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그동안 숱한 작품들을 통해 작가들의 면면을 조금은 알고 있다. 꼭 그렇다 할 수는 없어도 작가치고 일반인들보다 독특하고 깊은 감성의 세계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야간 비행>을 읽으며 생텍쥐페리라는 작가는 정말 낭만적인 공상의 세계에서 살다간 사람같이 느껴진다. < 어린왕자>를 읽을 때 막연했던 추측을 뛰어넘는다.
그러다보니 그에겐 행동주의 작가, 조종사라는 명성 뒤에 현실에 대한 기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평소 비행기 기체의 수리같은 중요한 운행 전의 책무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비행중에 소설을 읽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했단다. 한 번은 이륙할 때가 되었는데도 읽던 소설을 마저 읽기 위해 공중을 선회하며 1시간이나 지체하여 이륙했다는... 믿기지 않는, 참 놀라운 문학가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는 조종사로써는 어쩜 결격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 그는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니 인간적으로는 뛰어난 감성과 더불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그에게 일에 앞서는, 자신의 감성을 펼치기 위한 공간이 간절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겨우 세 번(전국민의 여행 횟수를 고려해보면 겨우라고 해도) 외국여행을 했다. 그러니 세 번 비행기를 탔는데, 그 때마다 언제나 기체 밖의 광경이 너무나 좋았다. 흰 구름이 저 아래 깔린 하늘, 짙은 남색으로 펼쳐진 산과 은빛 뱀처럼 흐르는 강, 도시는 빼곡히 박혀있는 건물들이 점보다 작게 보이고, 한 번 마주친 석양은 하늘 한쪽을 길고 두툼한 주홍빛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나 또한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하기는 이 작가 못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낯선 이국 땅은 그래도 내 삶의 터전과 비슷하지만 상공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일상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가 아닌가. 또 비행기를 타고 싶다.
<야간 비행>의 줄거리는 특별한 것이 없다.
우편을 날라다주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과 감독관 그리고 총책임자의 시각과 그 고뇌를 담고 있다.
파타고니아선, 칠레선, 파라과이선 우편기 세 대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돌아오는 여정, 이 비행기들이 돌아오면 그 우편물을 받아서 유럽으로 비행기가 출발해야 한다.
야간비행은 개척된지 얼마 안 된 체제라 늘 긴장이 수반된다. 전 항공망의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냉정하고 엄격한 규칙을 강요한다. 비행 중에 일어날 수많은 위험 앞에 직면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그는 언제나 냉철해야만 비행이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긴장을 놓거나 해이해지면 한 번의 비행이 목숨과 바꾸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에르는 자신의 고독을 조종사와의 유대로 풀려던 감독관을 질책한다.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숙련된 조종사를 가차없이 잘라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이나 직원들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선의 조종사 파비앵은 갑작스런 폭풍에 휘말려 추락하고 그의 아내가 사무실로 찾아온다. 그녀는 리비에르와 근무하는 직원들의 태도에 절망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죽음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이 되기도 한다.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에게 하소한단 말인가.
나머지 두대의 우편기가 도착하고 리비에르는 유럽행 비행기를 출발시킨다.
마지막 문장, "위대한 리비에르, 승리자 리비에르가 무거운 승리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해낸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 버겁고 어깨를 찍어누르는 구속이 전제된다. 자기의 몫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그것은 의무요, 자신의 선택이며 운명을 가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