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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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를 읽었다. [완득이], [아몬드]에 뒤를 잇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와 어울리며 혹시나 부모와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미래에 심각한 저출산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서 대신 아이들을 키워주는 NC(nation's children) 센터를 설립하고 아이를 낳고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열 세살이 될 때까지 센터에서 보호받고 교육받으며 자라나 열 세살 이후에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국가가 출산을 장려하고 아이를 키워주고 입양까지 장려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단지 뜬구름잡는 얘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현재 불과 몇십년 만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어 선지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커져가고 평범한 수준의 삶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한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은 인간 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인간 본성에 기초한 관계를 맺는 모습조차도 취사선택이 마땅한 권리로 주장되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인간의 권리와 선택의 영역으로 정할 수 있을까? 


급속히 변화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페인트]에 나오는 미래 시대의 모습이 구현된 것은 아닐까 싶다. 버려진 아이들이 철저한 국가의 통제 속에서 키워지고 아이를 원하는 프리 포스터(pre foster parents)들과의 면접이 이루어지고, NC 센터에서는 가디언들이 아이들을 훈육하고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헌신하는 박과 최와 같은 지도자들이 있다. 소설의 제목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를 은어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 아닐까?(196)"


나이가 들어 개명신청을 하지 않고서는 내가 원하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나에게만 해당되는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와 가족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당연히 자유이지만 우리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다. 몰랐던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작정 주어진 것에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좋은 부모를 선택하기 위한 페이트를 반복하며 과연 자신 또한 좋은 자녀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 주인공 제누 301처럼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시간들이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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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인기가요 - 오늘 아침에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아무튼 시리즈 39
서효인 지음 / 제철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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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인의 [아무튼, 인기가요]를 읽었다. 부제는 “오늘 아침에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39번째 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가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죽하면 18번이라는 자기만의 노래를 하나씩은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언제 어디서든 노래 한 곡 부르라고 청하면 못 이기는 척 부르지 않는가? 특히나 가요와 관련된 TV 프로그램은 십수년 째 사골 우려먹기를 반복하고 있어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흥의 민족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도 한때 노래방 죽돌인적이 있었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서너시간을 쉬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도 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미친듯한 고음의 노래만 골라 올라가지도 않는 음을 내려고 애썼다. 부끄러움도 없었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애틋한 발라드에 대한 애착은 청소년기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인기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래들이 뭔지, 저 가수는 누구인지, 아이돌이 너무도 많아서 그룹 이름도 헷갈리기 마련인데, 시인님은 정말로 대단하고 끈질긴 최신가요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쳅터가 끝날 때마다 올려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은 예전 노래들 빼고는 죄다 모르는 노래 투성이인지라, 이제부터 나도 오마이걸이나 이달의 소녀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갸우뚱하게 된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인님이 말한 것처럼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우연히 좋아하는 가수가 게스트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음원사이트를 통해서 듣고 싶은 노래를 선택해서 들어도 되겠지만 라디오에서 그럴듯한 사연과 신청곡으로 나오는 노래는 뭔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신청자의 사연에 빙의되어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애절한 가사말이 폐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는 경우도 있다. 이승환의 ‘가족’이 들려오면 겨울의 추위가 시작되는 11월의 어느 날 연병장에서 날아오던 축구공을 멍하니 쳐다보던 내가 생각나고, 윤종신의 ‘동네 한바퀴’를 들으면 로마의 400년 된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낯선 언어와 시름하던 내가 생각난다. 좋아하는 가요는 단지 그 가수에 대한 애정만이 아니라 그가 부른 노래를 통해서 남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나만의 역사를 재생시킨다. 마치 타임슬립하듯이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부끄럽기도 하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결코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나의 역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엇나간 어느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면, 3분 동안이나마 누군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인기가요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3학년 1반은 중앙 정원 왼쪽 통로에 모였다.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그 상태로 엎드렸다. 엎드려뻗쳐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손바닥을 펼 수 있다. 2단계는 주먹을 쥐어야 한다. 3단계는 깍지를 끼는 것이고, 4단계는 손 대신 머리를 박는다. 깍지보다 머리가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선생 말대로 돌대가리여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 깍지 낀 손으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면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머리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면 폭탄이 된 것만 같았다. 이러다 펑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진화 이전의 자세로 중력에 저항하고 있노라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지난 중간고사에서 꼴찌를 한 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담임이 얼차려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늘 이래 왔기 때문이다.(43)”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감정이입되어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3단계 깍지를 끼고 엎드려뻗쳐의 고급 단계로 엇깍지가, 한 단계 더 위로 트위스트 깍지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 엎드려뻗칠수가 있나? 그리고 머리를 박는 것은 요령이 생기면 엎드려뻗쳐보다 한결 편하다는 건 안비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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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띵 시리즈 7
호원숙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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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숙 작가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7번째 책이다. 박완서 작가의 10주기를 맞이하여 그녀의 딸이 엄마를 기억하며 추억속에 저장된 음식과 저자만이 알 수 있는 엄마 박완서의 작품 속 이야기를 전해준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였기에 작품에만 몰입하여 자녀를 돌보는 일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에는 무관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도 있지만 저자가 전하는 엄마 박완서 작가는 자식을 사랑하고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인 보통 사람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 분으로 보인다. 그런 모든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써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자가 이렇게 다양한 음식의 추억을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은 유년시절부터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의 스토리와 맛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의 음식이 있다. 특별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절에 먹었던 음식이나,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나, 우연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처음 접한 음식 등등. 반드시 먹기 위해서는 사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우리는 먹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또 많은 경우 좋은 것을 먹기 위해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흔히 내뱉는 말.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뒤에 붙은 줄임표에는 분명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가 먹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부질없는 짓처럼 여겨지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것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부단히 몸을 움직여야만 했던 가난한 시절이나 고급 양식점에서 칼질을 하는 것을 꿈꾸던 시대를 거쳐 먹방이 난무하는 오늘까지도 동일한 의미로 나의 노동이 가지는 최상의 가치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 누군가 준비해 준 음식은 밥 한톨이라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되며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려 놓여진 반찬을 입속으로 가져가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끼니를 때우는 것 자체가 어느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이 한 시간 하루 연장되는 것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세계의 풍미를 보여주는 영상에 백합이라는 게 있기에 찾아보았더니 조개류의 백합이 아니고 백합꽃의 구근을 캐 구워 먹는 것이었다. 해발 2,000m의 고지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하얀 구근이 불에 들어가 꽃처럼 피어오르듯이 익고 그걸 아이가 호호 불면서 먹는 장면이었다. 백합은 꽃이 하얗다는 뜻이 아니라 하얀 뿌리가 비늘처럼 켜켜이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천지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꽃의 뿌리를 먹다니. 그것도 고원지대에 드넓은 평야에다 백합을 심어 풍미가 특별한 농산물로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꽃은 흰색이 아니라 주황색이었고 우리는 그냥 나리꽃이라 부르는 종류였다.(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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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움은 떠나야만 가능하다 - 생태마을에서 배운 교육, 지혜, 사랑,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배움 시리즈 1
김우인 지음 / 열매하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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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인 님의 [어떤 배움은 떠나야만 가능하다]를 읽었다. 부제는 ‘생태마을에서 배운 교육, 지혜, 사랑’이다. 프랑스 떼제Taizé, 독일 지베린덴Sieben Linden, 이탈리아 토리Torri, 잉글랜드 비치 그로브 부르더호프Beech Grove Bruderhof, 스코틀랜드 핀드혼Findhorn, 포르투갈 타메라Tamera 이렇게 6개의 마을을 다녀온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도 유럽의 마을들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떼제를 제외한 다른 곳은 모두 생소하고 나라 이름이 설명되어 있지 않다면 어느 곳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겠지만 이렇게 세계의 각지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저자가 다녀온 공동체들의 특징은 초기 공동체 사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핀드혼의 초창기 세대와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갈등을 겪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갈망과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에 더욱 강조점을 둔 이들의 고집으로 인해 생겨나는 부딪힘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으로 비롯된 다툼과 거리감을 어떻게 회복시켜 나가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마을의 기원과 상황을 전해받으며 그들이 삶으로 생태마을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단 하나라고 생각된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견디어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초대이다. 우리가 그 초대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닌 실제의 몸으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것은 비단 자연과 사람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겁이 많아지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다보니 짐짓 스스로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상대방을 쉽게 판단해버리는 오류에 점점 길들여진다. 그 길들여짐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전처럼 몸을 부대끼며 다투고 토라지고 서운해하는 시간을 견뎌내야만 새로운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 친구는 나에게 온 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줄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처음의 마음을 함께 회복해나가자고 손짓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예술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온 삶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다.(88)”

“한국 사회는 사람도 나무도 저마다 지닌 섬세한 감각들을 마구 도려내어, 아프다는 사실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드는 곳 같았다.(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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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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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의 [러시아의 시민들]을 읽었다. 최근 ‘방구석1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쇼생크 탈출’ 영화를 다루었다. 아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를 꼽을 만큼 뛰어난 작품성과 드라마틱한 내용에 감동까지 갖춘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원제에서는 탈출이라는 단어가 아닌 ‘Redemption구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말했듯이 단순히 감옥에서 탈출하는 경로의 긴장과 재미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통해 구원받게 되는 인간의 영혼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러시아의 시민들]은 어쩌면 시베리아 형장과 서슬퍼런 사회주의 국가의 엄격한 통제가 연상되는 동토의 땅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추천하는 말을 쓴 박정민 배우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유럽 여행을 하고자 하면 서유럽의 선진국가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좀 더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동유럽이나 북유럽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를 가겠다고 생각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러시아에 뭐가 있지? 혹시 러시아는 무서운 곳이 아닐까? 거기 엄청 춥기만 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러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가로막는다.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국으로 냉전시대의 커다란 한 축이었던 소련에 대한 기억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백민석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근래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을 정도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은 시도해보고 싶은 코스이다. 우리와 별 상관없는 것 같은 러시아라는 나라의 엄청난 영토를 가로지르는 열차에 대한 로망은 왜 생겨난 것일까? 어쩌면 구한말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했던 우리의 수많은 조상들이 스탈린에 의해 대륙의 정반대편으로 강제이주 당하면서 생겨난 카레이스키(고려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보여준 러시아는 소위 잘사는 서방 국가들에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 시민들만의 고뇌가 엿보이는 듯 하다. 러시아 여행은 편리와 안락함에 길들여져 불편한 것들은 단 한 순간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나약해진 본성에 날카로운 얼음칼로 틈을 내어 냉기를 불어넣는 상상을 해 본다. 러시아의 곳곳에 세워진 도스토에프스키의 동상이 하나같이 구부정한 모습이라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러시아 시민들만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관광객이라는 신분 덕택으로 우리는 이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고, 정치적 현실에 관심을 갖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롤랑 바르트. 그 신분을 넘어서고 싶다면, 우리는 기꺼이 양심과 책임의 문제와 마주서야 한다.(129)”

“아마 도스토옙스키의 구부정한 등과 슬픈 표정의 동상은, 그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그의 작품들 속에서 건져 낸 인간 심연의 모습이 아닐까. 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인간과 종교의 밑바닥까지 훑는 닻 같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그의 소설에는 행복해하거나 기뻐하는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웃는다 하더라도 꼭 광인처럼 웃는다.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인 주인공들은 늘, 깊고 어두운 영혼의 지하방에서 허리를 굽히고 불안하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기나긴 사유를 풀어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줄기 광적인 깨달음을 얻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 여기까지 생각하자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이 어째서 그처럼 등이 굽어 있는지 이해가 된다. 그의 등은 심연을 들여다보느라 굽은 것이다. 그의 동상이 정치가나 군인의 동상처럼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뻗은 등을 하고 있다면 그의 작품 세계와는 결코 어울리는 않을 것이다.(219-220)”

“횡단은 자신이 가로 건너는 시공과 물리적으로 접촉을 하는 일이다. 그곳에 직접 가보는 일이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의 제약을 순차적으로 가로질러, 그곳의 실재와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그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만남 속에서 여행자는 실존에 대한 현실 감각을 되찾고 세계에 육체성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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