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학교 다닐 때 그 텍스트는 전혀 몰라도 시험을 위해 외우는 게 있다. 역사에서는 연도와 이름을 외우고 국어에서는 두음법칙이나 의존명사를 외운다. 수학은 공식을 외우고 과학에서는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무슨 물질인지 모르는 기호로 된 물질명을 외운다. 그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외웠다. 그리고 나중에 대충 어디선가 읽었을 것이다.
그 비극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고뇌하는 주인공, 그래서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을 꼽으라면 햄릿이라고 무조건 생각했다. 그건 책 내용 때문이 아니라 햄릿이 그만큼 우유부단하고 사념에 사로잡힌 인물이라는 소문(?)에 휘둘려서였다. 햄릿만큼 확실한 캐릭터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 돈키호테, 어린왕자, 개츠비,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귀여운 여인, 안나 카레니나 등등..... 무수히 많지만 단연코 고뇌를 짊어진 인간의 대명사는 햄릿이다. 그 후광에 힘입어, 햄릿이라는 전형적 인간상에 기대어 여전히 햄릿은 유효하고 각광받는 것 같다.
나는 햄릿이 얼마나 고뇌하는지, 햄릿이 홀로 얼마나 외로움에 사무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햄릿을 읽었다. 허나 소설이 아니라 희곡이어서, 햄릿에 대한 설명과 묘사 없이 대사 뿐이어서 내가 상상했던 것 만큼의 햄릿의 고통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햄릿이 처한 상황이나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너무나 전형적이고 역사의 한 장면을 가져다 붙인 것 같아서 그 점이 아이러니하게 신선했다. 그런 점이 당시의 '비극'이라는 연극에 합당한 내용이었을 것이고 당시의 관객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21세기 현재의 연극이나 소설에 비하면 훨씬 스케일이 크고 전형적인 인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사실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완전히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고 한다. 12세기 말경에 씌어지고 1514년에 처음 출판된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역사에> 실려있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천재라기보다 주어진 이야기를 재구성 혹은 재해석하는 천재라고 말해진다. 그는 자유롭게 소재를 빌려와 자기 의도에 맞추어 그것을 자르고, 붙이고, 늘리고, 틈새를 메웠다..... 셰익스피어가 구성과 인물짓기를 통하여 생기 없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평면적인 인물에 입체감을, 평범한 주제에 새롭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알수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삭소의 이야기를 직접 읽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삭소의 이야기를 재서술한 프랑스 사람 벨포리스트의 <비극적 이야기>를 읽었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그러나 그런 원형의 책들(이야기)이 있다해도, 그것들은 항상 셰익스피어의 창조적 변형력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쓰이지 그의 의존성을 증명하는 자료로 쓰이지는 않는다. (작품해설213~214쪽)
나 또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셰익스피어의 풍부한 어휘와 문장구성력에 놀라웠다. 천재작가다운 대사가 페이지마다 영롱하게 빛났다. 어떤 때는 나의 무디고 무지한 해석력 때문에 그 문장(대사)이 얼마나 오묘한지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또한 그간 막연히 추측했던 햄릿이 사실은 그렇게 고뇌하기만 한 왕자는 아니었으며 폐쇄적이기보다 상당히 사교적이고 통솔력이 있으며, 기지에 능하고 전략도 세울 줄 아는, 인기있는 왕자였다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자신을 팔푼이, 미친사람으로 연기를 해 주위를 속이는 장면에서는 지략이 뛰어난 전형적인 궁중의 노련한 왕자임이 명백했다.
하지만 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 결말은 인간의 계획이라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햄릿이 자신의 삼촌인줄 알고 찌른 검에 죽은 사람이 다름 아닌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인 건 무얼 의미하는가. 레어티즈와 왕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죽이려고 모의한 결투에서 어이없게도 거트루드와 자신들(레어티즈와 왕)이 죽는 것은 햄릿이 곧이어 죽었다해도 얼마나 모순에 찬 한심한 음모에 불과했던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미쳐버린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미칭광이 행세를 한 햄릿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그리고 아무 죄도 없이 미치고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의 생에 대해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햄릿은 자신의 복수를 하려다 연인의 집안을 파멸시켰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죽이려다 사랑하는 거트루드를 죽이고 자신도 죽게 된다. 레어티즈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다 자신마저 죽는다. 인간이 하려는 계획은 미리 계산된 것이었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서로가 내민 독에 서로 감염되어 공멸하고 만다. 생은 겨우 이렇게 이어지다 어이없이 내리막을 걷고 어두운 땅 속으로 사라진다. 너무나 허무해서 당장 죽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마저 의미없는 짓이다. 인간의 몸짓은 거대한 자연 앞에, 완전한 시간 앞에 그저 나부끼다 떨어져 뒹굴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낙엽 하나일 뿐....
갑자기 모든 의미가 사라진다. 아, 안된다. 내가 이 햄릿을 읽은 의미마저 사라지면 안된다. ㅠㅠ . 하나도 의미없는 가운데 어떤 의미 하나가 일어선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을 써야할 의미가 있다. 그 오묘한 문장들이 의미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다.
동족보단 좀 가깝고 동류라긴 좀 멀구나.
어서 밤이 왔으면. 그때까진 종용해라 내 영혼아. 악행은 천길 만길 파묻어도 사람 눈에 발각되리.
악담의 타격은 미덕의 화신도 못 피해. 봄의 새싹들이 봉오리를 열기도 전에 자벌레가 너무 자주 그들을 갉아먹고 청춘의 아침이슬 속에는 전염성 마름병이 당장에라도 생길 수 있다. 젊음은 곁에 뉘 없어도 자기에게 반항해.
피가 끓을 때면 영혼이 얼마나 아낌없이 혀에게 맹세를 빌려주는지. 얘야.
내가 몰라 터질 것만 같으니 말해 봐라. 죽었을 때 예를 갖춰 입관한 시신이 왜 수의를 찢었으며, 우리가 그 안에서 조용히 누운 너를 보았던 묘지가 왜 육중한 대리석 아가리를 열고 너를 다시 토해내었는지.
이성이나 맑은 정신 가지고는 이렇게 꼭 들어맞는 말을 할 순 없지.
저하, 그들의 값어치에 따라 그들을 대접하겠나이다.
나 원 참, 봐요, 훨씬 더 낫게 해야지. 모든 사람을 각자의 값어치대로만 대접하면, 태형을 피할 사람있어요? 당신의 명예와 가치에 버금가게 그들을 대접하시오.
경건한 외모와 신성한 행동으로 우리가 악마조차 달콤하게 만듦은 너무 흔히 입증되는 사실이다.
자신의 분별력을 교사로 삼으라고. 행위를 대사에, 대사를 행위에 맞추게.
왜냐하면 필요한 게 없는 자는 친구 보족 절대 없고, 모자람이 있는 자가 속빈 친구 시험하면 그와 바로 원수지기 때문이오.
** 장맛비가 주욱주욱 내리고 있다. 바람도 시원하고 빗소리도 시원하다. 토프레소에 내려가 맛난 디저트빵과 달콤한 비엔나커피를 마실 예정. 햄릿도 비엔나커피 한 잔이면 잊을 만할까. 아니, 햄릿이 이슈가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