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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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의 [불안한 사람들]을 읽었다. 불안장애, 공황발작, 조울증 등. 이제는 너무 많이 접하다보니 그렇게 심각한 증상처럼 느껴지기조차 않는 말들이지만, 이게 실제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보여주는 따뜻함과 이웃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은 우리가 간과하고 손쉽게 흘려보냈던 단순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작품에서는 은행 강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은행 강도가 너무 어설프고 심지어 안쓰럽고 그의 애처로운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게 만든다. 

그의 이전 소설에서도 그렇듯이 이번 작품에도 꽤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래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야크와 짐이라는 경찰 부자이다. 목사였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짐과 아들 야크는 엄마이자 아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때론 투닥거리며 아주 작은 동네의 경찰 일을 하고 있다. 야크에게는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10년전의 사건이 있는데 바로 다리 위에서 투신한 남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야크 또래의 소녀를 구하는 데는 성공한다. 그렇게 야크가 구한 소녀는 심리상담가가 되어 자살한 이들의 남겨진 자녀들을 보호하는 기관의 후원자가 된다. 

은행 강도 이야기의 비슷한 플롯이 현금 탈취에 실패하여 은행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은행에 들어간 어설픈 강도는 당황하여 은행 앞 아파트로 뛰어들어가게 되고 우연히 맨 위층에서 열린 부동산 중개인이 주최한 오픈하우스에 들어가게 된다. 복면을 두륵고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권총으로 자신이 은행 강도임을 말하며 오픈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두게 된다. 오픈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이내 그 은행 강도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어이 없는 실수로 자신들을 인질로 잡게 된 것을 알게 된다. 로게르와 안나레나, 로와 율리아, 토끼분장을 한 레나르트,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 크누트가 아직 차를 주차하고 있는 중이라고 둘러댄 노부인 에스텔, 몹시 까칠하고 10년 전 다리에서 떨어진 남자가 보낸 편지를 아직도 열지 못하고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사라, 그리고 야크가 남자는 놓쳤지만 그로 인해 살린 소녀였던 심리상담가 나디아. 

이렇게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은 오픈하우스에서 하루 동안 인질로 잡힌 상황극 같은 상태에서 조금씩 서로의 상처와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만삭의 율리아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문을 열다가 그 안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망치려고 숨어 있던 토끼 분장을 한 레나르트가 튀어 나오게 된다. 그의 등장은 레나르트와 안나레나의 계약을 실토하게 되고 로게르는 그들 사이를 의심하지만 안나레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 중간에 삽입된 야크와 짐이 오픈하우스에서 인질로 있었던 이들을 심문하는 과정은 어처구니 대화의 연속이다. 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경찰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일까란 의문은 우리 모두에게 꽤나 큰 관대함과 너그러움이 숨어 있음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자비와 사랑은 아버지 경찰 짐으로부터 시작하여 노부인 에스텔의 솔직 담백한 고백을 통해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게 된다.
‘그래, 좀 바보 같아도 괜찮아. 내가 바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도 괜찮아. 그렇다해도 나라는 존재가 바뀌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야.’

“불안에서 놓여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무리 멍청해 보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잘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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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ㅣ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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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의 [아무튼, 싸이월드]를 읽었다. 부제는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42번째 책이다.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혹시 페이스북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가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당시의 나는), 나에겐 싸이월드가 있는데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말을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당장 가입하고 너와 친구가 되겠다는 말을 하고도 지금까지 페이스북은 그저 눈팅 대상일 뿐이다. 유학 시절에는 정말로 싸이월드를 열심히 했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고국의 청년들에게 로망의 대상이 될 법한 그림같은 정경들을 뒤로 한 사진과 더불어 몇몇은 지금봐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글과 대부분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갬성 가득한 글을 올리곤 했다. 이어지는 댓글 중에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이게 무슨 배부른 투정이냐고 반격을 가는 이들을 위해 다음에 올린 사진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염장질을 위한 장소를 물색해봐야겠다는 전투력 상승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인스타그램은 PC에서 볼 수는 있지만 작성은 불가능하다. 철저히 스마트폰 OS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세대는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감정 상태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밈과 같이 짧은 사진과 영상을 이어붙이고 함께 한 누군가를 태그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와 나눈 흔적은 원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 개인의 역사의 기록이자 추억을 되새며 보는 시간을 갖도록 만든 싸이월드에 열광했던 세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한 형태이다. 아니 그렇게 금방 없어질 것을 뭐하러 기록하냐고 반문한다는 것 자체가 아재가 되었다는 것이겠지. 

사실 세대차이라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새로울 것도 없고 그저 나 또한 나이를 먹는 유한한 육체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변화의 속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변화라면 어느 정도 따라가 볼만도 할 텐데, 알 수 없는 가상의 세계 속에 범람하는 신조어의 생성과 소멸은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고 팔팔했던 20대 초반에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며 ‘대체 저분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사는 게 과연 재미 있을까’란 막대먹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가혹해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재미없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어릴때는 알지 못했던 인생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예전과도 같은 왕성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열의는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들의 하루가 무의미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을 보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특함과 예쁨이 다가왔고, 어르신들을 보면 주름진 손과 얼굴에 담긴 그들의 역사가 궁금해지곤 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나와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싸이월드든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카카오스토리든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 순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며 우왕좌왕할 때 더 고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젊은 사람들은 앱을 다운받아서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해 주문을 넣었다. 핫딜이 뜰 때 알람을 설정해놓고 온라인에서 클릭 한두 번으로 결제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재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인증서로 신분을 확인한 후에 몇 가지만 써넣으면 되는 온라인 신청은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은행이나 주민센터로 몰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그때 북새통을 이룬 곳으로 향했다. 누구나 다 하는 줄 알았던 인터넷 뱅킹, 온라인 접수가 누군에게는 높은 장벽이었다. 
회사에선 광화문 사옥 앞 유리 진열장에 그날 발행된 신문을 걸어둔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뒷짐을 지고 서서 골똘히 보기도 하고, 광화문 지하보도 인근을 떠도는 노숙인들 중 일부가 읽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을 보냐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사옥 앞에 한 장씩 걸린 신문이 세상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창이 될 수도 있었다.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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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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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바늘과 가죽의 시]를 읽었다. 몇년 전 보았던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의 김희성 역을 맡은 변요한 배우가 유진 초이에게도, 고애신에게도, 구동매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나는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봄, 꽃 달." 실용주의, 유용성이 우세함은 심지어 가상 세계에서 만들어낸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인물을 집중 조명하여 실의에 빠진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허세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봄날의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라니, 달무리에 취해 쉼없이 걷는 밤산보라니 이런 것들로 우리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드라마의 희성 역이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설정으로 더욱 더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 배우가 내뱉는 무용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들려왔고,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은 무용한 것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동화의, 기담에서 유사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정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던 얀과 미아는 어느 순간 인간의 몸을 입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생이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다름 아닌 인간의 발을 감싸는 구두를 만드는 일이다. 수제화를 만드는 전문 용어들의 범람으로 간간히 검색을 통하느라 이야기의 진행이 더디기는 했지만, 얀이 이안의 이름으로 최후의 1인이 되어 명품 구두 가겪의 구두를 만드는 모습은 영생을 가진 이안의 신비로움에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안이 미아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안은 그저 전통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수제화를 만드는 장인이려니 생각되지만, 미아가 결혼을 앞둔 상태로 유진을 데리고 오자 안과 미아의 과거가 그려진다.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 처럼 저주인지 축복인지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 이안은 10년에서 15년간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거나 이주를 통해 유한한 인간과의 이별을 맞게 된다. 이안이 공방에서 연 교실의 수강생으로 만난 시인의 어머니가 이안이 오래 전 사랑의 고백을 듣고도 떠나야 했던 여인임을 기억해내는 모습은 못내 가슴아프게 그려진다. 


"그녀 역시 그의 얼굴만 희미하게 남았을 뿐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안이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 이 생에서 두 번을 만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녀의 사라져가는 시간을, 닳아져가는 삶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주어야 한다는. 물을 머금어본 적 없이 방치되어 말라비틀어진 씨앗 같은 기억에, 이제라도 솜을 깔고 현재를 분무해주어야 한다는. 그 행위가 비록 무용하더라도, 씨앗을 간직해온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 난 미로 같은 길들을 따라 육신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일이, 자신의 몫인 것만 같다.(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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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산책 -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
도대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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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작가의 [그럴수록 산책]을 읽었다. 부제는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이다. 오래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연재하던 네 컷 만화처럼 도대체 작가 특유의 몽실몽실한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어 숲길을 산책하며 얻게된 소소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네 컷의 만화는 주인공이 걷고 마주하는 동물과 식물과 사람들을 함께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그래도 뭔가 더 채워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저자의 솔직 담백한 글로 보충해준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지나쳐왔을 세상이 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서의 권위를 부여한 이야기들은 산책이 주는 신비로운 치유의 힘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다. 

걷기 하면 [걷는 사람 , 하정우]를 통해서 이 정도는 걸어줘야 어디 가서도 ‘나 좀 걷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은, 그런데 그렇게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도대체 작가의 책을 통해 나 같은 사람도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저도 좀 걷습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Ambulare’는 ‘산책하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이다. 라틴어를 공부할 때 무한반복을 통해서 쉽게 입에 붙지 않고 잘 외워지지 않던 수많은 동사들 중에서도 유독 ‘산책하다’라는 단어는 단번에 머릿속에 박혔다. 아마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 교정을 수없이 거닐면서 그나마 감금된 생활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주 소소한 이야기까지 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보장된 시간이 바로 산책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걷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그토록 지겹게만 느껴졌던 진입로의 반복된 길이 그리워지곤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금방 웃을 수 있었고, 같은 일에 분개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했던 지금 나의 상태를 감출 필요도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었던 산책길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러고보니 그립다며 꼽은 곳들이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시기들에 이었군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때의 저는 그 시간들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 몰랐습니다. 몇 년 후의 저는 현재의 어떤 장소와 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미리 알 수 있다면 더 자주 찾아가고, 더 많이 추억을 쌓아놓으련만 말이죠.(93)” 

“동네 어느 집에서 담장 높이 허수아비를 달아놓았습니다. 도심 주택가의 허수아비는 흔치 않아서 이런저런 상상을 했는데, ‘뭐지, 주술적 의미라도 있는걸까?’ 알고 보니 바로 옆에 감나무가 있더라고요. 허수아비는 무언가를 지키려고 세우는거란 사실을 깜빡했습니다. 사람의 허세도 허수아비 같은 게 아닐까요? 진자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허수아비처럼 내세우는 것이죠. 요란한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지키지 못할까봐 두려운 건지도요.(102-103)”

“호기심이 생긴 저는 꿩에 대해서 찾아보았는데, ‘먹을 것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도 오후 네 시가 되면 숲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꿩들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귀엽기도 했고요. 일하다가 과로하는 건가 싶을 때면 ‘꿩도 오후 네 시면 쉬는데...’ 생각하며 꿩 핑계를 대고 쉬기도 했답니다. 인간이 오후 네 시면 일을 접고 쉬기는 힘든 노릇이지만,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는 꿩을 떠올려보세요! 먹을 것을 찾다가 ‘오후 네 시네? 돌아가자!’ 하고 총총걸음으로 숲으로 돌아가는 꿩 무리를 상상하다 보며 귀여운 마음과 함께 나도 좀 쉬자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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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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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작가의 [녹즙 배달원 강정민]을 읽었다. 제목만 보고 강정민이라는 젊은 청년이 녹즙 배달을 하며 겪는 삶의 노고와 성장을 그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런데 막상 첫 시작은 주인공 정민이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와 알콩중독자로 불릴 만큼 술을 마시게 된 연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결핍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갓난애 때부터 갖고 있다. 처음에 그것은 조그만 구멍이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게 될수록 점차 커지고, 그렇게 되면 찬 바람이 몰아칠 때 너무 시리기 때문에 모두 그것을 막을 무언가를 바삐 구하러 다니게 된다.(11)"


정민은 알코올 중독자 혹은 알코올의존증을 치료받기 위해 외래진료를 다니고 있다. 담당의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는 과정 속에 그녀가 왜 그렇게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이 하나 둘 씩 펼쳐진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정민은 교수님의 추천으로 게임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원치 않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19금 자료를 가져다 주며 섹시한 표현을 강요당하는 시간은 정민이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게 된다. 그러던 중 회식 중에 성추행을 당하며 홧김에 술병을 휘둘러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정민은 "술을 끊고 싶다, 그렇지만 두렵다. 술을 끊으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끊고 싶으면서도 끊고 싶지 않다. 끊고 싶다. 그렇지만 끊고 싶지 않다.(41)"는 양가감정을 느끼며 재취업을 준비하는 도중 녹즙 배달을 하게 된다. 


보통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중년 쯤 되는 여성들의 일로 여겨진 건강음료 배달일에 젊은 아가씨가 뛰어들었으니 정민은 녹즙을 배달하는 도중 여기 저기서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등등 주제넘은 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녹즙 배달이 단순히 신청한 사람에게 배달만 하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 새로운 고객을 유치해야 하고 경쟁사이 다른 녹즙 배달원 여사님과 유제품 음료 여사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고난이도의 사회생활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주인공이 30대 초반 여성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왕왕 얼굴이 화끈거렸다. 읽는 내내 나도 어디선가 이런 꼰대짓을 하지 않았을까? 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이 차별을 당연시해왔던 사고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 란 자성을 하게 된다. 


특히나 정민의 술친구 민주가 겪게 되는 데이트 폭력은 물리적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겪는 최악의 일이 아닐까 싶어, 지금의 젊은이들이 남초니, 여초니, 한남이니, 여혐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 단초가 된듯 하다. 30대 여성이 취업 면접에서 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어 없어도 곧 생기면 결혼도 하고 아이가 생길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며 업무상의 단절을 우려하는 기색을 표하기에 그럴일은 없다고 결혼도 아이도 낳을 생각이 없다는 정민의 답에 지금같은 저출산 시대에 비혼이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가르치려하는 면접관의 이중적인 잣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실마리 조차 찾기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정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준희의 등장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 같은 구멍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 그리고 준희의 헌신과 관심으로 정민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2리터 짜리 와인병을 과감하게 박살낼 수 있게 된다. 


<"사람들 다 비둘기 싫어하지 않아요? 먹이 준다고 막 뭐가 그럴 수도 있는데."

할머니는 한 번 과자를 뿌리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다 살겠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이뻐. 살겠다고 하는 것들은 다 이뻐...."

이후로도 나는 사는 게 팍팍하다고 생각이 들 때면 그때 과자를 뿌리던 할머니 모습을 생각했다.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뻐. 물론 잘 살겠다고 악에 바친 사람들은 무섭지만 그저 살겠다는 것들은 이쁘다. 그리고 이제 함부로 비둘기가 징그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살겠다고 하는 것들끼리.(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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