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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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의 [불안한 사람들]을 읽었다. 불안장애, 공황발작, 조울증 등. 이제는 너무 많이 접하다보니 그렇게 심각한 증상처럼 느껴지기조차 않는 말들이지만, 이게 실제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보여주는 따뜻함과 이웃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은 우리가 간과하고 손쉽게 흘려보냈던 단순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작품에서는 은행 강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은행 강도가 너무 어설프고 심지어 안쓰럽고 그의 애처로운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게 만든다. 

그의 이전 소설에서도 그렇듯이 이번 작품에도 꽤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래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야크와 짐이라는 경찰 부자이다. 목사였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짐과 아들 야크는 엄마이자 아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때론 투닥거리며 아주 작은 동네의 경찰 일을 하고 있다. 야크에게는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10년전의 사건이 있는데 바로 다리 위에서 투신한 남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야크 또래의 소녀를 구하는 데는 성공한다. 그렇게 야크가 구한 소녀는 심리상담가가 되어 자살한 이들의 남겨진 자녀들을 보호하는 기관의 후원자가 된다. 

은행 강도 이야기의 비슷한 플롯이 현금 탈취에 실패하여 은행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은행에 들어간 어설픈 강도는 당황하여 은행 앞 아파트로 뛰어들어가게 되고 우연히 맨 위층에서 열린 부동산 중개인이 주최한 오픈하우스에 들어가게 된다. 복면을 두륵고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권총으로 자신이 은행 강도임을 말하며 오픈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두게 된다. 오픈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이내 그 은행 강도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어이 없는 실수로 자신들을 인질로 잡게 된 것을 알게 된다. 로게르와 안나레나, 로와 율리아, 토끼분장을 한 레나르트,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 크누트가 아직 차를 주차하고 있는 중이라고 둘러댄 노부인 에스텔, 몹시 까칠하고 10년 전 다리에서 떨어진 남자가 보낸 편지를 아직도 열지 못하고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사라, 그리고 야크가 남자는 놓쳤지만 그로 인해 살린 소녀였던 심리상담가 나디아. 

이렇게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은 오픈하우스에서 하루 동안 인질로 잡힌 상황극 같은 상태에서 조금씩 서로의 상처와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만삭의 율리아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문을 열다가 그 안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망치려고 숨어 있던 토끼 분장을 한 레나르트가 튀어 나오게 된다. 그의 등장은 레나르트와 안나레나의 계약을 실토하게 되고 로게르는 그들 사이를 의심하지만 안나레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 중간에 삽입된 야크와 짐이 오픈하우스에서 인질로 있었던 이들을 심문하는 과정은 어처구니 대화의 연속이다. 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경찰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일까란 의문은 우리 모두에게 꽤나 큰 관대함과 너그러움이 숨어 있음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자비와 사랑은 아버지 경찰 짐으로부터 시작하여 노부인 에스텔의 솔직 담백한 고백을 통해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게 된다.
‘그래, 좀 바보 같아도 괜찮아. 내가 바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도 괜찮아. 그렇다해도 나라는 존재가 바뀌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야.’

“불안에서 놓여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무리 멍청해 보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잘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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