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인문학 여행 -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소울 플레이스를 동행하는 즐거움
박소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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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님의 [랜선 인문학 여행]을 읽었다. 부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소울 플레이스를 동행하는 즐거움’으로 되어 있다. Vincent van Gogh, Ernest Hemingway, Johann Wolfgang von Goethe, Charles Dickens 이렇게 4명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삶의 자리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저는 항상 마음이 섬세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지, 아니면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들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서정성을 갖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궁금했죠.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거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섬세한 결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책, 소설의 강력한 역할은 아무래도 ‘공감’인 것 같습니다. 폭력적이었던 인류가,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와 중세시대 종교재판의 고문을 보며 남의 고통에 쾌락을 느끼던 인류가, 점차 책의 보급과 독서의 확대로 공감력을 갖게 되면서 폭력성이 현격히 줄었다는 증거도 있으니까요. 스티븐 핑거 교수의 말대로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도 책을 읽으면 공감력이 더 확장되는 듯합니다.(20)”

고흐는 화가이면서 많은 책을 읽었기에 평생 어렵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평생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았고, 살아 생전에 그의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는 무명의 삶을 살았다. 고흐의 괴로움은 동생 테오와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는데, 결국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이며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무리 한다. 고흐가 37살에 죽기까지 약 10년 동안 그림을 그린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작품을 완성해 거의 2-3일 하나 꼴로 그림을 그린 셈이다. 고흐의 자살 이후 동생 테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망인이 된 테오의 부인 요안나는 고흐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고 고흐의 조카는 삼촌의 그림을 기증하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이 문을 열게 된다. 

“헤밍웨이는 인문학적 통찰을 지닌 기자였습니다. 그는 사실만 나열하듯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또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글로 옮겨야 하는데, 일생을 다 바쳐도 둘 중 하나 제대로 배우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지요.(134)”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파리의 라탱 지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라탱 지구에는 제임스 조이스도 살았는데 여기서 [율리시스]를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실제 얼굴 사진을 보니 리즈 시절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크루즈를 반반 섞어놓았다는 저자의 말에 맞장구를 칠 정도로 잘 생겼다. 유명한 예술가들은 흥정망청 살면서 개판인 생활습관을 지니고 영감이 불현듯 떠올라 위대한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싶지만, 헤밍웨이, 괴테, 디킨스도 모두 공통적으로 아주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정해진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글을 쓰고 오후에는 산책과 운동으로 체력을 비축하며 글쓰기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고흐 하면 압생트라는 엄청난 도수의 초록색 술이 떠오르는데 고흐가 압생트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시각에도 문제가 생겨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짙은 파랑과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고흐가 십년간 그린 그림의 양은 너무나도 방대해서 그가 과연 그렇게 매일 술에 취한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인생이란 어떤 상처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괴로움은 대부분 자기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거나, 집이 파산하거나 혹은 부모님이 사랑을 주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어린아이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이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지레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괴로운 어린 시절을 눈부신 보석으로 탈바꿈시키는 예술가들의 DNA가 빛을 발하죠.(260)”

“디킨스는 스스로를 ‘이니미터블inimitabl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뜻이지요.(237) 모든 예술가는 규칙적인 생활과 더불어 산책에서 영감을 받곤 하는데 디킨스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산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책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이니미터블, 그 표현이 딱 맞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아침식사를 한 뒤 집필하기 시작해 점심쯤 글을 마무리하고, 하루에 20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 많을 때는 50킬로미터 가까이 산책을 했습니다.(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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