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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그동안 하루키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음에도 이번 작품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분권되지 않은 상태로 거의 벽돌책에 가까운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떤 사건의 흐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보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때로는 의식과 마음의 거리를 인식하게만드는 이름이 없는 주인공의 서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하루키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벌써 던져 버렸을지도 모를 감당하기 어려운 소설의 구조를 인내롭게 따라가보기로 했다. 하루키 작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작기 후기에 나온 내용을 보니 이 작품의 첫 시작과 마무리에 무려 40년이라는 긴 터울이 있었고, 구체적으로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발적인 감금이 지속된 시기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암울한 실재가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고, 주인공과 그의 그림자가가 대화를 나누는 부분과 결국 그림자를 살려 그림자가 주인공의 삶을 대체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상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이 세상 어딘가에 특별한 존재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두터운 벽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는 또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설정. 그리고 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야만 하고 자신에게서 떼어진 그림자는 얼마 되지 않아 소멸되고 그림자가 없어진 존재는 다시는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설정. 그림자에게 인격적인 지위를 주고 본체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지만 소설에 나온 것처럼 주인공을 대신해 주인공이 원래 있던 세상에서 그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해 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 그대로 믿고 있는 진실들이 때로는 우리를 둘러싼 바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이 열일곱 살때에 첫사랑이었던 소녀와 함께 만들어낸 가공의 도시. 소녀는 그렇게 주인공에게 첫사랑의 애틋함을 남기고 연락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소녀를 잊지 못하는 주인공은 아주 오랜시간 타인과의 내적인 교감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다가 소녀와 함께 만들었던 도시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여전히 열여섯살인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는 소년과 만날 때 말했던 것처럼 그 도시에서는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소녀를 만나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시계탑에 바늘이 없는 도시에서는 계절의 변화는 있지만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춰있기에 본래 시간의 흐름으로 생겨나는 것들에도 의미를 둘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은 오래된 꿈을 읽어 정체되어 있던 무언가를 풀어 소멸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마치 꿈 속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일어난 일들을 더 이상 얽매여 있지 않도록 자유를 주는 것만 같다. 그 도시에서 오래된 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주인공이 유일했는데, 주인공은 그림자가 소멸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림자를 본래 자신이 있던 세상에 보내기 위한 선택을 한다.
주인공은 그림자와 함께 문지기 몰래 그 도시에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림자만 보내고 자신은 남기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자신이 원래 있던 현실 세계로 돌아왔음을 알게 되고, 그동안 일해온 직장을 그만두고 그 도시에서 오래된 꿈을 읽었던 것처럼 현실 세계의 도서관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게 된 옐로 서브마린 파카를 입은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서 현실 세계를 돌아간 것이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그림자임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이전에 도서관장으로 일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에서는 그런 기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벽 안의 도시에 있는 주인공 또한 바깥세계에서 자신의 그림자가 대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본체인지, 그림자가 본체인지 서로가 역할을 바꾼 것인지 의아해한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논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하루키 특유의 인간 내면에 대한 집요한 통찰은 어느 사람이든 인생을 쉽게 얏잡아보며 막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특히나 타인의 선택과 인생에 대해서 너무나도 쉽게 폄하하며 단정짓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그 타인의 삶도 결코 그렇게 막나갈리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내면의 고독함과 어려움을 갖고 있기에 그것을 함께 나눌 이가 필요하지만 마치 일체를 이루는 것처럼 완벽한 분업이 가능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운이 좋아서 그런 대상을 일찌감치 만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재능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었다고 자신한다. 옐로 서브마린 파카를 입은 소년은 바깥세계에서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소년으로 도서관의 어머어마한 양의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그 소년과 가족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소년이 가족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오히려 도서관장이었던 고야스 씨와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 소년이 벽 안의 도시로 사라지자 주인공이 만난 소년의 아버지가 해왔던 고민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깥세계에서 불완전해보였던 그 소년은 주인공의 양쪽 귓볼을 강하게 깨물어 주인공과 벽 안의 도시에 일체가 되고 주인공을 대신해 오래된 꿈을 읽는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바깥세계에서는 필담과 간단한 말 밖에 주고받을 수 없었던 소년이 벽 안의 도시에서는 주인공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고 오래된 꿈을 해석하는 데 완전하지 못했던 주인공과는 다르게 수월하게 꿈을 읽는다. 현실과 비현실이 경계를 나누어 하나의 문으로만 출입이 가능한 그 불확실한 벽에 가려진 도시에서는 바깥세계에서의 판단과 기준이 모두 허물어진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시간이 멈춰진 첫사랑 소녀를 만나게 되고 오래된 꿈을 읽는 작업이 끝나면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며 바깥세상에서 공허한 삶을 살아온 시간들을 위로받는다. 그림자가 다시 하나가 되어 바깥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 것 또한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바깥세상에서 겪었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독의 시간이 더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벽돌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특별한 자격을 얻는 것과 현실세계에서는 그 수많은 톱니바퀴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 사이의 간극이 주인공의 선택을 응원하며 동조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마치 뭔가 꺼림칙한 게 남은 것처럼 언젠가는 주인공이 있던 자리에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대체할 능력을 가진 소년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주인공은 바깥세계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게 되고 촛불을 단숨에 불어 끔으로서 일장춘몽 같았던 오래된 꿈을 읽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로서의 역할을 마감한다.
어쩌면 하루키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주제 중의 하나는 유령 혹은 영혼이 되어 주인공과 마주한 여정을 통해서 비현실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비루한 하루 하루를 보낸다 하더라도 분명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고야스 씨는 한때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해 고뇌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부모에게서 한 덩어리의 정보를 물려받아, 자기 나름대로 약간의 수정과 가필을 하여 다시 자기 아이에게 물려준다 - 결국 자신은 단순한 일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긴 쇠사슬의 고리 하나일 뿐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설령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 널리 회자될 만한 일을 이뤄내지 못한다 한들 뭐 어떻단 말인가? 자신은 이렇게 어떤 가능성을 -그거 가능성일 뿐이라 해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꺼 살아온 의미가 있지 않은가.(380)”
특히나 벽 안의 도시와 바깥세계에서의 극명한 차이점은 바로 시계바늘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반대로 양쪽 다 계절의 변화는 명확하게 드러나서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분명 시간은 흐르기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이겠지만 , 벽 안의 도시에서는 시간이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어리고 젊을 때에는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느끼듯이 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는 -이를테면 내가 열일곱 살일 때는- 시간 같은 건 말 그대로 무한에 가까웠다. 물이 가득찬 거대한 저수지처럼. 그러니 시간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 시간은 유한하다. 그리고 나이들수록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점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쨌거나 시간으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가니까.(63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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