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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ㅣ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평점 :
박선희 기자의 [아무튼, 싸이월드]를 읽었다. 부제는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42번째 책이다.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혹시 페이스북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가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당시의 나는), 나에겐 싸이월드가 있는데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말을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당장 가입하고 너와 친구가 되겠다는 말을 하고도 지금까지 페이스북은 그저 눈팅 대상일 뿐이다. 유학 시절에는 정말로 싸이월드를 열심히 했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고국의 청년들에게 로망의 대상이 될 법한 그림같은 정경들을 뒤로 한 사진과 더불어 몇몇은 지금봐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글과 대부분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갬성 가득한 글을 올리곤 했다. 이어지는 댓글 중에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이게 무슨 배부른 투정이냐고 반격을 가는 이들을 위해 다음에 올린 사진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염장질을 위한 장소를 물색해봐야겠다는 전투력 상승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인스타그램은 PC에서 볼 수는 있지만 작성은 불가능하다. 철저히 스마트폰 OS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세대는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감정 상태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밈과 같이 짧은 사진과 영상을 이어붙이고 함께 한 누군가를 태그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와 나눈 흔적은 원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 개인의 역사의 기록이자 추억을 되새며 보는 시간을 갖도록 만든 싸이월드에 열광했던 세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한 형태이다. 아니 그렇게 금방 없어질 것을 뭐하러 기록하냐고 반문한다는 것 자체가 아재가 되었다는 것이겠지.
사실 세대차이라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새로울 것도 없고 그저 나 또한 나이를 먹는 유한한 육체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변화의 속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변화라면 어느 정도 따라가 볼만도 할 텐데, 알 수 없는 가상의 세계 속에 범람하는 신조어의 생성과 소멸은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고 팔팔했던 20대 초반에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며 ‘대체 저분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사는 게 과연 재미 있을까’란 막대먹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가혹해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재미없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어릴때는 알지 못했던 인생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예전과도 같은 왕성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열의는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들의 하루가 무의미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을 보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특함과 예쁨이 다가왔고, 어르신들을 보면 주름진 손과 얼굴에 담긴 그들의 역사가 궁금해지곤 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나와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싸이월드든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카카오스토리든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 순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며 우왕좌왕할 때 더 고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젊은 사람들은 앱을 다운받아서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해 주문을 넣었다. 핫딜이 뜰 때 알람을 설정해놓고 온라인에서 클릭 한두 번으로 결제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재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인증서로 신분을 확인한 후에 몇 가지만 써넣으면 되는 온라인 신청은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은행이나 주민센터로 몰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그때 북새통을 이룬 곳으로 향했다. 누구나 다 하는 줄 알았던 인터넷 뱅킹, 온라인 접수가 누군에게는 높은 장벽이었다.
회사에선 광화문 사옥 앞 유리 진열장에 그날 발행된 신문을 걸어둔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뒷짐을 지고 서서 골똘히 보기도 하고, 광화문 지하보도 인근을 떠도는 노숙인들 중 일부가 읽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을 보냐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사옥 앞에 한 장씩 걸린 신문이 세상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창이 될 수도 있었다. (108-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