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오래전 일이라고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기껏 올해 1월달이었다. 모든 게 죄 잊혀지는 깜깜한 나의 기억(머리)이지만 그건 잊혀지지 않았다. 김금희라는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거부했다는 뉴스 아닌 뉴스. 남자와 여자를 가르자는 건 아니지만 남자작가들도 그런 용기를 낸 적이 없던 문학판에서의 일이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당시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내 생각은 좀 삐딱하고 한심했다) 정말 자신있는 사람인가보다, 작가이니 그 자신감은 필력과 필력을 받쳐주는 내공이겠지, 싶었다. 물론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부정한 관행에 작가 자신의 소신과 결단을 행하는 게 응당 그래야 할 일이지, 어떻게 필력과 연관지을 일인가,라고 스스로도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런 삐딱한 나의 짐작은 드러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이 한 권의 책으로도 김금희의 존재감은 각인될 만하다. 여러 사람들이 리뷰에서 김금희, 김금희 했던 이유를 알고도 남겠다.
이 작가는 세상을 골고루 겪어본 사람처럼 여러 분야에서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주인공 자격이 충분한 외롭고 소외되고 그런데도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떨 때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어떨 때는 3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인칭 시점의 관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봐야 심도 있는 평을 할 수 있겠지만 또 찾아 읽겠다는 결심은 쉽게 할 수 없다(책 읽는 로봇이 하나 있어 독서 후 그 기억을 내 뇌로 그대로 전이시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그러면 나는 절대 책을 읽지 않을지도 모르지. 놀고 자고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 하나만으로 독후감상을 제대로 해야겠다.
차례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해설: 잔존의 파토스(강지희)
너무 한낮의 연애
영업부 팀장이었던 필용이 시설부서로 좌천된 후 자신의 20대로 돌아가보는, 연애라기에는 애매한 연애소설.
그는 시설부로 좌천되고부터(영업부에서 일할 때는 사람들과 늘 함께 무언가를 했지만 지금은 혼자 있을 시간이 많다) 종로 2가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는다. 그러다 맞은편 건물에 내걸린 현수막을 본다. 거기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다. 그건 20대 양희의 메모 속에 있던 문장이었다.
그러자 점심시간마다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십육 년 전, 그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양희. 그러나 그 시절 먹었던 피시버거는 사라진지 오래다.
필용은 양희의 연극이 점심시간마다 근처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열리는 소극장으로 찾아간다. 연극은 너무나 간단한 형식이다. 매일 한 명의 관객을 무대에 앉히고 배우와 관객이 서로를 계속 바라본다.
그러면서 양희와의 과거가 서술된다. 먼저 고백했던 양희. 그래서 그는 양희의 마음에 매이게 되었었다. 하지만 양희는 아주 담담하다. 오늘도 같애, 라는 말로 그 담담하고 조용한 사랑을 전한다. 그러다 얼마 안 가, 양희는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주 황당하고 화가 나 그녀에게 욕까지 하며 싸운다.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게 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며.....
끝내 그는 친구 차를 빌려 양희가 산다는 문산을 찾아간다. 상상밖으로 궁핍하고 대책이 없는 부모와 양희는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필용은 울면서 돌아온다. 필용은 이 작품서 두 번 우는데, 문산서 돌아올 때, 그리고 연극에서 자신이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양희와 눈을 맞추고 내려와 되돌아 직장으로 걸어갈 때.
너무 환한 대낮, 길거리에서 운다는 건 곤혹스런 일이다. 십육 년 전 끝난 연애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감정을 어떻게도 추스를 수 없는 건 너무나 곤혹스런 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직장으로 걷던 필용이 다시 극장으로 뛰어가보지만 양희는 보이지 않고 청소하는 남자와 매표하던 아가씨만 보인다.
조중균의 세계와 그 이하의 단편은 오늘 밤이나 내일 적어야겠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