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펭귄글래식코리아판에서 <남방 우편기>는 '야간비행'과 같은 책 뒤편에 묶여 있다. '야간비행'이 120쪽 '남방우편기'가 150쪽 정도의 분량이니 둘 다 중편소설이고, 다 읽어도 300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행할 때의 창공의 아름다움, 지상을 떠난 고도에서 홀로 벌이는 폭풍과 뇌우와의 고투, 외로움과 공포에 혼자 맞서야 하는 고통. 읽는 내내 긴장과 어떤 신비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어 저절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남방 우편기>는 그러나 추락한 조종사와 폭풍우에 말려든 조종사의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 사랑얘기에 더 할애된 느낌이다. 1부와 3부가 사하라사막에 추락당한 조종사가 자신을 찾아올 우편기를 기다리다 결국 구해지지만, 자신을 살린 친구는 실종되고 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줄거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헷갈리는 서술이 좀 있다).
2부에서는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의 사랑이야기가 주다. 주느비에브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사는 일에 지쳤고, 거기에다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베르니스를 찾아와 자신을 어디든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는 그녀를 완전히 차지할 수 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다. 그녀가 편히 묵을 호텔을 찾아 헤매게 되고 그녀와의 앞날은 그런 식으로 누추한 삶으로 퇴색되리라는 걸 예감한다.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은 삶에서 한 가지 조건일 뿐,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 그 전체 속에는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는 그녀를 떠난다.
몇 년 후, 그는 그녀를 찾아간다. 아무도 모르게 들어간 저택에서 그는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죽음을 지킬 자격이 없다. 그는 돌아서 나온다.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2부의 사랑이야기는 한편으로 불륜적인 속된 사랑의 면모도 보여준다. 생텍쥐페리의 작품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소설이라 하겠다.
이 세계에서의 사랑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을 함유하지 않으면 안되며,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자신들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들은 사회적인 그물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랑이면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한 순간의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이루어진 후에 오는 삶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강렬하던 사랑이 서서히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보다 그 사랑을 이루지 않고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베르니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떠나온 그 사랑은 언제나 그의 마음에 남아 그를 아프게 하고 그립게 하고 자책하게 한다.
행복한 사랑을 쟁취해서 일생을 같이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닐까. 그들은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거나 가장 욕심없는, 소박한 사람들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