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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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었다. 저자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기괴의 탄생’, ‘깊이와 기울기’, ‘초아’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에 4편은 이미 다른 모음집을 통해서 읽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글과 함께 섞여 있다가 오로지 김금희 작가만의 단편집으로 읽으니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한 번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은 분명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간과했던 부분들을 찾아내 색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하지 않았다. 특히나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이었기에 더 많은 기대를 안고 읽었었는데 당시에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참 좋았다. 주인공이 어린 여고생 강선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기오성과의 풋사랑을 아무런 오해를 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놓아버렸다가 다시 듣게 된 기오성의 팟캐스트에서 재생된 페퍼로니라는 단어에서 어쩌면 그 아련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게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서는 재수를 넘어 삼수생으로서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진 주인공이 우연히 장의사라는 동창을 통해 김조교형과 짧은 연애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간다. 장의사 친구는 김조교형에게 지독히 길들여져, 그 모습을 못내 신기해하면서도 함께 조종당했던 주인공은 그 여름을 견디어냈던 것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긴 터널과도 같은 일상의 날들을 견디어 낸 스스로의 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는 헤어져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옛애인이 섭외대상이 된다는 조금은 웃픈 내용이다. 맛집 알파고라는 별칭으로 사진만 보고도 어느 식당이라는 것을 맞추는 기이한 존재는 바로 주인공의 예전 남친이었다. 부산으로 옛애인을 섭외하고 만나러 가는 주인공은 피디라는 직업성과로 이 만남을 바라보려는 시도와 오래전 상처를 들추는 시간을 저울질 한다. 

“환자가 집안에 있는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이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임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낀 것이었다.(83)”

‘깊이와 기울기’는 저자의 또 다른 작품 [복자에게]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고 작년 몇 달 간 머물렀던 제주를 막연히 그리워하게 해주었다. 제주에서도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에 마련된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에서 고장난 버려진 르망을 고치려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과 그와 무관하게 자신의 작업을 해나간 다른 예술가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그려낸다. 이들은 예술가라는 특징으로 생겨난 인물들이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르망과도 같은 풀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선뜻 판단이 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우리들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었다. ‘초야’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 땅 투기에 대한 서민들의 분투기와 더불어 주인공의 사촌인 초야의 시니컬하고도 생존력 갑인 이 시대의 사고방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인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가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 같은 주인공의 인간다움은 초아의 맹렬한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산산히 부서져버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둠속에 어렴풋이 찍힌 고개숙인 주인공과 초아의 사진은 절대로 교차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성향들도 원래는 돌고 돌아 한 곳에서 만나게 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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