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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작품
윤고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평점 :
윤고은 작가의 [불타는 작품]을 읽었다. 15년 전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수하물로 붙이고 울쩍한 마음으로 탄 비행 중에 우연히 구스타브 클림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워낙에 작품 ‘키스’로 유명했던 터라 그의 일대기를 무심한 눈길로 따라갔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비엔나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 있던 후배에 의해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클림트의 미술관을 관람하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전세계의 유명한 명화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거대한 사이즈의 실제 명화를 감상하다보니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의 내력과 무관하게 예술작품만이 갖고 있는 무한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정말 가뭄에 콩나듯이 가게 되는 미술관에서 아주 오래된 명화를 감상할 때마다 항상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나리자‘와 같이 정말로 유명한 작품들은 유리관 같은 것으로 감싸져 있다고 하던데, 그 외에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안내라인을 제외하고는 그 그림을 보호할 아무런 장치도 없다는 사실이 항상 신기하면서도 불안했다. 행여라도 어떤 미친 사람이 갑자기 그림에 이상한 물질을 부어버린다거나, 칼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그림을 상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슬쩍 그림에 손상을 가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이다.
예술의 영역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문화적 사치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술 활동은 생계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과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디는 이들과 예술활동을 적극적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있는 이들에게 모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어떠한 고통과 슬픔에도 살아갈 이유를 찾게 해 주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불타는 작품]은 안지아라는 작가와 로버트 재단과의 최고의 작품을 소각시키려는 긴장감을 누리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어쩌면 정여울 작가가 작품 해설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활동을 지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내라고, 그가 원하는 활동을 멈추지 말라고 격려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사건의 발단은 빌 모리라는 어느 사진 작가가 우연히 찍은 웨딩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랜드캐넌의 멋진 뷰포인트에서 찍힌 그 사진은 SNS를 통해서 주목을 받게 되지만 웨딩 사진의 주인공인 여자가 거대한 회사의 딸이라는 사실과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소문에 빌은 행여나 사법적 책임을 추궁당할까 두려워서 사실을 실토하게 된다. 하지만 빌이 말한 사실은 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바로 그 사진을 찍은 당사자는 빌 자신이 아니라 세워놓은 휴대폰 카메라의 버튼을 그곳 주위에 머물던 파피용 개가 찍었다는 사실이다. 실종당한 리나를 수사하던 경찰은 빌의 증언을 미심쩍어 했지만, 실제로 그 개가 동일한 상황에서 사진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고 빌의 증언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파피용 종의 개인 로버트는 유명해지고 리나의 아버지는 로버트와 함께 미술 작가를 지원하는 재단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다가 그만두고 배달 알바를 하던 안이지 작가는 로버트 재단의 제안을 받게 된다.
주인공인 안이지 작가는 영어로 표현하면 ‘Not easy’는 센스가 담긴 닉네임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주인공의 이름은 아마도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단순히 재능의 우열을 떠나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한 응원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이지 작가가 로버트 재단의 제안을 제시하는 최부장을 만났을 때만 해도 안이지 작가의 천재적인 잠재력을 로버트가 단숨에 알아보았기에, 이제 로버트 재단의 프로그램을 성실히 참가하여 유명해지는 일만 남지 않았을까란 희망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한 주인공은 밤이 될때까지 재단에서 마중나온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허름한 호텔에 묵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원치 않던 1/2 화장실을 공유한 방을 배정받게 되고, 유일하게 한 장 가져온 신용카드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가 없다. 두려움에 떨며 화장시를 공유한 옆방 사람이 샤워를 다 마치고 나서도 20여분이 지나서야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얼마나 불안한지 독자인 나 또한 로버트 재단의 어이없는 대응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주인공은 로버트 재단의 담당자가 실수로 데리고 간 비슷한 이름의 안영이라는 사람의 여정을 책임져 주는 동안 샘이라는 인턴 직원의 응대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재단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화장실을 공유한 옆방 남자인 오디션을 보러온 한국배우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재단에 간신히 도착하지만, 로버트 재단의 사람들인 샘과 대니는 주인공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자신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혼란스럽게 했다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인다. 로버트 재단의 직원들이 보인 반응은 단지 소설 속에서만 그려진 황당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과 서양 사람들의 사고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엄청 화를 내거나 황당하게 여겨질 일들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거나 미안하지만 자연재해와 같은 상황이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냐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아무튼 산불로 인해 재단에 도착하는 것도 수월치 않았던 안이지 작가는 재단 사람들이 보인 황당한 대응 플러스 로버트와의 첫 번째 만찬을 앞두고 받은 편지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게 정말로 자신을 예술가로 초대한 호스트의 환영인사가 맞는 것인지 분노가 치밀고, 로버트와의 식사를 하면서 몇 단계를 거쳐 개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소통되는 가운데 과연 서로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정말로 로버트인 저 파피용 개는 정말로 대화가 가능한 존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로버트 재단은 작가가 얼마든지 자유롭게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는 시스템을 구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로버트 재단은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라 자기들이 선택한 예술가를 통해 탄생된 예술작품의 가치를 최고로 높이고 그 작품을 소각하는 의식을 통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부가가치를 상승시키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작가가 원하는 모든 창작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배려와 작가가 창조해낸 최고의 작품을 소각하겠다는 권리 주장과 같은 아이러니를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주인공은 로버트와의 불편한 식사와 산책을 지속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작업은 하나도 진행되지 못한 채 로버트 재단을 둘러싼 Q라는 도시와 관련된 각종 이익집단의 제안을 받게 된다. 이슈가 이슈를 만든다는 말처럼 로버트 재단에서 간택한 무명에 가까운 작가가 기발한 작품을 탄생시키고 그 작품의 모티브가 된 Q라는 도시는 작가의 작품의 소각됨과 상반되게 주가가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되는 것이다. 안이지 작가는 이후 열 개의 작품을 완성하게 되고 <R의 똥>이라는 로버트가 선택할 것이라 예상되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9개의 작품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R의 똥>에 로버트가 원하는 것들로 구성했음에도 막상 그 작품이 소각용으로 선택되자, 주인공은 똑같은 위작을 그리며 그 작품을 소각에서 구하고 싶어진다. 소각될 것이라 생각하자, 마치 예언처럼 그 작품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소각식을 앞두고 주인공은 작품을 구하기 위해 보관된 장소로 몰래 잠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로버트를 만나고 어떤 것이 자신의 원작인지 위작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채 하나만 들고 나오게 된다. 그리고 대니는 주인공에게 로버트를 어디로 숨긴 것이냐는 추긍을 당하게 되고 주인공의 작품을 사겠다는 런던의 s 갤러리의 딜러는 소각되지 않은 작품은 구매할 가치를 상실했다는 말로 처음의 제안을 거둬들인다. 과연 로버트는 어떻게 된 것일까? 대니와의 설전에서 드러난 것처럼 로버트 재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처음의 로버트가 지금의 로버트와 같은 존재일 필요가 있느냐는 대답으로 보아 로버트를 대체할 파피용들은 어디선가 계속해서 관리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열린 결말에 대한 대답을 작가의 말에서 찾은 듯 하다.
“작가의 책상 위에서 발견되는 것은 잔해뿐이다. 로켓 아랫단의 추진체처럼, 이야기를 중력 너머로 쏘아 올리기 위해 온몸을 불태우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버려지는 존재. 그러므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원본을 찾고 싶다면 독자의 책상으로 건너가야 한다. 우리가 읽던 책의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살짝 접을 때,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거나, 굳이 흔적을 남기지 않더라도 책 속의 말이 그걸 바라보는 이를 흔들 때, 책을 비로소 원본이 된다. 하나뿐인 진짜가 된다.
우리도 책처럼 저마다 원본인데, 과잉과 과속의 시대에 그 중요한 사실이 자주 누락된다. 각자의 고유성을 증명할 만한 모서리가 떨어져나가거나 닳아서 뭉툭해지고,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뻗어나간다. 소설에 등장한 ‘아트하이웨이’는 그런 불안감을 극대화한 설정이다. 예술가의 영감에서부터 예술의 파급력까지 이르는 과정을 단축하자는 움직임인데, 영감도 파급력도 우리가 제자리를 만들어둘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다소 우스꽝스럽다. 이런 주객전도의 코미디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므로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을 초대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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