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 양장)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을 읽었다. 책장을 덮으며 한 동안 ‘카야’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한동안 계속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거의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해왔는데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고 예상을 뛰어넘어 밀리언셀러에 등극하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습지에 대한 묘사와 등장 인물들간의 긴장감, 팽팽하게 연결된 플롯이 뒤로 갈수록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저자와 번역가와의 대담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워낙 속도가 빨라서, 플롯이 신속하게 전개되기를 바라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묘사적 글쓰기가 플롯을 느리게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기에, 작가는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생생히 살릴 수 있는 문장들을 고르고 골라야 합니다. 저는 독자가 생생한 세부 묘사를 통해 배경을 보고 체감하며 그 순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한 단어들을 찾으려고 열심히 고민합니다.(463)”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시리즈’ 등을 우리가 읽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묘사가 너무 장황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도대체 이야기가 언제 진행되는 것인지, 어떤 저자는 한 페이지도 넘게 그 상황을 묘사하니 사건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성미 급한 독자로서는 속터지는 마음에 책을 덮어버리고 만다. 인내롭게 묘사의 장면들을 넘기면 마치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다른 소설에서도 봤을 법한 비슷한 사건임에도 전혀 다르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엇인가를 건드려 준다. 클래식의 묘미는 바로 이렇게 진득하게 소중한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어서 내가 숨겨 놓은 것을 찾으라고 저자가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쉽게 읽히고 이야기의 흐름도 빠르기에 진도가 팍팍 나가지만 나중에 책을 덮고 나면 뭔가 공허함만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자의 말처럼 묘사와 플롯이 적절히 배분되어 우리에게는 생경한 습지와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던 ‘카야’의 쓸쓸함이 오랜 시간 마음에 머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인공 카야는 7살의 나이에 폭력과 도박과 술에 절은 아버지와 둘만 습지의 판자집에 남겨지게 된다. 얼마 후 아버지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카야는 생존을 위해 홀로 살아가야만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글도 모르던 카야에게 테이트라는 소년이 다가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가까워지지만 테이트는 카야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카야를 떠나고 만다. 다시 홀로된 카야는 마을의 망나니 체이스의 꾐에 넘어가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소설에서 체이스는 본능적인 우리 내면의 일부를 표상합니다. 발정 난 수사슴이고 남을 밀치고 유혹해 끝내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공격적인 인간이지요. 우리 모두, 남녀를 막론하고 체이스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테이트는 ‘더 인간적이고 더 진화되고 더 예민한’ 우리의 자질, 본능이 아닌 학습된 행동을 표상합니다. 시를 사랑하고 친절한 사람이지요. 우리에게는 테이트와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어느 쪽도 온전히 좋거나 나쁘지 않지요.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살면서 테이트보다 체이스 같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선천적으로 각인된 행동은 강력하고 생존을 정조준하기 때문이지요.-저자의 대담 중에서(468)”

누군가를 고립되도록 버려두지 않는 것, 전력을 다해서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을 놓치지 않는 것.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할 중요한 몫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카야를 망가뜨린 체이스가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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