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차례


바빌론의 탑

이해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 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타리



바빌론의 탑

 구약의 바빌론의 탑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너무 높아서 그 끝이 보이지 않고 구름 속으로 첨탑이 사라지는  광경만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정적인 그림이었다. 디테일한 정경은 애초에 어려웠다. 상상이란 것도 그 비슷한 지식이나 경험이 최소한은 있어야 가능하니까. 그 막연했던 상상이 이 단편을 통해 구체성을 얻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은 탑이 구름을 뚫고 더 올라가 우주로 나아가게 놔두지 않는다. 마지막 탑의 꼭대기에서 하늘의 문이라 믿었던 곳을 뚫고 그 물줄기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진 곳은 다시 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상의 사막에 불과하다. 구약의 시대라는 배경을 놓고 생각해보면 하늘의 문이라는 설정이 타당성을 얻는다.

 어쨋든 바빌론의 탑은 아무리 높이 쌓아도, 아무리 오래 공을 들여 몇 세기를 쌓아도 하늘에 닿지 못한다.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을 만나지 못한다. 그저 인간들끼리의 장엄한 문화에 그칠 뿐. 이 작품에서처럼 다시 땅을 향해 첨탑의 방향을 돌렸든, 현 세기의 로케트처럼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궤도 하나를 만들어내든.

 그렇게 바빌론의 탑은 통찰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앞으로도 견지될 거라는 것,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최고도의 문명이 지상에 실현된다 해도 우리의 생 자체가 완전한 형태와 내용을 갖추지 못할 거라는 것. 삶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복잡다단하여 이런 탑을 짓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이해

 식물인간이었던 남자가 특수한 신약을 주입하고 초월적인 지능을 갖게 된 이후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갈수록 내 머리로는 이해 불능이어서 페이지를 넘기고 결말을 읽고 말았다. 결말은 자기처럼 신약을 먼저 맞았던 남자와의 대결에서 패하고(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라 상대의 의식을 교란시켜 붕괴하는 공격?) 스스로 붕괴되는 남자.


영으로 나누면

 첫 페이지부터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걸렀다.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의 원작.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다른 외계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의 사고체계를 같이 흡수하게 된 언어학자의 삶이 '인생'이 된다.

 헵타포드의 문자는 우리처럼  단어와 단어들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의미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들의 문자는 시작과 끝이 없이 주어 안에 이미 술어가 생성되고 있고 술어 안에 주어가 깃들어있다. 영화에서는 오징어의 먹물 같은 외계인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물질로 둥그런 모양의 원을 형성한다. 

 그런 문자는 우리의 순차적인, 시간적인 인과관계의 논리와 그들의 의식체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그들은 시간의 어느 부분들을 블록화 해 전체를 커다랗게 입체화한다. 

 언어학자는 그들의 문자를 배우면서 그들의 사고를 자신도 모르게 체득한다. 그리고 헵타포드들과의 면담에 동행하면서 만난 물리학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물리학자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될 거라는 것, 그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스물 다섯에 죽게 되리라는 미래(우리의 시점에서는 미래)를 알게 된다(헵타포드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으로는 예지나 추측이 되겠지만 헵타포드에게는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인과적, 그들은 목적론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미래를 받아들인다. 결과를 알면서도 그녀는 선택한다. 딸이 크는 중간에 남편(물리학자)은 떠나고 그는 새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는 딸은 스물다섯에 등반사고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런데 정말 그 여자, 언어학자가 너무나 잘 이해됐다. 나에게도 삼십 년 전에 똑같은 상황이 주어지고 내가 그녀라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남편은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내 딸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ㅠㅠ..... 암튼 몇 년 전에 '컨택트'는 정말 잘 봐 두었다. 영화 덕에 쉽게 이해되었다. 헵타포드라면 몇 년 뒤에 이 책을 읽을 줄 알고 당연히 보았을 영화였겠지. 나는 당시 이 책을 읽을 줄 전혀 몰랐었다.


일흔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두 단편 모두 이해 불능, 독서 불가.


지옥은 신의 부재

 이 단편집에서 가장 쉬운 소재. 

 사랑했던 아내를 천사의 강림 시에 잃은 남자. 그녀가 천국에 들어올려졌기 때문에 그녀와의 재회를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신을 사랑하던지 천국의 빛을 보고 단숨에 천국으로 올라가고자 지난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는 강림한 천사를 보기 위해 운전하다 벼락에 맞아 숨을 거두고...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는 신을 사랑하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신을 체험한 사람은 어떤 논리나 인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신을 느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신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잘못도 없이 지옥에 떨어진다. 한데도 그는 열성적으로 신을 사랑한다. 아내와의 재회도 이루지 못했음에도.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닐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이런 신앙은 인간 스스로는 가능하지 않다. 천사의 강림을 닐이 보았기 때문에, 그 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일 터. 그런데 신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행복(보통 우리 인간이 말하는 그런 행복보다 더 높은 차원의) 할 거라는 건 나로선 어느 정도 확신이 된다. 아니 확신이라는 건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없고 완전히 믿는 거겠지만 아직은 '어느 정도 확신'이라고 해 두어야겠다...

 인간과 신, 지옥과 천국을 두루 생각하게 해 준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외모 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운동이 일어나는 즈음, 한 대학에서도 '칼리'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신입생들에게 찬반의견을 묻는다. 뇌의 아주 작은 영역에 주사를 하면 그 물질이 인간 안면에 대한 의식을 하지 않게 된다는, 그래서 얼굴에 관한 미의식이 사라져 모든 사람을 미모가 아닌 그냥 한 전인적 인간으로서 판단하게 된다는... 칼리 프로그램.

 이 '칼리'에 대한 찬반 토론이 이 소설의 주제이고 형식이다. 과연 인간은 같은 인간끼리 얼굴의 표정이나 윤곽을 중요시하지 않고 전체적인 인간성(성격, 품성, 지성, 기타)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게 합리적이라는 건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기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참 어려운 갈림길이다. 이 작품 안에서도 수많은 인물들이 칼리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데 어느 쪽을 읽어봐도 이해가 금방 되고 공감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내 의견을 갖지 못하겠다. 


 아주아주 어려운 책이었다. 그간 내용이 어려워서거나 너무 지루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생각났다. 그것들도 한 번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내가 읽다가 만 책들,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작가들의 책 몇 권을 다루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