며 공감할 수 있는 건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편도체'라는 기관 덕분이다. 편도체, 마치 컴퓨터 부품의 이름과도 비슷해 보이는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처리하고 표현하는 기관이다. 정서적인 표현이 강한 사람일수록 편도체에서 강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실제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편도체는 기억을 통한 학습 과정에서 알게 되는 감정의 모든 처리를 담당하기도 하는데, 그 모양이 복숭아씨 또는 아몬드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amygdala)'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아몬드는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즉,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은 특별히 조금 작은 아몬드를 가지고 태어난 한 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에서 문제가 컸지만 말이다. 유난히 어릴 때부터 흔들림이 없고 잘 웃지 않았던 아이를 두고, 아이의 엄마는 그저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차분한 편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어려운 말들로 장식된 아이의 병(정확히 말하면 감정 '장애'에 가깝지만)을 두고 의사들은 아이를 그저 호기심을 해소해줄 실험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엄마의 철저한 교육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평범하게 살 수 있게 하고자 마련된 안전장치였다.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공식처럼 감정을 외우는 게 그 방법이였다.  하지만 어느날 사회부적응자의 칼끝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이 철저하게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한 첫날이다.


Imageⓒ 창비 페이스북



이 책이 담고 있는 포인트는 총 2가지다. 하나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세상의 부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고, 나머지 하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곤이'와 주인공의 만남이다. 


할머니와 엄마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살인마의 칼에 찔려 죽어가는 순간에도, 소년은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못했다'는 표현이 '않았다'는 표현보다 정확하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찾아 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떠든다. "쟤는 어떻게 울지도 않니?" "좀 무섭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할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 주인공이 목도한 세상은 '껍데기로만 떠드는 공감의 공간'이다. 할머니를 찌른 살인마의 심리에 대해 궁금해하던 소년의 물음은 점점 다른 곳으로 향한다. 관심을 갖는 척하다가도 정작 필요할 때는 손 내밀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뒤에서는 알지도 모하는 사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바쁜 사람들. 할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

반면 '곤이'는 이런 소년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아이다. 어린 시절, 유원지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후 고등학생이 되어 원래 가정의 품으로 돌아온 곤이는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강한 척하면서도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으로 매일 밤 괴로워하는 곤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윤재'를 괴롭히다가 제 풀에 지치고 만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매순간 폭력으로 끝을 맺고 마는 아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는 사실은 무엇 하나 어른스러운 데가 없는 아이. 윤재는 곤이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의 온갖 '감정들'을 배우고 조금씩 알아나간다. 그래서 결국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아이가 도리어 사회가 외면한 문제아를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기 위해 달려간다는 이야기. 둘.


손원평의 <아몬드>가 말하는 바는 결국 껍데기만 남아버린 우리 사회의 공감과 유대다. 누군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듯 홀린 듯이 멈춰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는 '무섭다' '소름끼친다'는 말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방황하는 아이에게는 '거칠다'며 '문제아'로 낙인 찍은 채 팔짱 끼고 있는 우리 사회에 두 10대 소년이 던지는 물음은 날카롭다. "차라리 말이야, 다들 내가 더 나쁜 짓을 저지르기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모두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책 속의 한줄>


"심 박사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 심 박사가 화면을 보고 있다. 얼굴은 무표정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 있었다. 나 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


- p. 209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p. 210


"P.J 놀란의 죽음은 여러 면에서 논란이 되었다. 딸에 대해서만은 결백했지만 그에겐 이미 폭력, 절도, 살인 미수 등의 무거운 전과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시한폭탄이라 불렀다. 무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언젠간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말이다. 어쨌든 세상이 이미 죽어 버린 남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동안 P.J 놀란의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 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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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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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피스토리우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는 화분에 담긴 식물과 같았다.

물을 주어야 하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나라는 존재에 모두들 익숙해진 탓에

내가 다시 실재했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 p. 30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소 공격적이고 충격적인 제목이다. 처음에는 호러 소설이나 심리 스릴러 종류의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졌지만, 물론 사실이 아니다. 원제는 <GHOST BOY>, '유령 소년'이다. 유령 소년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자, 주인공인 동시에 작가인 마틴 피스토리우스를 스스로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퇴행성 신경증을 앓게 된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

마틴 피스토리우스, 다시 말해 유령 소년은 열두 살 무렵까지는 아주 평범한 소년이었다. 총명하며 부모님의 사랑을 가득 받는 동시에, 컴퓨터에 재능을 보이는 여느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이유 없이 (의사들도 그 원인을 밝힐 수 없이) '퇴행성 신경증'이라는 질환을 선고받게 되며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정신이 돌아온 후, 아이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몸은 말을 좀처럼 듣지 않았고, 이 소년은 사람들과 단절된 채 공기 중을 떠도는 유령처럼 소외되어 배회하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도, 물건을 내 마음대로 집을 수도, 심지어는 미소를 마음껏 지어보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미래가 한창이던 아이는 유령 소년이 되어버렸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작가가 의사소통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면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책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여기를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채,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전반부. 그리고 노트북을 통해 기계음으로 대화를 가능케 하는 의사소통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후반부다. 마틴의 신체는 대부분 마비되어 있지만, 정신은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검사를 통해 입증되면서 마틴은 곧바로 의사소통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훈련을 지속한다. 이를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이 세상 밖으로 점차 발을 내딛는 과정을 후반부에서 비추고 있다.

​돌봄시설에서 겪어야 했던 수난과 요양사들의 성폭력 가해까지

이 책이 놀라운 건, 마틴과 같이 신경질환으로 신체 대부분이 마비된 장애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책이 별로 없다는 씁쓸한 현실에 있다. 장애인의 사회적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현실에서 꿈을 이루는 등의 미화된 이야기는 많았지만, 책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해내고 있다. 이를 테면, 비장애인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듣지도 못할 거라 생각하며 무례하게 행동하는 일이나 돌봄시설에서 겪어야만 했던 수난. 그리고 요양사들의 성폭력 가해까지. 이 책은 단순히 장애인이 본인의 장애로부터 벗어나 성공하는 식의 미담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장애인으로서 경험했던 수많은 사회의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무심코 읽다보면, 이 책이 과연 실화인지를 두고 머리를 갸웃거리게 되기도 한다. 소설이라고 믿고 싶은 장면들이 생각보다 많기에.

어떤 때에는 내 몸에 다시 손을 대기까지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기도 했고 연속해서 몇 번씩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다시 내게로 다가오는 그녀를 잠자코 지켜볼 때만큼 무력한 순간은 없었다.

나는 그녀가 언제 또 나타나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늘 불안에 떨었다.

나의 일상에는 공포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

나는 그녀가 원할 때 사용하는 반응 없는 물체,

그녀의 어두운 욕구를 마음껏 칠할 수 있는 빈 캔버스나 다름없었다.


- p. 215

동시에, 이 책은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돌봄시설에서 수년간 지냈던 그가 사람들과 대화하고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취업하며 독립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픽션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다소 무겁게 시작된 이 책의 서두와는 상반되게 결말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행복하게 마무리된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이 여느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꿈처럼 행복하고 평범하게 마무리되기까지 마틴이라는 유령 소년이 지나왔을 삶의 굴곡은 결코 책의 몇 글자만으로는 가늠해보기조차 힘들 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마틴과 같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살아있음에도 유령 취급을 받으며, 혹은 할 수 있음에도 할 수 없을 거라 '단정지음'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격이 있고, 의지가 있고, 때로는 능력이 충만함에도 '그럴 수 없다'는 사회의 인식이 이들에게는 더 큰 장애가 된다는 걸,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깨닫게 된다.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네가 죽어야 해."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네가 죽어야 해."
엄마가 그렇게 말한 순간 온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엄마가 고요한 방 안에 나를 남겨두고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날, 엄마가 바라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 p. 86

* 아쉬운점

제목이 왜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인지 의문이 든다. 많은 독자들이 이 제목을 보고 책의 내용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고 본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삶에 대해 단순히 비관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등의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을 두고 어머니가 했던 말은 사실이지만(...), 그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가 되진 않는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네이밍이 아닌가 싶다. 물론 책의 내용 자체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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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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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 리뷰


 Imageⓒ네이버책


"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편지 밖에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

내게 고맙다고 말한 뒤 택시를 타고 떠난 그녀는 연말의 서울 거리를 가로지르는 택시 안에서

언젠가 살아 있는 사람이 읽을 수도 있는, 이번에는 꽤 쓸모 있는 편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 p. 28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하나의 빛줄기가 되어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라고, 어릴 적에 읽었던 어느 책의 구절이 말했다. 아마도 그건 삶의 고난과 역경에 부딪힌 사람들이나 삶의 중간에서 끝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쓰였던 책이었던 것 같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그 책은 아마도 이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될, 빛줄기가 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삶을 조금 더 살아내는 쪽이 언제나 이득이라고. 때문에 나는 매순간 이미 와버렸는지,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건지 모를 그 사람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있다.

타인의 빛에 휩싸이는 순간 : <빛의 호위>

학창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같은 반 친구에게 팔아서 급전이라도 만들라는 의미로 아버지의 카메라를 훔쳐다가 준 반장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조해진의 소설 <빛의 호위>는, 이처럼 나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빛에 휩싸이고, 또 타인에게 빛을 나눠주는 존재가 되는 순간을 그려낸 작품이다. 돈도 없고 학교에 갈 여력도 없던 '권은'은 반장인 '나'가 준 카메라를 팔지 않는다. 대신 집안의 사물들을 조금씩 찍다가 점점 집 밖의 사물들을 포착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팔아 돈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반장의 카메라는 가난하고 소극적이었던 권은이 세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둘은 사진작가와 기자로 조우한다.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권은은 분쟁지역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났다가 파편을 맞고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은 채 돌아온다.

"그래서 어떤 사진을 찍을 계획인데요?

나는 괜히 맥주나 거푸 비우며 건성으로 그런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사람을 찍어야죠.

그녀가 대답했다.

전쟁의 비극은 철로 된 무기나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죽은 여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 같은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당신이나 나만큼만 울었을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 그 자체니까.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유려한 문어체로 덧붙여 설명하는 그녀를 나는 어리둥절하게 건너다봤다."


- p. 13

결국 카메라를 준 '나'와 그 카메라를 들고 세상으로 나와 거리를 누비게 된 권은의 관계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사주는 그 짦은 순간"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제목인 <빛의 호위>는 사물에 숨겨져 있던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 그리고 누군가의 빛이 나를 향해 다가와 감싸 안는 느낌 모두를 아우르는 표현인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롱 뒤나 책상 서랍 속, 아니면 빈 병 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사진을 직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오는 것 같은 그 황홀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 p. 32

조해진 작가 Imageⓒ중앙일보

​***


단편 <빛의 호위> 이외에도 해당 책에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 다수 담겨 있다. 공통적인 것은 사회 각지에서 투명인간처럼 취급 받고 있는, 혹은 그래왔던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외국인노동자(<번역의 시작>)부터 국가 폭력의 희생자(<사물과의 작별>, <동쪽 백의 숲>), 입양아(<문주>), 그리고 고아(<작은 사람들의 노래>) 등 조해진 작가의 작품 속에는 목소리를 내본 적조차 별로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사회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조차 편협한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 창비 <빛의 호위> 서평단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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