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차례


바빌론의 탑

이해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 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타리



바빌론의 탑

 구약의 바빌론의 탑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너무 높아서 그 끝이 보이지 않고 구름 속으로 첨탑이 사라지는  광경만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정적인 그림이었다. 디테일한 정경은 애초에 어려웠다. 상상이란 것도 그 비슷한 지식이나 경험이 최소한은 있어야 가능하니까. 그 막연했던 상상이 이 단편을 통해 구체성을 얻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은 탑이 구름을 뚫고 더 올라가 우주로 나아가게 놔두지 않는다. 마지막 탑의 꼭대기에서 하늘의 문이라 믿었던 곳을 뚫고 그 물줄기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진 곳은 다시 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상의 사막에 불과하다. 구약의 시대라는 배경을 놓고 생각해보면 하늘의 문이라는 설정이 타당성을 얻는다.

 어쨋든 바빌론의 탑은 아무리 높이 쌓아도, 아무리 오래 공을 들여 몇 세기를 쌓아도 하늘에 닿지 못한다.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을 만나지 못한다. 그저 인간들끼리의 장엄한 문화에 그칠 뿐. 이 작품에서처럼 다시 땅을 향해 첨탑의 방향을 돌렸든, 현 세기의 로케트처럼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궤도 하나를 만들어내든.

 그렇게 바빌론의 탑은 통찰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앞으로도 견지될 거라는 것,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최고도의 문명이 지상에 실현된다 해도 우리의 생 자체가 완전한 형태와 내용을 갖추지 못할 거라는 것. 삶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복잡다단하여 이런 탑을 짓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이해

 식물인간이었던 남자가 특수한 신약을 주입하고 초월적인 지능을 갖게 된 이후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갈수록 내 머리로는 이해 불능이어서 페이지를 넘기고 결말을 읽고 말았다. 결말은 자기처럼 신약을 먼저 맞았던 남자와의 대결에서 패하고(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라 상대의 의식을 교란시켜 붕괴하는 공격?) 스스로 붕괴되는 남자.


영으로 나누면

 첫 페이지부터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걸렀다.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의 원작.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다른 외계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의 사고체계를 같이 흡수하게 된 언어학자의 삶이 '인생'이 된다.

 헵타포드의 문자는 우리처럼  단어와 단어들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의미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들의 문자는 시작과 끝이 없이 주어 안에 이미 술어가 생성되고 있고 술어 안에 주어가 깃들어있다. 영화에서는 오징어의 먹물 같은 외계인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물질로 둥그런 모양의 원을 형성한다. 

 그런 문자는 우리의 순차적인, 시간적인 인과관계의 논리와 그들의 의식체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그들은 시간의 어느 부분들을 블록화 해 전체를 커다랗게 입체화한다. 

 언어학자는 그들의 문자를 배우면서 그들의 사고를 자신도 모르게 체득한다. 그리고 헵타포드들과의 면담에 동행하면서 만난 물리학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물리학자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될 거라는 것, 그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스물 다섯에 죽게 되리라는 미래(우리의 시점에서는 미래)를 알게 된다(헵타포드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으로는 예지나 추측이 되겠지만 헵타포드에게는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인과적, 그들은 목적론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미래를 받아들인다. 결과를 알면서도 그녀는 선택한다. 딸이 크는 중간에 남편(물리학자)은 떠나고 그는 새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는 딸은 스물다섯에 등반사고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런데 정말 그 여자, 언어학자가 너무나 잘 이해됐다. 나에게도 삼십 년 전에 똑같은 상황이 주어지고 내가 그녀라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남편은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내 딸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ㅠㅠ..... 암튼 몇 년 전에 '컨택트'는 정말 잘 봐 두었다. 영화 덕에 쉽게 이해되었다. 헵타포드라면 몇 년 뒤에 이 책을 읽을 줄 알고 당연히 보았을 영화였겠지. 나는 당시 이 책을 읽을 줄 전혀 몰랐었다.


일흔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두 단편 모두 이해 불능, 독서 불가.


지옥은 신의 부재

 이 단편집에서 가장 쉬운 소재. 

 사랑했던 아내를 천사의 강림 시에 잃은 남자. 그녀가 천국에 들어올려졌기 때문에 그녀와의 재회를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신을 사랑하던지 천국의 빛을 보고 단숨에 천국으로 올라가고자 지난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는 강림한 천사를 보기 위해 운전하다 벼락에 맞아 숨을 거두고...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는 신을 사랑하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신을 체험한 사람은 어떤 논리나 인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신을 느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신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잘못도 없이 지옥에 떨어진다. 한데도 그는 열성적으로 신을 사랑한다. 아내와의 재회도 이루지 못했음에도.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닐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이런 신앙은 인간 스스로는 가능하지 않다. 천사의 강림을 닐이 보았기 때문에, 그 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일 터. 그런데 신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행복(보통 우리 인간이 말하는 그런 행복보다 더 높은 차원의) 할 거라는 건 나로선 어느 정도 확신이 된다. 아니 확신이라는 건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없고 완전히 믿는 거겠지만 아직은 '어느 정도 확신'이라고 해 두어야겠다...

 인간과 신, 지옥과 천국을 두루 생각하게 해 준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외모 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운동이 일어나는 즈음, 한 대학에서도 '칼리'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신입생들에게 찬반의견을 묻는다. 뇌의 아주 작은 영역에 주사를 하면 그 물질이 인간 안면에 대한 의식을 하지 않게 된다는, 그래서 얼굴에 관한 미의식이 사라져 모든 사람을 미모가 아닌 그냥 한 전인적 인간으로서 판단하게 된다는... 칼리 프로그램.

 이 '칼리'에 대한 찬반 토론이 이 소설의 주제이고 형식이다. 과연 인간은 같은 인간끼리 얼굴의 표정이나 윤곽을 중요시하지 않고 전체적인 인간성(성격, 품성, 지성, 기타)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게 합리적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기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참 어려운 갈림길이다. 이 작품 안에서도 수많은 인물들이 칼리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데 어느 쪽을 읽어봐도 이해가 금방 되고 공감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내 의견을 갖지 못하겠다. 


 아주아주 어려운 책이었다. 그간 내용이 어려워서거나 너무 지루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생각났다. 그것들도 한 번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내가 읽다가 만 책들,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작가들의 책 몇 권을 다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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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오래 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

 소설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된다. 아주 어린 시절, 소년은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웠으며 나무 위에서 공부를 했고 잠을 자고 앉아있곤 했다. 나무와 호수와 언덕과 초원, 여기저기 주택들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늘어선 시골 마을의 천진한 소년이 화자이며 주인공이다. 

 그런데 소년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좀머 아저씨가 있다. 특별한 관계를 맺지도 않았고 서로 따듯한 말 한 마디도 주고 받지 않았지만 그 기억은 비밀이고 특별하다. 

 

 도입 후 전개의 첫 에피소드가 아버지와 소년이 경마장에 가는 길이다. 돌풍과 비와 우박이 갑작스럽게 한바탕 지나가고 이후에는 조용히 이슬비가 내리는 길, 바람과 우박에 꺽여져 여기저기 뒹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들로 아수라장이 된 길가를 좀머씨가 걷고 있다. 아버지가 차 문을 열고 천천히 좀머 씨를 따라가며 타라고 몇 번이나 간청하다시피 하지만 좀머 씨가 정확히 들리는 문장으로 말한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이 대사는 좀머 씨가 다른 이에게 제대로 자신의 의사를 처음 밝힌 것으로, 그의 마지막 호수에서의 사라짐(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좀머 씨는 이 한마디 말로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끔찍스러워함을 표현한다. 얼마나 의지에 찬 주장이며 얼마나 냉소적이고 외로운 고백인가. 누구나 타인의 시선과 관심에서 벗어나 홀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웬만하면 혼자 자신의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하고 사소한 일에서도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한편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이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고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한다. 혼자 산다는 것은 외롭고 불안한 일이다. 

 좀머 씨는 어째서 특별한 용건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 것일까. 어째서 누구와도 소통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에게는 밀폐 공포증이라는 것이 있다고 소년의 엄마가 말한다. 소년은 생각한다. 밀폐 공포증은 갇힌 공간에서 있지 못하는 것이고, 갇힌 공간에서 있지 못하는 것은 밖에서밖에 살 수 없는 거라고. 그러면 밀폐 공포증은 밖에서밖에 살 수 없는 병이라고... 

 

 소년은 소년으로서의 시간을 지난다. 누가 뭐래도 소년소녀의 시절은 아름답고 투명하고 괜히 슬프고 달콤하다. 

 같은 학교의 여자아이와 다음 주 월요일에 함께 하교할 수 있다는 기쁨만으로 들떠 온갖 계획을 세웠던 소년에게 그 주 월요일이 되자 여자아이가 다가와 말한다. 방문 가려던 집 아주머니가 아파서 갈 수 없게 되었다고, 그리고 여자아이는 곧장 소년과 다른 갈림길로 쌩하니 멀어져 친구들 사이로 사라진다. 

 소년은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떼다 뒤돌아 갈림길을 바라본다. 갈림길엔 이미 아무도 없다. 그런데 길이 갈리기 전의 구부러진 길 위 언덕을 지팡이를 짚고 배낭을 맨 좀머 아저씨가 걷고 있는 게 눈에 띤다. 소년은 좀머 아저씨가 언덕을 지나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하긴 좀머 씨는 늘 자주 보던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끝도 없이 걷고 있었으므로...

 소년은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하고 자전거로 피아노 교습을 다닌다. 자전거는 소년에게 너무 크고 안장은 너무 높아 페달을 밟으려면 앉을 수가 없다. 교습소를 가는 길에는 오소리 개가 다가와 짖고 몇 명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자전거를 내려 기다렸다 가야 한다. 

 자전거를 아직 제대로 탈 수 없는 상황은 과외 시간에 늦게 되어 피아노 교사 할머니의 성마른 분노를 일으키고, 하필 수업은 현란한 기교로 양손을 휘황하게 움직여야 하는, 악마적인 작곡가의 악보를 쳐야 한다. 지각한 소년에게 화가 난 할머니 선생님은 튀기는 침방울과 함께 오래 묵은 코딱지를 건반에 튕겨 붙여놓고.... 소년은 그 코묻은 건반을 치지 못하고 한 음 아래의 다른 건반을 치고 만다. 그러자 격노한 할머니 선생님은 부모님에게 알리겠다고, 화산이 폭발하듯 화를 내며 책상을 치고 사과를 던진다. 

 소년은 자기에게 가하는 이 세상의 악행을 견딜 수 없어 죽기로 작정한다. 커다란 가문비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소년은 곧 떨어져 죽기로 하는데... 이 때 좀머 씨가 나무 아래 나타나 빵과 물을 마신다. 그 수 분 동안 소년은 좀머 씨를 본의 아니게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혼자서 내는 신음소리, 고통스런 숨소리, 절망에 찬 좀머 씨의 눈동자. 좀머 씨는 나무 아래에서 혼자인데도 쉬지 못하고 곧 자리를 뜬다. 

 

 5,6년 후 소년은 청년기로 진입한다. 키가 170센티에 이르고 이젠 자전거 묘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무 같은 건 타지 않는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친구 집에서 티브이를 시청하고 오던 늦은 저녁, 소년은 어두운 길에서 자전거 체인을 갈고 시커멓게 기름이 묻은 손을 닦으려고 나뭇가지를 하나 꺽다가 그 틈새로 저물어 가는 빛나는 호수를 보게 된다. 

 한데, 호수 안에 좀머 씨가 지팡이를 들고 물 속을 걸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은 차츰 좀머 씨의 허리에 닿고 곧이어 좀머 씨의 턱에 차고,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좀머 씨의 머리가 갑자기 돌출되고, 그러다 그의 밀짚모자만이 물결을 따라 내려간다. 소년은 꼼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소년은 그 후로 누구에게도 한 번도 좀머 씨를 봤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 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책을 두어권 더 사야겠다. '비둘기'를 읽고도 무척 놀라웠는데, 좀머 아저씨도 잊지 못할 작품이다. 중편 정도의 분량이지만 가치로는 장편 못지 않다. 아니 더 뛰어난 것 같다. 이래서 읽어야 할 책이 하나둘 쌓여간다. 독서에는 뾰족한 왕도가 없으니 조금씩 책이 쌓여가면서 읽어나가야 하는 지경에 접어든 것 같다. 나는 손이 큰 편이 아니라 무얼 많이 남기고 쌓아두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도 상황은 점점 손 큰 사람처럼 되어간다. 하지만 나는 책 욕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필요해서 읽는, 딱 필요한 만큼만 사는, 야박한 독서쟁이정도에서 머물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의 책들을 여행하게 될 것 같다. 야박한 나이지만 그에게는 야박하게 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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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차례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해설 서영채(문학평론가)-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

작가의 말



쇼코의 미소

 '일본 문화가 한국에 전격 개방되던 해'였다.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문화 교류'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의 일환으로 쇼코는 세 명의 여학생들과 한국의 소유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견학을 온다. 일주일 간 소유네 집에 머무르게 된 쇼코. 쇼코는 소유와 어머니, 소유 할아버지와도 친밀한 사이가 된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할아버지는 쇼코로 인해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생기가 살아나고 엄마도 갑자기 상냥하고 잘 웃는 사람이 된다. 소유네는 아버지가 부재하고, 늘상 가라앉은 분위기였는데 쇼코로 인해 잠시 생동하는 집안으로 변한 것이다.

 이후 소유와 할아버지는 쇼코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소유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고, 그러나 쇼코는 그 작은 지방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병구완을 하게 되는데...

 쇼코의 편지는 더이상 오지 않는다. 소유는 쇼코를 찾아간다. 하지만 파리하고 히스테리한 쇼코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끔찍한 저주의 욕을 한다. 소유 앞에서. 소유는 다시는 쇼코를 보지 않겠다고... 

 몇 년이 흐른 후, 소유는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가 쇼코와 함께 견학을 왔던 친구를 만나게 된다. 쇼코의 진실은 우울증과 자살...

 또 몇 년 후,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된 쇼코가 소유를 찾아온다. 쇼코의 할아버지도 소유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이제는 어른이 된, 자신들이 원했던 삶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이 된 두 친구가 서로를 바라본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없이. 

 삶은 그런 가운데 무언가를 선사한다. 파도가 한때 넘쳐 숨쉴 수가 없었던, 내가 우월한 것 같아 묘한 자부심을 느꼈던, 그 모두가 난해하고 복잡한 삶의 이면을 몰랐던 시절의 일. 지치고 다치고 그러면서 꿈을 잃어버렸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고 진짜 친구가 되어 헤어진다. 출국하는 쇼코를 배웅하는 소유에게 쇼코는 출국장을 나가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첫 페이지 읽으면서 알았다. 몇 년 전에 읽었다는 걸.... 

 중간에 좀 울었다. 인생이란 게 원하는 대로, 노력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꿈은 무지개처럼 찬란하다가 서서히 흐려지고 사라진다. 더구나 원치 않아도 꼭 같이 살아내야 할 사람이 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너무 많다. 

 대부분 그랬지만 이 페이퍼는 낙서 정도밖에 안 될 것 같다.


씬짜오, 씬짜오

단편소설의 명작으로 불리울만한 작품. 이 작품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너무 눈물이 많은 걸까.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또 울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서서히 물가로 인도하는 걸까. 눈물가로.


한지와 영주

사람의 가장 약한 부위를 자꾸 두드린다. 흔든다. 약하게 세심하게 순하지만 끈기있게.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 치밀하고 섬세하다. 


먼 곳에서 온 노래

사랑했던 선배(언니)의 죽음 후에 그녀가 묵었던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내가 애도하는 내용.

선배 미진의 열정적이면서도 외곬의 성격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은 너무 성격이 좋거나 무디거나 융통성이 지나치게 좋아서는 안된다. 고집, 열정, 냉소, 슬픔, 정의로움, 심부에 숨겨진 사랑과 따스함. 외로움 등을 갖추어야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


미카엘라

세월호 사건을 가져왔지만 그 유족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엄마가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친구의 손녀가 세월호 희생자이다. 아무리 먼 관계라해도 슬픔은 모두의 것이라는, 인간이면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걸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비밀

손녀에게 편지를 쓰는 할머니. 중국 어떤 시골 구석에 박힌 학교의 교사가 된 손녀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손녀가 잘 되기만을, 손녀가 얼마나 자신에게 큰 기쁨을 주었던가를, 울지 않고 이 편지를 어찌 읽을 수 있으랴. 

단편소설집을 읽으며 이렇게 눈물을 짜보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처음 쇼코의 미소부터 눈물겨웠다. 그리고 그 다음 그 다음 계속 그렇게 눈물겨웠다. 그래서 언제까지 나를 울릴래,하면서 끝까지 읽었다. 이 작가의 감정을 노크하는 방식은 정말 무섭도록 섬세하고 한편 흔하디흔한 고전적 방식을 사용한다. 아침이 되었다. 밖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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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피곤해서 이 책의 첫번째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만 적고 페이퍼를 접었다. 해서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2번째의 감상문을 올리게 됐다. 다시 목차를 소환해보면,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잔존의 파토스(강지희)-해설


조중균의 세계

 화자(나이면서 관찰자)는 경력이 괜찮은 (대학원도 다녔고 성인 단행본은 아니지만 아동서 편집을 맡은 적이 있던) 영주. 나(영주)는 인턴으로 출판사에 다니게 됐다. 해란씨와 나, 둘이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인턴기간이 끝나면 한 명만 남게 될 것이다. 부장이 나에게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 영주씨는 말 그대료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씨는 주먹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고기 좋아하나?"

 사람을 '고기'로 표현하는 부장은 자신의 비유가 적절하다고 자찬하기까지 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단박에 설명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 주인공은 이 두여자가 아니라 조중균씨다. 그는 교정교열만 담당하는 직원인데. 오직 일만 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먹지 않고 그 점심값을 받아내기 위해 자신이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원식당 입구에서 점심시간 내내 서 있는 사람. 수첩을 갖고 다니며 자신이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확인을 본부장에게 받고 본부장이 식당에 오지 않는 날엔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확인사인을 받는 사람. 

 그러다 한 노교수의 한국사를 다룬 책을 출간하기 위해 교정할 일이 조중균씨에게 떨어진다. 조중균씨는 노교수의 닦달을 들은체도 하지 않고 책상 옆에 수많은 논문집과 참고할 책을 쌓아놓고 기나긴 일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일을 매달려한다. 그럴수록 그는 부장의 미움을 받고 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해란씨는 그의 편에 서서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점점 그들 둘이 떨어져나가고 내가 이 회사에 남게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셋이서 회식을 한 날, 조중균씨가 두 여자를 데려간 곳은 '지나간 세계'라 쓰여있는, 조중균씨와 친구가 사는 술집겸 그들의 거처. 그 곳에서 조중균씨의 친구(형수)는 조중균이 얼마나 영웅적인 사람인지 과거사를 들려준다. 

 이름만 적으면 학점을 주겠다는 교수의 시험 시간에 이름을 적지 않고 조중균은 시험지에 자신의 시를 썼단다. 결과는 "망했지, 유급했지, 군대갔지. 사고났지." . 그의 시는 데모대를 선동하는 힘이 있어 '전단시'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나간 세계"를 자기의 시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나의 시라고....

 그러다 데모 중에 그는 경찰서에 끌려갔고 풀려날 때, 한 형사가 목욕이나 하고 들어가라며 오천원을 준 것을 돌려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항상 주머니에 이만원을 넣고 다닌다. 혹시라도 그 형사를 만나게 되면 돌려주겠다는 의도에서. 그건 모욕을 되갚는다는, 복수를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증표라고...

 해란씨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다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찍는다. 꽃 하나, 고양이 한 마리 없는데...

 그리고 정말 나만 남고 조중균씨는 직무 유기,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 되었고 해란씨는 수습기간을 끝내고 정식 채용되지 못했다. 나는 지나간 세계가 어디 있었던가를, 그 술집에 한 번 가볼까, 생각한다. 조중균씨의 세계, 거기엔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권여선의 <팔도 기획>이었던가, 그 단편이 생각났다. 

 맞다. 학벌이 형형하지 못한, 부르주아가 아닌, 적당한 세련미와 적당한 처세를 하지 않는, 자신의 올곧은 심성을 기준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눈치껏 아부하지 않는, 그들, 그런 사람들은 그 맑음의 댓가를 더러움이라는 정반대의 것으로 당하기 쉽다. 희생양이 되기 쉽다. 적당히라는 말, 합리적이라는 말, 좋은 게 좋다는 말, 그런 뭉뚱그려지는 의식을 가져야 주류에 편입해 잘 살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답답하고 꼬장꼬장하고 우습기까지 하고 촌스런 사고의 조중균씨야말로 이 세계를 청정하게 지켜주는 나무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데 어디에 있나? 있기를 바라면 그것 또한 우습기까지 한 촌스런 사람쯤 되겠지.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한 편 한 편을 쓰다간 한두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이제부터는 세 줄로 요약하기.


세실리아

 요트 동아리에서, 대학 때 학부에서의 동창생들 중에 세실리아가 있다. 동문회를 하면 일 년에 한 번쯤 모두를 만나게 되는데 세실리아는 한번도 오지 않는다. 인천 세실리아의 레지던스를 찾아가 20대 때의 트라우마를 힘겹게 안고 사는 세실리아를 만난다. 그녀의 치열한 예술과 정직한 삶, 생의 속물성에 물들지 않는 아직도 젊고 아픈 세실리아... 


반월

 섬에 사는 이모를 온 식구가 찾아가 여름 한 철 나는 이야기. 이모의 평범하지 않은 삶의 표면이라도 만지게 된 나, 이모와 함께 반월이 뜬 밤,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반월은 하늘에 걸려있고 해변의 불꽃은 반월을 향해 터지며 올라간다. 


고기

 첨부터 끝까지 긴장과 미스터리함이 지배하는 작품. 육식성의 인간들, 그러나 누가 진짜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누가 진짜 이 악을 탄생시킨 건지, 모든 게 얽혀 헷갈린다. 진실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과 공포가 뒷목을 누른다. 상한 고기를 사게 되어 그 일을 신고하고 그것(고객의 컴플레인)을 되돌리려는 지사의 정육담당 남자와 그녀의 대치, 알 수 없는 일을 하는 수상한 남편. 남편을 부리는 고모는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녀는 모든 것이 붕괴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컴플레인에 마지막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인가.


개를 기다리는 일

 유학 중에 개를 잃어버렸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귀국한 그녀는 공원 옆에 미니쿠퍼를 세워놓고 매일 개를 기다린다. 한 중학생이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준다며 개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녀의 엄마가 죽였을 거라고, 매일 마주치는 순찰도는 경찰은 이상하게 애매한 소리를 하고, 전화를 하는 제보자들은 단지 돈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하지만 엄마는 부부싸움 중에 개가 스스로 날뛰다(거울을 보고) 죽었다고 한다. 엄마의 말은, 경찰은, 중학생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사실일까. 그들은 사실 진실을 말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어떤 상황 때문에 선의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아닐까..... 이 작품 또한 미스터리하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화천, 옥수수밭이 무성한 언덕 위의 고아원에서 그녀는 자랐다. 수녀님은 언제나 공정했고 표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인이 되어 옥수동에 월세를 얻어 독립했다. 그녀는 간호보조원이다. 자신이 사는 집은 그녀 전에 한 남자가 살았단다. 그는 일하지 않고 하늘의 별이나 보는 백수였다. 그녀는 병원에서 도어맨인 남자를 만난다. 그들은 아직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도시에서 주변인들이다. 그들은 옥상에서 별을 바라본 적이 있다. 화천에서는 자꾸 고아원이 문을 닫게 되었으니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한다. 그녀는 셈을 해보고 다시 셈을 해보고, 그 편지를 읽지 않는다. 그녀는 구조가 이상해서 간호사들도 헷갈리는 병원 안에서 오늘도 헤맨다. 


보통의 시절

 얼마나 웃었는지.... 암에 걸린 큰오빠가 자신들의 원수를 찾아가자고 한다. 큰오빠, 작은오빠, 언니, 나, 나의 학생이며 이제 청년이 된 상준, 이들은 일산의 한 임대아파트를 찾아간다. 그곳엔 목욕탕에 불을 내 결국 부모가 죽게 되고 이렇게 망하게 된 원수 김대춘이 살고 있다. 

가는 중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들, 김대춘 집에 도착해보니 막상 그는 비쩍 마른 데다 그의 딸은 장애를 가진 딸.... 남매들이 그를 몰아세우지만 김대춘은 사실 그들이 복수할 사람이 되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 장대한 여정이었던 것이 범상한 하루가 되어버린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그 순간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이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흐려져 심상한 일상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다. 유머와 비트는 솜씨가 일품이다. 읽으면서 엄청 웃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고양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죽지 못하는 한 중년이 넘은 남자.

 그는 가구회사의 과장이었다. 주문제작하는 가구들은 아주 세심하고 정확해야하는데 그는 그일에 뛰어난 장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해고되기 직전의 수순으로 좌천되었다. 많은 해고직전의 직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어떤 행동을 하려하나 그는 순순히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한다. 아주 열심히.

 그리고 저녁이 되면 고양이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고양이를 찾아주러 다닌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고양이 주인들을 위해서도 아닌, 헤매고 다닐 고양이 때문에 화를 내면서 그 일을 한다. 그가 죽지 못한 것은 그가 죽으려던 결정적 순간에 앞 마당의 다라이에 고양이 새끼들이 낳아져 있던 걸 보았던 까닭이었다. 그 새끼들 때문에 그는 삶을 자꾸 연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회사 마당에서 사장을 만난다. 30년 가까이 그가 일해온 회사의 사장, 사장은 자전거를 타며 그에게 직능계발부서를 만들테니 그 장이 되라고 한다. 해고해야 될 직원들을 해고시키는 장이 되라고...

 사장이 떠난 후, 그는 굴뚝 아래로 떨어져 흔들리는 현수막의 글자가 궁금해 굴뚝을 타고 오른다. 고양이들을 찾아달라는 전화가 울리는데 그 전화를 받을 수 없다. 해고자가 걸려던 그 현수막의 글자는 무슨 글일까.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전화를 하면서 우는 여자들을 견딜 수 없다고, 그는 그런 것에는 단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굴뚝을 오른다.


 작품마다 사건과 인물이 매혹적이다. 작가의 안목이 넓고 유머가 깔려있어 미끌어져 끌려가듯 읽었다. 체홉을 읽을 때의 느낌과 대척되는 느낌이라면, 그래서 체홉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사건을 다루는 묘사나 서술이 다르다는 뜻이다. 선조적 작가의 이야기톤과 그 방식이 지금의 작가들과 다른 건 당연한 일. 그들, 옛날 작가와 현재의 작가 모두 내겐 흔연하고 흔연하다.  

 세 줄 요약? 어림도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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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오래전 일이라고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기껏 올해 1월달이었다. 모든 게 죄 잊혀지는 깜깜한 나의 기억(머리)이지만 그건 잊혀지지 않았다. 김금희라는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거부했다는 뉴스 아닌 뉴스. 남자와 여자를 가르자는 건 아니지만 남자작가들도 그런 용기를 낸 적이 없던 문학판에서의 일이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당시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내 생각은 좀 삐딱하고 한심했다) 정말 자신있는 사람인가보다, 작가이니 그 자신감은 필력과 필력을 받쳐주는 내공이겠지, 싶었다. 물론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부정한 관행에 작가 자신의 소신과 결단을 행하는 게 응당 그래야 할 일이지, 어떻게 필력과 연관지을 일인가,라고 스스로도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런 삐딱한 나의 짐작은 드러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이 한 권의 책으로도 김금희의 존재감은 각인될 만하다. 여러 사람들이 리뷰에서 김금희, 김금희 했던 이유를 알고도 남겠다. 

 이 작가는 세상을 골고루 겪어본 사람처럼 여러 분야에서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주인공 자격이 충분한 외롭고 소외되고 그런데도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떨 때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어떨 때는 3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인칭 시점의 관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봐야 심도 있는 평을 할 수 있겠지만 또 찾아 읽겠다는 결심은 쉽게 할 수 없다(책 읽는 로봇이 하나 있어 독서 후 그 기억을 내 뇌로 그대로 전이시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그러면 나는 절대 책을 읽지 않을지도 모르지. 놀고 자고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 하나만으로 독후감상을 제대로 해야겠다. 


차례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해설: 잔존의 파토스(강지희)




너무 한낮의 연애

 영업부 팀장이었던 필용이 시설부서로 좌천된 후 자신의 20대로 돌아가보는, 연애라기에는 애매한 연애소설.

 그는 시설부로 좌천되고부터(영업부에서 일할 때는 사람들과 늘 함께 무언가를 했지만 지금은 혼자 있을 시간이 많다) 종로 2가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는다. 그러다 맞은편 건물에 내걸린 현수막을 본다. 거기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다. 그건 20대 양희의 메모 속에 있던 문장이었다. 

 그러자 점심시간마다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십육 년 전, 그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양희. 그러나 그 시절 먹었던 피시버거는 사라진지 오래다. 

 필용은 양희의 연극이 점심시간마다 근처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열리는 소극장으로 찾아간다. 연극은 너무나 간단한 형식이다. 매일 한 명의 관객을 무대에 앉히고 배우와 관객이 서로를 계속 바라본다. 

 그러면서 양희와의 과거가 서술된다. 먼저 고백했던 양희. 그래서 그는 양희의 마음에 매이게 되었었다. 하지만 양희는 아주 담담하다. 오늘도 같애, 라는 말로 그 담담하고 조용한 사랑을 전한다. 그러다 얼마 안 가, 양희는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주 황당하고 화가 나 그녀에게 욕까지 하며 싸운다.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게 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며.....

 끝내 그는 친구 차를 빌려 양희가 산다는 문산을 찾아간다. 상상밖으로 궁핍하고 대책이 없는 부모와 양희는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필용은 울면서 돌아온다. 필용은 이 작품서 두 번 우는데, 문산서 돌아올 때, 그리고 연극에서 자신이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양희와 눈을 맞추고 내려와 되돌아 직장으로 걸어갈 때. 

 너무 환한 대낮, 길거리에서 운다는 건 곤혹스런 일이다. 십육 년 전 끝난 연애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감정을 어떻게도 추스를 수 없는 건 너무나 곤혹스런 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직장으로 걷던 필용이 다시 극장으로 뛰어가보지만 양희는 보이지 않고 청소하는 남자와 매표하던 아가씨만 보인다. 


조중균의 세계와 그 이하의 단편은 오늘 밤이나 내일 적어야겠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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