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정덕현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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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칼럼니스트의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를 읽었다. 써놓고 보니 제목이 무지 길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면 제목을 알려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 포털사이트 연예계 관련 기사에서 자주 보았던 대중문화 평론가의 글이라니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고, 역시나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고 솔직 담백한 저자의 고백이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우리나라 남녀노소 중에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덕후는 아니더라도 드라마 한 두 편 정도는 지속적으로 보는 게 우리가 쉬면서 즐기는 문화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소위 대박을 터트린 감독과 작가의 만남이라고 예고되는 작품들은 무조건 본방사수를 강요당하는 게 까십거리를 내뱉기 위한 필수요건이 아닌가 싶다. 통속적이든, 막장이든, 센세이션하든 각자 취향에 맞는다면 시간을 보내기 제일 좋고 또 보면서 의외로 많은 위로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강의를 앞두고 PPT를 만드는 중에 구체적인 예를 들기 위해 멜로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우연치 않게 ‘연애의 발견’을 보게 되었고, 드라마 작가가 혹시 내가 강의 중에 충분히 써먹을 수 있도록 알고서 대본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막히게 알맞은 대사를 듣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녹화되지 않은 드라마를 다시 보기가 요원했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손쉽게 작은 비용으로 다운 받을 수 있었고, 또 편집하기도 쉬운 프로그램도 많아 나같은 초보자도 영상 잘라내기를 통해 원하는 대사가 들어간 부분을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루하다못해 아예 안드로메다로 영혼이 가출한 것 같은 학생들이 달달한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한 부분을 보고 꺅 소리를 지른다거나 너무나 몰입해 그 다음 강의를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것은 함정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강의 평가의 내용을 보거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후일담은 방학을 맞이해서 ‘연애의 발견’을 정주행하며 인생드라마가 되었다며 뜬금없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이후 다른 드라마로 교체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멜로 드라마가 나오면 간간히 살펴보긴 했는데, ‘연애의 발견’처럼 적절한 대사가 나오는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작년에 방송된 ‘멜로가 체질’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늦었지만 정주행해 보았다. 작품 말미에는 시청률이 1%로도 안 나왔다고 스스로 디스하는 주연배우들의 열연이 몹시나 안타까울 만큼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아니 대체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왜 사람들이 안 본거지? 연기와 대사와 OST 까지 그야말로 ‘As good as it gets’ 라고나 할까! 다음에 강의를 하게 된다면 적절한 소재가 될 것 같다. 

“나이 들어가는 건 마치 망가져가는 것만 같다. 괴로운 일, 힘든 일을 많이 겪다보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망가져가는 것 같아 얼굴에 영양크림을 바르고 머리를 염색하고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기웃거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갯벌을 떠올린다. 조금 망가져도 괜찮다고, 그것도 즐거울 수 있다고. 적어도 누군가 찾아왔을 대 안심이 되는 정도의 적당한 망가짐은 ‘멋’일 수 있다고. <나의 아저씨>의 그 오래된 선술집처럼.(19)”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조금 비관적이긴 하지만 혹독하네.-멜로가 체질 중에서 (28)”

“당신은 지금 편안하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분명 주변의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있을 게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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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 양장)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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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을 읽었다. 책장을 덮으며 한 동안 ‘카야’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한동안 계속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거의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해왔는데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고 예상을 뛰어넘어 밀리언셀러에 등극하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습지에 대한 묘사와 등장 인물들간의 긴장감, 팽팽하게 연결된 플롯이 뒤로 갈수록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저자와 번역가와의 대담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워낙 속도가 빨라서, 플롯이 신속하게 전개되기를 바라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묘사적 글쓰기가 플롯을 느리게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기에, 작가는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생생히 살릴 수 있는 문장들을 고르고 골라야 합니다. 저는 독자가 생생한 세부 묘사를 통해 배경을 보고 체감하며 그 순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한 단어들을 찾으려고 열심히 고민합니다.(463)”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시리즈’ 등을 우리가 읽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묘사가 너무 장황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도대체 이야기가 언제 진행되는 것인지, 어떤 저자는 한 페이지도 넘게 그 상황을 묘사하니 사건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성미 급한 독자로서는 속터지는 마음에 책을 덮어버리고 만다. 인내롭게 묘사의 장면들을 넘기면 마치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다른 소설에서도 봤을 법한 비슷한 사건임에도 전혀 다르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엇인가를 건드려 준다. 클래식의 묘미는 바로 이렇게 진득하게 소중한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어서 내가 숨겨 놓은 것을 찾으라고 저자가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쉽게 읽히고 이야기의 흐름도 빠르기에 진도가 팍팍 나가지만 나중에 책을 덮고 나면 뭔가 공허함만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자의 말처럼 묘사와 플롯이 적절히 배분되어 우리에게는 생경한 습지와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던 ‘카야’의 쓸쓸함이 오랜 시간 마음에 머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인공 카야는 7살의 나이에 폭력과 도박과 술에 절은 아버지와 둘만 습지의 판자집에 남겨지게 된다. 얼마 후 아버지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카야는 생존을 위해 홀로 살아가야만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글도 모르던 카야에게 테이트라는 소년이 다가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가까워지지만 테이트는 카야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카야를 떠나고 만다. 다시 홀로된 카야는 마을의 망나니 체이스의 꾐에 넘어가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소설에서 체이스는 본능적인 우리 내면의 일부를 표상합니다. 발정 난 수사슴이고 남을 밀치고 유혹해 끝내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공격적인 인간이지요. 우리 모두, 남녀를 막론하고 체이스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테이트는 ‘더 인간적이고 더 진화되고 더 예민한’ 우리의 자질, 본능이 아닌 학습된 행동을 표상합니다. 시를 사랑하고 친절한 사람이지요. 우리에게는 테이트와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어느 쪽도 온전히 좋거나 나쁘지 않지요.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살면서 테이트보다 체이스 같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선천적으로 각인된 행동은 강력하고 생존을 정조준하기 때문이지요.-저자의 대담 중에서(468)”

누군가를 고립되도록 버려두지 않는 것, 전력을 다해서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을 놓치지 않는 것.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할 중요한 몫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카야를 망가뜨린 체이스가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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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인문학 여행 -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소울 플레이스를 동행하는 즐거움
박소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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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님의 [랜선 인문학 여행]을 읽었다. 부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소울 플레이스를 동행하는 즐거움’으로 되어 있다. Vincent van Gogh, Ernest Hemingway, Johann Wolfgang von Goethe, Charles Dickens 이렇게 4명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삶의 자리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저는 항상 마음이 섬세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지, 아니면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들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서정성을 갖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궁금했죠.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거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섬세한 결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책, 소설의 강력한 역할은 아무래도 ‘공감’인 것 같습니다. 폭력적이었던 인류가,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와 중세시대 종교재판의 고문을 보며 남의 고통에 쾌락을 느끼던 인류가, 점차 책의 보급과 독서의 확대로 공감력을 갖게 되면서 폭력성이 현격히 줄었다는 증거도 있으니까요. 스티븐 핑거 교수의 말대로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도 책을 읽으면 공감력이 더 확장되는 듯합니다.(20)”

고흐는 화가이면서 많은 책을 읽었기에 평생 어렵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평생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았고, 살아 생전에 그의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는 무명의 삶을 살았다. 고흐의 괴로움은 동생 테오와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는데, 결국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이며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무리 한다. 고흐가 37살에 죽기까지 약 10년 동안 그림을 그린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작품을 완성해 거의 2-3일 하나 꼴로 그림을 그린 셈이다. 고흐의 자살 이후 동생 테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망인이 된 테오의 부인 요안나는 고흐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고 고흐의 조카는 삼촌의 그림을 기증하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이 문을 열게 된다. 

“헤밍웨이는 인문학적 통찰을 지닌 기자였습니다. 그는 사실만 나열하듯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또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글로 옮겨야 하는데, 일생을 다 바쳐도 둘 중 하나 제대로 배우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지요.(134)”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파리의 라탱 지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라탱 지구에는 제임스 조이스도 살았는데 여기서 [율리시스]를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실제 얼굴 사진을 보니 리즈 시절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크루즈를 반반 섞어놓았다는 저자의 말에 맞장구를 칠 정도로 잘 생겼다. 유명한 예술가들은 흥정망청 살면서 개판인 생활습관을 지니고 영감이 불현듯 떠올라 위대한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싶지만, 헤밍웨이, 괴테, 디킨스도 모두 공통적으로 아주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정해진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글을 쓰고 오후에는 산책과 운동으로 체력을 비축하며 글쓰기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고흐 하면 압생트라는 엄청난 도수의 초록색 술이 떠오르는데 고흐가 압생트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시각에도 문제가 생겨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짙은 파랑과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고흐가 십년간 그린 그림의 양은 너무나도 방대해서 그가 과연 그렇게 매일 술에 취한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인생이란 어떤 상처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괴로움은 대부분 자기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거나, 집이 파산하거나 혹은 부모님이 사랑을 주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어린아이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이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지레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괴로운 어린 시절을 눈부신 보석으로 탈바꿈시키는 예술가들의 DNA가 빛을 발하죠.(260)”

“디킨스는 스스로를 ‘이니미터블inimitabl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뜻이지요.(237) 모든 예술가는 규칙적인 생활과 더불어 산책에서 영감을 받곤 하는데 디킨스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산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책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이니미터블, 그 표현이 딱 맞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아침식사를 한 뒤 집필하기 시작해 점심쯤 글을 마무리하고, 하루에 20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 많을 때는 50킬로미터 가까이 산책을 했습니다.(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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