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구입했다. 원가격 12000원인데 5600원에 연신내매장에서 샀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 알라딘상품에서 검색하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몇 페이지마다  동화처럼 페이지의 위나 아래쯤에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읽기도 여유롭고 기분이 새롭다. 소장할 만한 특색있는 책이다. 중고매장이라서 이렇게 예쁜 책을 살 수 있어 오히려 행운이었다. 사진이 없어 서지를 일러둔다.

서지--현대문화, 번역 배영란, 이림니키 그림(컬러가 밝고 색감이 아주 좋다. 좀 어린이스럽다.) 2009년 초판.

 

 <인간의 대지>는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게 자연스러울 작품이다. 

 항공사에 들어간 신입조종사 나, 죽음이 언제나 현실이 될 수 있는 비행.

 안데스 산맥에 떨어진 기요메가 5일간을 걸어 스스로 구조된 사건, 그는 죽음 직전까지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고 있었다. 진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의무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하라사막에 추락한 나와 프레보,두 사람을 구해준 리비아의 베두인, 구조받은 나는 인류 전체를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다. 적이란 없다. 어떤 적도 생텍쥐페리에게는 은인이요 귀인이다.

 무어인들에게 바르크(노예)였던 모하메드가 작가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고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전 재산으로 선물을 사 나누어주는 눈물겨운 장면, 자유란 무엇인가?

 잠시 불시착했던 아르헨티나 콩코르디아 들판에서 만났던 평범해보이는 부부, 하지만 그의 집 분위기는 현대인들에게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평화롭고 신비롭기까지 한다. 부부의 어린 두 딸은 자연 속에서 자연 자체로 성장하는 것 같다. 작가는 그 기억을 사하라가 아닌 세상의 어느 오아시스였다고 말한다.

 하늘에서 바라다보는 지구의 인간들이 개미같다고, 농부여야 할 무수한 노동자들이 시커먼 건물에서, '게토'에 갇혀 살고 있다고.... 

 

 "어린왕자"를 낳기 이전의 사건과 사실, 사유가 기록된 작품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어린왕자"는 이 작가에게는 당연한 상상, 당연한 글쓰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펭귄글래식코리아판에서 <남방 우편기>는 '야간비행'과 같은 책 뒤편에 묶여 있다. '야간비행'이 120쪽 '남방우편기'가 150쪽 정도의 분량이니 둘 다 중편소설이고, 다 읽어도 300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행할 때의 창공의 아름다움, 지상을 떠난 고도에서 홀로 벌이는 폭풍과 뇌우와의 고투, 외로움과 공포에 혼자 맞서야 하는 고통. 읽는 내내 긴장과 어떤 신비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어 저절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남방 우편기>는 그러나 추락한 조종사와 폭풍우에 말려든 조종사의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 사랑얘기에 더 할애된 느낌이다. 1부와 3부가 사하라사막에 추락당한 조종사가 자신을 찾아올 우편기를 기다리다 결국 구해지지만, 자신을 살린 친구는 실종되고 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줄거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헷갈리는 서술이 좀 있다).

 

 2부에서는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의 사랑이야기가 주다. 주느비에브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사는 일에 지쳤고, 거기에다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베르니스를 찾아와 자신을 어디든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는 그녀를 완전히 차지할 수 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다. 그녀가 편히 묵을 호텔을 찾아 헤매게 되고 그녀와의 앞날은 그런 식으로 누추한 삶으로 퇴색되리라는 걸 예감한다.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은 삶에서 한 가지 조건일 뿐,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 그 전체 속에는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는 그녀를 떠난다.

 몇 년 후, 그는 그녀를 찾아간다. 아무도 모르게 들어간 저택에서 그는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죽음을 지킬 자격이 없다.  그는 돌아서 나온다.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2부의 사랑이야기는 한편으로 불륜적인 속된 사랑의 면모도 보여준다. 생텍쥐페리의 작품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소설이라 하겠다.

 이 세계에서의 사랑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을 함유하지 않으면 안되며,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자신들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들은 사회적인 그물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랑이면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한 순간의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이루어진 후에 오는 삶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강렬하던 사랑이 서서히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보다 그 사랑을 이루지 않고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베르니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떠나온 그 사랑은 언제나 그의 마음에 남아 그를 아프게 하고 그립게 하고 자책하게 한다.

행복한 사랑을 쟁취해서 일생을 같이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닐까. 그들은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거나 가장 욕심없는, 소박한 사람들일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그동안 숱한 작품들을 통해 작가들의 면면을 조금은 알고 있다. 꼭 그렇다 할 수는 없어도 작가치고 일반인들보다 독특하고 깊은 감성의 세계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야간 비행>을 읽으며 생텍쥐페리라는 작가는 정말 낭만적인 공상의 세계에서 살다간 사람같이 느껴진다. < 어린왕자>를 읽을 때 막연했던 추측을 뛰어넘는다.

 그러다보니 그에겐 행동주의 작가, 조종사라는 명성 뒤에 현실에 대한 기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평소 비행기 기체의 수리같은 중요한 운행 전의 책무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비행중에 소설을 읽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했단다. 한 번은 이륙할 때가 되었는데도 읽던 소설을 마저 읽기 위해 공중을 선회하며 1시간이나 지체하여 이륙했다는... 믿기지 않는, 참 놀라운 문학가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는 조종사로써는 어쩜 결격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 그는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니 인간적으로는 뛰어난 감성과 더불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그에게 일에 앞서는, 자신의 감성을 펼치기 위한 공간이 간절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겨우 세 번(전국민의 여행 횟수를 고려해보면 겨우라고 해도) 외국여행을 했다. 그러니 세 번 비행기를 탔는데, 그 때마다 언제나 기체 밖의 광경이 너무나 좋았다. 흰 구름이 저 아래 깔린 하늘, 짙은 남색으로 펼쳐진 산과 은빛 뱀처럼 흐르는 강, 도시는 빼곡히 박혀있는 건물들이 점보다 작게 보이고, 한 번 마주친 석양은 하늘 한쪽을 길고 두툼한 주홍빛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나 또한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하기는 이 작가 못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낯선 이국 땅은 그래도 내 삶의 터전과 비슷하지만 상공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일상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가 아닌가. 또 비행기를  타고 싶다.

 

 <야간 비행>의 줄거리는 특별한 것이 없다.

 우편을 날라다주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과 감독관 그리고 총책임자의 시각과 그 고뇌를 담고 있다.

 파타고니아선, 칠레선, 파라과이선 우편기 세 대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돌아오는 여정, 이 비행기들이 돌아오면 그 우편물을 받아서 유럽으로 비행기가 출발해야 한다.

 야간비행은 개척된지 얼마 안 된 체제라 늘 긴장이 수반된다. 전 항공망의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냉정하고 엄격한 규칙을 강요한다. 비행 중에 일어날 수많은 위험 앞에 직면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그는 언제나 냉철해야만 비행이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긴장을 놓거나 해이해지면 한 번의 비행이 목숨과 바꾸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에르는 자신의 고독을 조종사와의 유대로 풀려던 감독관을 질책한다.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숙련된 조종사를 가차없이 잘라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이나 직원들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선의 조종사 파비앵은 갑작스런 폭풍에 휘말려 추락하고 그의 아내가 사무실로 찾아온다. 그녀는 리비에르와 근무하는 직원들의 태도에 절망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죽음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이 되기도 한다.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에게 하소한단 말인가.

 나머지 두대의 우편기가 도착하고 리비에르는 유럽행 비행기를 출발시킨다.

 

마지막 문장, "위대한 리비에르, 승리자 리비에르가 무거운 승리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해낸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 버겁고 어깨를 찍어누르는 구속이 전제된다. 자기의 몫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그것은 의무요, 자신의 선택이며 운명을 가르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의 주제 또한 저번 주 읽은 <정복자들>과 비슷하다고 보여진다. 혼자 있어도 고독하지만, 어떤 목적을 향해 함께 연대하고 나아갈 때도 그의 심연엔 고독과 고뇌가 따라다닌다.

 앙드레 말로가 그렇게 문제가 복잡한  이국땅을 찾아다닌 이유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고뇌와 고독 때문이었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이것은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관점이고, 그는 돈을 벌어야했고, 자신의 탐구적인 욕망과 활동지가 필요해서이기도 했으리라).

 왜 말로는 고뇌하고 고독했던 것일까. 그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권력지향적이고 명예에 충실하며, 천재적인 언어감각과( 4개국어를 했다고) 미술사에까지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다재다능했던 그가 하루를 살기에도 바빴을 것 같은데 고독과 고뇌는 그의 안에 왜 또아리를  틀고 놔주지 않았을까.

 천재에게도 범인에게도 둔재에게도 자신이 살아온 삶은 무시 못할 배경이 된다. 말로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했고 외가 동네에 가서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늘 생활에 시달렸고 어린 말로에게 따듯한 말이나 사랑을 챙겨주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로는 가끔 만나는 아버지를 나름 자부심을 갖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허황되고 행위가 앞서는 사람이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로의 허언증은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은 애정결핍과 자긍심의 부재 때문으로 느껴진다

 실제의 말로는 중국혁명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고백들도 상당수 거짓이라고 한다. 거짓과 사실이 날실과 씨실로 얽혀 있는 말로의 인생. 환한 햇살 속에 빛을 뿜고 있는 모습 뒤로 검은 그림자는 떨쳐지지 않는다. 정치가, 미술사가, 혁명가라는, 타이틀이 무수히 훈장처럼 걸린 대작가의  내면에는 어려서 받지 못한 사랑이 채울 수 없는 공허와 갈증이 되어 안개처럼 깔려있었던 건 아닐까.

 

 <인간의 조건>은 어떤 소설보다 인물들이 행동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들의 배경엔 언제나 고독과 고뇌가 깊은 상처를 낸 상태에서, 그들은 그에 힘입어 혁명에 정진한다. 기요, 카토프, 첸, 에멜리크...

 첸은 장제스가 타지 않은 차에(정보가 없었다. 무리였다) 수류탄을 들고 뛰어든다. 그의 몸은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 총으로 자살한다. 기요, 카토프, 촨 등은 잡혀가 함께 죽을 운명에 처한다. 기요는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카토프는 자신의 바지춤에 보관하던 청산가리를 두 동료에게 나눠주고 불타는 기관차의 보일러 속에 던져지는 운명을 선택한다. 에멜리크는, 이 인물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운명을 증명해준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 외 인물들, 클라피크 남작은 어지러운 운명 속에서 되는 대로 살던 사람이지만 요행이 그를 파리로 무사히 데려다 준다. 페랄 또한 마찬가지.

 운명은 바르고 착한 자의 편에 서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혹시 죽음이라는 미지의 존재가 징벌이 아니라 상일지도 모른다고 역설적으로 생각해보자 .잘 모르지만 운명은 간단치 않고 인간의 삶 또한 오묘한 것이니 혹시 내세가 있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내세라는 인간의 말보다 훨씬 복잡하고 차원 높은 우주의 질서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남은 자들이 혹시 징벌을 받는 건 아닐까. 지독하고 순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이 부조리해 보이지만 그들이 과연 은총을 받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더 좋고 무겁다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기요의 아버지 지조르는 기요의 죽음 후, 가마 화가와 함께 일본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를 기요의 아내였던 메이가 찾아온다. 메이는 혁명가였던, 죽은 기요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이에 반해 지조르는 이제 기요가 없는 세상에서 다른 희망이 없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환상과 평화 속에서 살아간다. 동양적 명상이 그에게 남은 삶의 무게를 져 주려한다.

 

 말로의 작품은 사상과 사유가 공기처럼 온 지면을 덮고 작동시킨다. 배울 부분이 많은 수많은 문장들이 많지만 독자로서는 피곤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내 사유가 부족할 때, 다시 한 번 읽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든 책들이 간혹 있다. 가독성 없는 문장, 빨리 이해되지 않는 서사,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이 소설 어딘가에서 갑자기 돌출할 때...., 이 책은 그런 요소를 갖고 있다.

 더구나 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가린을(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의 성과 이름을 따로 떼어내 두명으로 생각했다. 무지가 사람을 얼마나 한심하게 하는지.... 그러니까 피에르 가린을 나는 1부에서 피에르와 가린 두 명인 줄 알았다. 진작에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읽던지 아니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메모를 했어야 했는데, 설마하고 안일한 자세가저지른 과실.

 때문에 처음부터 헤매기를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도 잘 모르고 혁명가들의 삶도 오리무중인(너무나 평범한 주부로써의 삶은 매너리즘의 삶이기도) 나로선 고전의 연속이었다. 몇 페이지 읽고 잠이 쏟아지고, 몇 페이지 읽고 또 잠이....,  이렇게 1부를 읽느라 시간이 덧없이 지나갔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접근, 2부 권력, 3부 인간.

 1부 접근은 '나'가 쑨원의 국민당 선전부를 맡고 있는 가린의 요청으로 광저우로 향하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이 여정 속에서 주로 가린과 나의 지난날의 기억을 통해 가린의 성향과 인간적 면모가 보여진다. 그리고 중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조금씩 드러난다.

 2부 권력은 광저우에 도착한 나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하나하나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주를 이루는데, 그들 인물은 제각기 혁명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행태가 조금씩 다르며, 그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갈등과 균열을 알 수 있다.

 3부 인간은 군벌정권과의 교전도 다루지만 그보다 훨씬 국민당 내 지도부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결과로 죽고 실패하는 인물들의 말로를 묘사한다.

 이 지점에 이르면 처음 가린이 했던 말처럼, 혁명정신은 혁명의 초기에만 존재할 뿐 그 이후에는 그저 정치가, 정치력이 주도권을 장악한다.

 가린은 학질인지 이질인지 정확치 않은 중병에 걸려 전장을 떠나게 되고, 그 외 인물들 또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맺음한다. 쩡다이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죽음을 맞고(죽은 이후에 그의 죽음은 목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살이 되기도 하고 암살이 되기도 하는, 이용하고 소비되는 죽음이 된다), 젊은 테러리스트 홍은 처형을 당하며, 클라인은 적의 고문과 잔혹행위에 비참한 시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보로딘은 건재하다. 그는 사업가형 혁명가이며 내가 보기엔 오히려 권력과 명예를 지키며 자신의 테두리를 잘 보존하는 고위관료형 인물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이 지상의 역사에서 가장 자신을 잘 지키고 오래 살면서 권력을 향유하는 인간은 아마 보로딘 같은, 지독하게 타산적인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는 소설적인 인물이 되지 못한다. 불꽃같은 열정의 주인공 곁에서 끝까지 남아있는 현실지상주의 인간일 것이다.   

 

 정치에는 도덕도 눈물도 없다. 혁명도 결국은 정치적 행위로 귀결된다. 정치의 세계에는 명분을 위한 음모와 선전선동, 상대를 이용하고 제거하고, 어떤 사건을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반대로 고귀한 행위도 단지 쓰레기처럼 취급하며, 인간들은 하나의 역할로만 자신이나 타인을 사물화한다. 이 사물화는 안정이나 무의미의 뜻이 아닌, 황폐화되고 기능화되고 인간성,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다.

 

 멀리 역사적으로 공간적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다. 지금 한국에서도 정치인이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더 슬픈 건 그나마 인간적이었던, 존경하고 싶었던 극소수의 정치인들이 전략과 음모 속에서 죽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자신의 심정이 없는 듯 끝까지 객관적인 르포를 쓴다. 이 소설은 정통소설이 아니다. 사건과 인물들의 세세한 내러티브가 없으며 대부분의 인물의 심리는 본인이나 타인들에 의한 긴  대화에 의해 제시되고 장황한 사건은 독자의 눈 앞에 직접 보여주지 않고 암시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제한된 화자의 눈(관찰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오히려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며 긴장을 높이기도 한다. 소설의 방식과 구조는 앞으로도 발명되고 발견되어질 몫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앙들레 말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