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죄의 궤적 1~2 - 전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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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죄의 궤적 1-2]을 읽었다. 그동안 저자의 이름을 많이 들어왔지만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명성 그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존에 읽었던 추리나 범죄물의 형태와는 다르게 범인을 추정하고 구속하는 과정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실제로 일본에서 1963년도에 있었던 어린이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상당히 많은 경찰들이 등장하지만 주요 인물의 이름만 기억한다면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삿포로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섬나라이고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면적이 그렇게 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홋카이도 섬 하나가 우리나라 남한의 3분의 2정도에 해당된다고 하니,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홋카이도의 주민과 오키나와의 주민은 거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홋카이도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직항편이 신설되고 교통비가 상대적으로 내려가면서 홋카이도는 여름에는 시원한 곳으로 겨울에는 눈을 보러 가는 관광지가 되었다. 위도상 상당히 우리나라의 북한보다 높은 지역이 많기에 한 여름에 가도 그다지 덥지 않다. 이야기의 시작은 홋카이도의 최북단 왓카나이시에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후 10년 배를 타고 3시간은 가야 도착하는 레분토 섬에서부터이다. 


1956년도 전까지만 해도 청어잡이가 만연했던 레분토 지역은 그 이후로 씨가 말라 다시마를 거둬올려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우노 간지는 물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간지는 계부의 폭력으로 자해공갈 사고를 당해 순간 기절하거나 기억을 잃는 장애를 갖게 된다. 이후 간지는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빈집털이를 하다 레분토에서 다시마를 거둬들이는 어부일을 하게 된다. 간지는 이웃한 동네의 빈집털이를 해서 모아놓은 장물을 동료에게 걸리게 되고 얍샵한 동료의 꾐에 넘어가 다시마 일을 시키는 주인 집의 털어 레분토를 떠나 도쿄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간지는 기름이 떨어진 배에서 바다 한가운데 놓이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해안가에 도착하게 된다. 이후 빈집털이를 통해 여비를 마련하고 도쿄로 오게 되어 전시계상의 집을 털다가 전시계상의 살인의 혐의를 받게 된다. 


악역에 간지라면 그에 대적하는 선인의 역할은 오치아이라는 엘리트 대졸 형사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형사들 사이에도 대학물을 먹은 사람은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듯 하다. 오치아이는 그러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성실하고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오치아이의 수사에는 많은 유능한 선배 형사들이 등장하는데 오바와 닐은 풍부함 경험을 바탕으로 범인의 범주를 줄여나간다. 


그 외에 이야기의 한 축에는 미키코 라는 산야의 여관을 운영하는 딸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미키코의 아버지는 재일교포 1세대로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미키코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배경이 그려진다. 미키코는 산야를 중심으로 한 좌익 단체와 경찰 및 야쿠자의 세계에 둘러싸여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은 온전한 세계관을 지키려고 한다. 미키코의 철없는 동생은 야쿠자 똘마니가 되어 간지를 만나게 되고 천성이 착해서인지 간지를 지켜주려다 엉뚱한 일을 겪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경찰에 붙잡힌 간지는 요시오 어린이의 유괴와 애인이었던 여인의 살해를 부정하려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범죄 현장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탈출하여 계부를 죽이려 삿포로로 간다. 이를 알게 된 오치아이와 다른 형사들이 간지를 다시 붙잡게 되는 과정은 소설이 아니라 눈 앞에서 영화가 그대로 펼쳐지는 것처럼 긴장감 넘치게 잘 묘사되어 있다. 바로 눈 앞에서 간지가 엄지 손가락을 빼서 수갑을 풀고 숨이 멋을듯 헐떡이며 도망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간지가 오바와의 심문에서 자신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하는 말은 죄를 지은 사람이 흔히 하는 자기 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책의 제목이 [죄의 궤적]이라는 것을 상기해 볼때, 간지의 말은 어느 누군가의 죄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그 한 사람에게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을 사이코다 소시오패스라고 규정지으며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 예, 그래도. 적어도 태어날 때부터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뭔가 구원받았다고 할까...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충분히 지독한 일을 당했고,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도 다소는 용서받지 않을까 하는....

-그럴 리 없잖아. 도둑을 만난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쳐도 용서받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유는 있어요.

-그런 게 이유가 돼?

-오바 씨는 몰라요. 나쁜 짓이라는 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나를 만든 것은 아방이와 오마이니까요.(2권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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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 - 2021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허남훈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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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훈 작가의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을 읽었다. 2021 한경신춘문예 당선작이다. 표지만 보면 정말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노잼 그 자체일 것 같지만 막상 첫장 첫문장부터 늪에 빠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몰입이 되었다. 또 한 명의 놀라운 페이지 터너의 탄생이 아닌 싶을 정도로 글을 읽고 있지만 마치 눈 앞에 허수영의 삶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그냥 허수영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세밀하게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소설의 주인공 허수영은 지방 일간지의 기자 생활을 하다가 대형신문사에서 새로 발간되는 스포츠 일간지의 경력 기자로 채용된다. 그런데 그런 번듯한 직장을 가진 허수영 기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발로 신문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허수영은 보험설계사로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보험설계사로서의 허수영의 성장 일기와 보험설계 일을 배우며 제일스포츠 기자로서 겪었던 일들이 교차로 나온다. 그리고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좋아보이는 신문사를 스스로 그만두었는지 알려준다. 허수영과의 고등 절친인 사카이(경계, 갈림길, 기로)는 통상적인 조연이 아니라 사카이의 삶도 꽤나 비중있게 그려진다. 9급 공무원 시험을 몇년 째 준비하며 독서실에서 버티던 사카이는 몇달 간 지옥 같은 독서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공시생활을 버티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용직 노동을 하러 지방으로 떠난다.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가 진행되고 허수영과 사카이의 도전이 위태롭게 보이기는 하지만 눈에 띄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아 한편으로는 덜 긴장된 마음으로 허수영과 사카이를 응원할 수 있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자 사직서를 낸 허수영에게 “부장은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괜찮겠냐며 만류했다.(8)”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자신이 오랫동안 몸 담았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나 점점 고도화 전문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 나이든 지원자가 지원하는 영역에 경험이 전무하다면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채용할 이유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허수영 기자처럼 공황장애를 앓게 되기까지 자신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고 버티게 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렇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병을 앓게 되면서도 하고 있는 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을 하지 못한다. 내게 기댄 가족들 때문에, 이게 아니면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 죽을만큼 힘들어서 당장 그만두고 싶더라도 막상 떠나고 나면 절대로 지금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넘어가지 않는 숨을 억지로 삼키며 오늘도 버틴다. 

보통 신입 보험설계사는 지인과 가족부터 시작하여 계약을 따내려 하지만 허수영은 신문사에서 알게 된 그 좋은 인맥을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며 처음부터  집중한다. 좌충우돌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신입 허수영은 나름대로의 전략으로 접근하지만 첫 계약을 따내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소설의 말미에 허수영은 보험설계사를 그만둘 무렵 사카이의 건강보험을 하나 계약하게 된다. 그런데 B형 간염 보균자인 사카이의 보험은 간과 관련된 질병에는 부담보가 적용되는 조항이 있고, 6개월 후 간염균이 활성화 되었는지를 검사한 것으로 인해 5년이 지난 후에도 간에 관련된 질병은 보험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이에 허수영은 보험 정관의 문제를 물고 늘어져 간염균의 추적 검사를 한 것 만으로 재진단을 적용하여 각종 보장에서 제외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임을 금융감독원에 질의하여 응답을 얻어낸다. 

“배달을 가다 가끔씩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고. 그럴 때 일단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간다고. 가다 보면 다시 생각이 나더라고. 소설을 쓰는 동안 그 말씀을 자주 떠올렸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에 와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붙들 수 있는 건 언젠가는 독자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뿐이었다. 그렇게 계속 달렸고 이렇게 당신에게 닿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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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ㅣ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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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 작가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읽었다. 이제는 뮤지션 요조보다 작가 요조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한 그리고 제주의 무사 책방 주인이라는 겸직 또한 저자만의 매력적인 이력인듯 하다. 이제는 가수가 화가가 배우가 책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선입견을 갖지 않은 채, 책을 사랑하고 자신이 생각을 언제든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변화가 아닐까 싶다. 어느 출판사와 문화사의 문예제를 통해서 등단한 이들에게만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고립된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개별출판을 통해서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훨씬 출판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불어 저자가 말하듯이 도서 정가제에 대한 상반된 이해들 가운데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가운데에서도 '책이 너무 비싸지 않냐?'는 의견을 경청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으면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너무 많아 돈독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가진 돈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잔고 속 0의 개수가 버블버블 늘어나서, 그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들은 신나고 흥겹게 그 독에서 유영한다. 반대편에서는 누군가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 돈독이 오른다. 당장 다음 달의 평범한 일상이 불투명하고 요원해서, 아무리 일해도 도무지 여유 있는 삶이 도래하지 않고 언제나 현실이 빠듯하고 거칠어서, 원하지 않는데도 내몰리듯 돈독이 올라 지나치게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 책값이 너무 비싸다며 도서 정가제의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도, 동네 책방의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며 도서 정가제의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도 어쩐지 후자의 이유로 돈독에 노출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170)"


저자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인 경우도, 뮤지션인 경우도 많은데 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 김완 님을 만났다는 내용에서는 부러움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에서 <거룩함과 거룩함>라는 전시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이 갖고 태어난 순수함을 지키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나갈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96)"


어쩌면 저자가 이런 담백한 삶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쳐왔기에 버스 기사의 선글라스와 마스크 속에 감춰진 구겨진 얼굴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난게 아닐까? 서울에서 서점을 운영할 때 서점 앞에 맘대로 세워놓은 차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 저자의 한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동일한 분노와 더불어 '참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라는 푸념과 혹시 나도 어디선가 그런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을까란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이 내용에 견주어 저자는 놀라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나눠준다. 


"그들의 구겨진 얼굴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삶의 대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리에도 '구겨진 얼굴'은 많다. 집회 현장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은 조용하고 얌전하지 않다. 늘 화를 내고,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깎고 피를 토할 듯 절규하고 있다. 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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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ㅣ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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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작가의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읽었다. 부제는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이다. 표지는 어마어마한 책장을 뒤로 저자가 역시나 책상에도 한아름의 책을 쌓아두고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 찐 부럽고 멋지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꿈꾸어왔던 서재의 모습이다. 보기만 해도 지겹고 머리아픈 전공책들은 어디론가 다 던져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시리즈를 컬렉션으로 꾸며놓으면 책상에 앉을 때마다 뿌뜻함이 마구마구 샘솟을 것만 같은데. 한때 그런 계획을 갖고 책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몇년 전에 갑작스런 이사로 짐을 꾸리다 책에 깔려죽을 것만 같아서 도저히 빈번한 이사가 예정된 삶으로는 표지처럼 멋진 책장을 갖는 것은 그냥 꿈으로만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두 번 읽기는 이미 글러먹었음에도 어떤 작가가 신인시절부터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담긴 다양한 크기와 색감의 책들의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설레임이 생겨나곤 했기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세상에 책보다 멋진 DP를 찾을 수 있을까? 책보다 근사한 오브제를 찾을 수 있을까? 

표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상 위에는 저자가 번역해온 아님 앞으로 번역할 일본어로 된 책들이 많다. 원서로 된 전공책을 공부해봐서 알지만 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그야말로 번역가가 새롭게 글을 쓰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한 때는 번역된 책을 잘 보지 않았다. 하지만 타국의 언어에 자유롭지 않은 몸으로는 어쩔 수 없이 번역가들의 노고가 담긴 책에 기댈 수 밖에 없으니, 저자처럼 번역 후에, 또는 번역 중에 생겨난 에피소드와 감상들을 이렇게 재미있고 진솔하게 열어주니, 앞으로  번역자가 ‘권남희’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원저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냥은 못 넘어갈 것만 같다. 작년에 출간한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읽고 번역가가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써도 되는 것인가란 놀라움과 더불어 책에 소개된 오가와 이토의 [양식당 오가와]를 바로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오가와 이토와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서 또한 반갑고, 얼마전에 읽은 [무라카미 T]에서 읽고 의아했던 부분을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가 서점에서 본인의 책을 구입하며 점원에게 ‘이 책 내가 썼어요’라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부분은 나 또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하긴 무라카미 하루키도 도쿄의 서점에서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미국의 어느 대형서점에서 하루키를 단숨에 알아보고 즉석 사인회를 열게 한 직원은 얼마나 센스가 넘쳤을지, 나에게 그런 행운은 언제쯤 오려나 막연히 꿈꿔본다. 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나 굉장히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처럼 그리고 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 나오는 모습들은 수줍음이 많고 응근 긴장을 많이 하는 소녀감성을 가진 번역의 달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 정하와의 다정한 대화는 아마 누구라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성실하고 진득함의 진수를 보여준 저자의 성실한 삶은 300여권 번역본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었고, 우리나라의 많은 독자들에게 일본문학의 커다란 창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앞으로 번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롤모델의 모습을 보여주니, 앞으로 이런 책을 자주 많이 써주었으면 한다. 

“종기처럼 우울증이 돋기 시작했다. 내게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그 후 아예 자리를 잡은 종기는 비가 오면 도지는 노인들의 신경통처럼 날씨를 핑계 삼아 덧나곤 했다. 

쉰이 되는 해의 우울증은 종기가 아니라 두드러기처럼 번지는데, 예순이 되어 쉰의 나를 돌아보면 또 이렇게 가소로울까. 나이 앞 자리가 바뀔 때마다 우울함의 도수가 높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우울하네, 사는 게 그렇지, 뭐’하고 해탈수도 높아지니 결국은 쌤쌤이다. 쉰이 넘은 뒤로 어깨 힘 빼고 적당히 열심히 살고 있다. 마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도 않고, 일하기 실을 때는 널브러져서 데굴거리고. 
이국종 교수님이 ‘나는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냥 버틴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도 그랬지, 하고 끄떡거린 이 여유.(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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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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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었다. 저자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기괴의 탄생’, ‘깊이와 기울기’, ‘초아’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에 4편은 이미 다른 모음집을 통해서 읽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글과 함께 섞여 있다가 오로지 김금희 작가만의 단편집으로 읽으니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한 번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은 분명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간과했던 부분들을 찾아내 색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하지 않았다. 특히나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이었기에 더 많은 기대를 안고 읽었었는데 당시에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참 좋았다. 주인공이 어린 여고생 강선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기오성과의 풋사랑을 아무런 오해를 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놓아버렸다가 다시 듣게 된 기오성의 팟캐스트에서 재생된 페퍼로니라는 단어에서 어쩌면 그 아련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게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서는 재수를 넘어 삼수생으로서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진 주인공이 우연히 장의사라는 동창을 통해 김조교형과 짧은 연애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간다. 장의사 친구는 김조교형에게 지독히 길들여져, 그 모습을 못내 신기해하면서도 함께 조종당했던 주인공은 그 여름을 견디어냈던 것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긴 터널과도 같은 일상의 날들을 견디어 낸 스스로의 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는 헤어져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옛애인이 섭외대상이 된다는 조금은 웃픈 내용이다. 맛집 알파고라는 별칭으로 사진만 보고도 어느 식당이라는 것을 맞추는 기이한 존재는 바로 주인공의 예전 남친이었다. 부산으로 옛애인을 섭외하고 만나러 가는 주인공은 피디라는 직업성과로 이 만남을 바라보려는 시도와 오래전 상처를 들추는 시간을 저울질 한다. 

“환자가 집안에 있는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이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임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낀 것이었다.(83)”

‘깊이와 기울기’는 저자의 또 다른 작품 [복자에게]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고 작년 몇 달 간 머물렀던 제주를 막연히 그리워하게 해주었다. 제주에서도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에 마련된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에서 고장난 버려진 르망을 고치려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과 그와 무관하게 자신의 작업을 해나간 다른 예술가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그려낸다. 이들은 예술가라는 특징으로 생겨난 인물들이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르망과도 같은 풀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선뜻 판단이 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우리들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었다. ‘초야’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 땅 투기에 대한 서민들의 분투기와 더불어 주인공의 사촌인 초야의 시니컬하고도 생존력 갑인 이 시대의 사고방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인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가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 같은 주인공의 인간다움은 초아의 맹렬한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산산히 부서져버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둠속에 어렴풋이 찍힌 고개숙인 주인공과 초아의 사진은 절대로 교차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성향들도 원래는 돌고 돌아 한 곳에서 만나게 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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