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칼럼니스트의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를 읽었다. 써놓고 보니 제목이 무지 길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면 제목을 알려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 포털사이트 연예계 관련 기사에서 자주 보았던 대중문화 평론가의 글이라니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고, 역시나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고 솔직 담백한 저자의 고백이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우리나라 남녀노소 중에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덕후는 아니더라도 드라마 한 두 편 정도는 지속적으로 보는 게 우리가 쉬면서 즐기는 문화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소위 대박을 터트린 감독과 작가의 만남이라고 예고되는 작품들은 무조건 본방사수를 강요당하는 게 까십거리를 내뱉기 위한 필수요건이 아닌가 싶다. 통속적이든, 막장이든, 센세이션하든 각자 취향에 맞는다면 시간을 보내기 제일 좋고 또 보면서 의외로 많은 위로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강의를 앞두고 PPT를 만드는 중에 구체적인 예를 들기 위해 멜로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우연치 않게 ‘연애의 발견’을 보게 되었고, 드라마 작가가 혹시 내가 강의 중에 충분히 써먹을 수 있도록 알고서 대본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막히게 알맞은 대사를 듣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녹화되지 않은 드라마를 다시 보기가 요원했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손쉽게 작은 비용으로 다운 받을 수 있었고, 또 편집하기도 쉬운 프로그램도 많아 나같은 초보자도 영상 잘라내기를 통해 원하는 대사가 들어간 부분을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루하다못해 아예 안드로메다로 영혼이 가출한 것 같은 학생들이 달달한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한 부분을 보고 꺅 소리를 지른다거나 너무나 몰입해 그 다음 강의를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것은 함정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강의 평가의 내용을 보거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후일담은 방학을 맞이해서 ‘연애의 발견’을 정주행하며 인생드라마가 되었다며 뜬금없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이후 다른 드라마로 교체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멜로 드라마가 나오면 간간히 살펴보긴 했는데, ‘연애의 발견’처럼 적절한 대사가 나오는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작년에 방송된 ‘멜로가 체질’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늦었지만 정주행해 보았다. 작품 말미에는 시청률이 1%로도 안 나왔다고 스스로 디스하는 주연배우들의 열연이 몹시나 안타까울 만큼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아니 대체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왜 사람들이 안 본거지? 연기와 대사와 OST 까지 그야말로 ‘As good as it gets’ 라고나 할까! 다음에 강의를 하게 된다면 적절한 소재가 될 것 같다. “나이 들어가는 건 마치 망가져가는 것만 같다. 괴로운 일, 힘든 일을 많이 겪다보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망가져가는 것 같아 얼굴에 영양크림을 바르고 머리를 염색하고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기웃거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갯벌을 떠올린다. 조금 망가져도 괜찮다고, 그것도 즐거울 수 있다고. 적어도 누군가 찾아왔을 대 안심이 되는 정도의 적당한 망가짐은 ‘멋’일 수 있다고. <나의 아저씨>의 그 오래된 선술집처럼.(19)”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조금 비관적이긴 하지만 혹독하네.-멜로가 체질 중에서 (28)” “당신은 지금 편안하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분명 주변의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있을 게다.(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