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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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작가의 [수면 아래]를 읽었다. 얼마전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에서 질리도록 말이 없던 구씨와 3남매의 아버지 염제호가 나오는 장면을 글로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해인, 우경, 성규, 장미, 유진 그리고 환희라는 꼬마 아이까지 등장인물은 그렇게 많지 않고 때로는 따분함이 느껴질 정도로 격동치는 사건조차 하나 없다. 너무나도 잔잔하고 희미해서 졸음이 올 정도이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잔잔한 모습의 수면에 이르기까지 어떤 격랑을 겪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 아는 슬픔의 시간, 오롯이 스스로 견뎌내야만 하는 지독한 고독의 시간을 수면 아래에 감춘 채 해인과 우경의 서사가 조금씩 펼쳐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해인과 우경이 예전에 결혼한 부부 사이였음을 알려주지만 그들이 왜 헤어졌으며 지금은 어째서 친구처럼 지내는지, 우경은 하노이에 가서도 왜 해인에게 지속적인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인지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고뇌속에 술 한 잔을 들이키는 근심이 가득한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며 막연히 염려하는 것처럼, 독자에게도 해인과 우경의 사연을 시시콜콜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방관자처럼 지켜봐 줄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해인이 일하는 곳은 중고물품을 다시 깨끗이 닦아서 파는 해동중고라는 곳이다. 해인과 사장과의 대화는 사뭇 노사관계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난 것처럼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한 장소를 함께 공유한 것처럼 비춰진다. 그들에게 일할 곳을 공유한다는 것은 마치 중고물품을 깨끗이 닦는 것처럼 함께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과 같다. 사장이고 직원이지만 그저 이곳을 스쳐지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외딴 곳에 있어서 그런지 한적해 보이는 해동중고의 주차장에는 마을 아이들이 종종 놀러온다. 그리고 그 무리 중에 유난히 해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아이는 환희이다. 다른 아이들은 그냥 환희와 등장한 주변 인물에 불과하지만 환희는 혼자서도 공터에 놀러와 해인이 팔기 위해 준비한 물품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해인에게는 동네 친구라 할 수 있는 장미씨가 있고, 우경과 함께 오래된 친구인 성규까지 종종 해인의 적적함을 달래준다. 그들은 특별할 것도 없는 우동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치킨집에서 닭에 소맥을 마시며 회포를 풀고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해인은 마치 감정의 파고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해인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들 또한 해인의 감정을 도발시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애써 단어 하나 하나를 심혈을 기울여 골라낸 것처럼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상대가 대답을 빨리 하지 않아도 보채지 않고 묵묵히 먼산을 쳐다봐도 기다려준다. 말하고 싶지 않는 질문에는 동문서답을 하거나 딴 얘기로 돌려도 처음 하려고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인의 주변 인물들은 마치 운명 공동체처럼 엄청난 태풍과도 같은 큰 재난을 이겨낸 것처럼 우리가 평소에 예민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해인과 우경의 수면 아래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야 어떤 특정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해도 그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극심한 트라우마로 평생 고생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는 아주 작은 일에도 행복하고 만족해하지만, 반면에 소확행 따위는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름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면 언제나 누군가를 평가하게 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수면 아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한 개인의 역사에는 어떠한 절대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해인과 만난 사람들 특히 하노이에서 전해오는 우경의 메일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아침부터 김치를 담그느냐 마느냐 상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대로변 마트에 나가 총각무를 사가지고 들어와 다듬고 씻고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버무린 것치고는 소박한 양의 김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김치 한 통을 만들기 위한 일들. 이렇게 하여 밥을 먹고 김치를 먹고 사는 것. 하루가 다 간 느낌이었는데 엄마가 먼저 하루가 다 갔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지만 괜히 아직 여섯시밖에 안 되었는데? 라고 말해보았고 엄마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다 간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거의 다 간 거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나지 않았으나 다 지나가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살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인가 생각하며 초록색 둥근 컵에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쏟았다.(42)”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만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지금 내게 남은 마음은 그것뿐이라고, 구도심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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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2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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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2]를 읽었다. 신간소개에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을 보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또 다른 에디션이 나왔나 싶었는데, 옆에 숫자 2를 보고서야 드디어 소설에도 OTT 드라마처럼 시즌제가 시작되는 것인란 설렘이 느껴졌다. 발행일을 기다리며 불편한 편의점에는 또 어떤 알바생이 등장하고 어떤 사연이 담긴 이들이 그윽한 감동을 전해줄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편의점 이름이 ‘always’라는 점이다. 마치 노랫말처럼 지치고 힘들 땐 언제나, 항상 기댈 곳이 있는 편의점의 함의는 유년시절 좋아했던 가수의 앨범 제목이기도 해서 익숙하고도 편안했다. 시즌1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독고라는 노숙자가 있었다면, 시즌2에서는 홍금보라는 수다스럽고 조금은 산만하지만 붙임성이 좋은 새로운 인물이 중심을 잡고 있다. 독고는 마음 따듯한 편의점 사장인 염여사를 통해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홍금보는 독고라는 인물을 연극의 주인공으로 낙점한 인영과의 인연으로 불편한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소설 초반엔 홍금보도 독고처럼 특이한 이력에 깊은 상처를 가진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황근배라는 이름을 놔두고 홍금보라는 별명이 쓰인 이름표를 달고 시키지도 않은 말을 건네며 때로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가중시키는 인물이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편의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사연에 집중하며 홍금보와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 대한 어려움과 답답함을 여러 곳에서 묘사하고 있기에 벌써 2년 반이나 넘는 시간을 보내온 전염병에 대한 지나온 시간이 역사의 한 장면들처럼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특히나 취준생 소진과 오랜 시간 정육식당을 운영하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최 사장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마주할 이웃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마음 아프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이 힘겨운 시기를 견디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뉴스를 통해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에 읽은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와 이번 소설에 나온 최 사장의 이야기를 보며 실제로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지 감히 헤아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는 현상만큼이나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기운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최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맥 한잔에 옥수수 수염차 한잔이라도 건배를 하며 힘을 북돋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나을텐데, 실제로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그런 행운과 여유가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홍금보란 별명의 근배가 어떻게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게 된지에 대한 사연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186)”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가장 나쁜 버릇이 남에 대한 손쉬운 판단과 뒷담화 그리고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 부질없는 걱정이 아닐까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했는데, 그만큼 뒷담화의 마력은 엄청나서 누군가를 험담하고 욕할 때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에 멈출수가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뒷담화를 아무 생각없이 장시간 내뱉은 대화를 마치고 나면 뭔가 몹시 쓴 음료를 마신 것처럼 입안이 텁텁하게 느껴지고 뒤끝이 좋지 않다. 비교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지금의 나에게도 좋은 장점과 재능과 복이 있을텐데도 끊임없이 타자의 삶과 견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내일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고 나 자신을 점점 좀 먹게 된다. 엊그제 읽은 하현 작가의 [아이스크림]에서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2년차 징크스라는 말로 신입생, 신인 시절에는 좋은 성적을 내다가도 2학년, 2년차가 되어서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하현 작가는 이 징크스에 빠지는 마음은 바로 의심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독이 쌓이게 만드는 걱정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시국을 보내며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점점 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속된 말처럼 아무도 나의 고통과 슬픔을 대신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일단 선부터 긋는 것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우리가 무인도에서의 고독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엔 각자 혼자라는 말이 어딘가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인이 된 이상 각자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도저히 혼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 우연의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무상의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마음을 나눌 때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감격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무상의 주고받음에는 귀찮음과 손해를 각오해야 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유용성의 원리로 계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그 무상의 논리가 하찮고 무의미해보인다. 그래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청파동에 있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아닌 좁고 품목도 부족한 불편한 편의점 Always는 각자도생이 인생의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삶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남이라 해도 내 마음을 헤아리며 약을 발라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딘가에 홍금보 같은 야간 알바생이 있으면 좋겠다. 무너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따뜻한 캔커피 한 모금이라도 마시기 위해 들어간 편의점의 한밤중에 쓸데없는 얘기로 말을 걸며 수다스럽게 TMI를 전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뭐야 엄청 특이한 알바생이네’ 라며 이죽거릴 수 있겠지만 그의 친절과 수다로 입가에 주름이 처지듯 올라간다면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게 있는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더라.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더라고. 여기서 잘하는 일은 특기야. 하고 싶은 일은 꿈이고,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직업이라고 하자. 이것에 모두 해당하는 교집합이 있을 거란 말이야. 그 교집합을 찾으면 돼. 그러니까 특기가 꿈이고 그게 직업이 돼서 돈도 벌면 최곤 거지.(143-144)”


“시간, 새삼스럽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이란 걸 체감하는 날들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래시계가 머리 꼭대기에 놓여 있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시간의 가루가 뇌를 채워가는 기분이었다.(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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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
봉현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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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현 작가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를 읽었다. 9년차 프리랜서로서 5번째 책을 내기까지 그리고 비정기적인 의뢰를 받아 마감을 하며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시간들에 루틴을 부여하기까지의 내적 고뇌의 시간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이전의 전형적인 목표를 이루는 삶의 행태들 그러니까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보수가 지속적인 안정적인 직장이나 일터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살아가며 행여나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과 노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금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놓는다. 왜냐하면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불행한 이들의 사연이 쉴세 없이 달려들고 언제든 나 또한 그 불행한 이들의 부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욕구와 희망을 잠재운다. 그런 면에서 봉현 작가는 참 용기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포장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미 안정된 삶의 영역에 들어섰음에도 초초해하며 그들을 질시하거나 따라가려 하지 않고 올곳이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비겁해진다. 겁이 많아지기 때문일까. 새로운 것을 시도함을 귀찮아 하고 어차피 그것도 별다르지 않을거라 미리 단정짓는다. 그래서 삶이 점점 지루해진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면 내가 갖고 있는 놀이의 도구를 대부분 다 갖고 나갔다. 오늘은 어떤 놀이를 할지 모른다.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못 나올지도 모르니 일단 어떤 놀이를 하던지 낄 수 있기 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나간다. 때로는 구슬치기를, 망치로 때려 평평하게 만든 병뚜껑을,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축구공을, 농구공을, 짬뽕공을 가지고 나가곤 했다. 모든 잘하고 싶었고, 놀이에서 지더라도 다음엔 내가 이길 수 있도록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열정과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잠이 안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의 움직임이 그립다.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이 있냐는 질문을 거의 10년 째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청개구리가 된 것처럼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가버린다. 더 많이 책상에 앉아 있고 싶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더 많은 독후감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별안간 대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란 허무함에 빠지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잠깐의 산책을 할 때마다 만나는 노인이 있다. 한 손에는 조그마한 스피커를 틀고 뽕짝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휘적휘적 나보다 두 배는 빠르게 걷는다. 걸음걸이가 하도 신기해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지나칠 때 들리는 질나쁜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꽤나 귀에 거슬린다. 내가 한 바퀴 돌때 벌써 왕복하는 그분을 볼 때마다 참 건강해보이시는데,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이유가 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베로나의 카스텔베끼오 다리를 산책할 때 매일 만나는 모녀가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잡으며 하루하루 견디던 때라 노을이 지던 산책길에서 만나는 모녀가 반갑곤 했었다. 몇 번이나 마주쳤을까? 분명 외국인인 내가 동일한 코스를 산책하는 게 신기했을텐데 한번도 말을 걸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가곤 했다. 딸이 아픈걸까? 이미 성인이 되어 보이는 딸이 매일 저녁 엄마와 함께 산책하는 게 조금은 낯설게 보였다. 언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녀와 친구가 되는 건 어떨까? 자연스럽게 이 근처에 사냐고 물으면 그들도 나의 신상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비슷한 상상을 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언젠가 한 번 엄마가 다른 곳을 보며 딸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을 때가 있었는데, 딸이 나에게 싱긋 미소지으며 지나친 적이 있었다. 아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구나 라는 반가움과 더불어 엄마 몰래 나에게 인사하는 딸은 혹시나 엄마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란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먼 타지의 그곳을 떠올리면 이름도 모르는 그 모녀가 왜 떠오르는 것인지 의아하다. 그곳에 만나고 함께 생활하던 이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때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려 오늘을 맞이하게 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알 필요도,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내 모든 것을 다 내보일 필요도 없다. 한 사람의 삶 전체를 SNS에 담아낼 수 없다. SNS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사라지지 않고, SNS를 한다고 해서 삶이 불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 듣고 싶지 않은 말에 귀를 막을 자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침묵할 권리, 궁금해서 직접 찾아보며 배우는 기쁨,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은 좁고 작은 평화 같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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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2022-11-1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코루 님!
귀한 글, 높은 얼이 잔잔히 흔들리는 님의 모습이 영상 지어졌습니다.
매우 감동이었습니다.
맨 아랫 단의 글을 베껴 갑니다.
어디 다른 데다 옮겨 쓰지는 결코 않습니다.
그냥 글을 가지고 있고 싶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아이스크림 :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띵 시리즈 20
하현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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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 작가의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20번째 책이다. 체리쥬빌레, 거북알, 메로나, 바밤바, 깐도리, 트위스트 트리트, 아이스팜 자두바, 투게더, 빵빠레, 더위사냥, 엑설런트, 맥도날드 소프트콘, 하겐다즈, 키위아작, 빠삐코 딸기, 구구콘, 뽕따, 수박바 등 챕터 마다 열거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치 마력을 가진 글을 만난 기분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띵 시리즈 전권 중에 가장 재미있었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으며 반전으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열거된 아이스크림 중에 안 먹어본 게 몇 개 안되는 걸 보니 나 또한 어릴 때는 꽤나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세계에서 신인이 나와서 히트를 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위의 많은 아이스크림을 내가 어릴때도 먹었었는데 지금도 잘 팔리는 품목이라니 정말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길고 기존의 기성세대 같은 아이스크림의 위엄은 아무나 높아서 쉽게 무너지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아는 이탈리어어 중의 하나가 젤라또가 아닐까 싶다. 아이스크림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만큼이나 젤라또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크다. 대부분 수제 젤라또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가게 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고 수분의 양도 차이가 나서 쫀쫀한 젤라또를 주로 파는 가게와 수분이 좀 더 많은 젤라또를 파는 가게 혹은 사베트처럼 얼음 알갱이가 느껴지는 젤라또를 파는 가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번 마트 냉동고에 있는 아이스크림, 하드만 먹다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수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신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너무나 다양한 맛과 열대 과일들의 과육이 씹히는 맛이며 찐득한 초콜렛을 먹는 것 같은 맛은 1일 1젤라또를 외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미 우리나라에 베스킨라빈스가 상륙하여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데도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졌기에 없는 살림에도 젤라또는 꽤나 꾸준히 먹고 다녔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서 맛 본 것들이기에 저자의 글에 나온 향수와 추억은 그렇게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열거한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나도 어릴때 먹어봤기에 갑자기 그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젤라또에 비하면 거의 5분의 1가격인 하드 하나를 나누며 즐거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나 거북알에 대한 내용은 진짜 너무 공감되서 거북알의 주둥이를 떼어내기 전에는 심호흡을 하며 멈추면 안된다는 국률을 떠올리 게 만든다. 소개된 하드 중에 아이스팜 자두바를 못 먹어봤는데, 역사가 길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자두맛이라는 레어템이라서 그런건지 나도 요즘 우후죽순 생기는 아이스크림 할인 판매점에 들어가서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어른이 되면 입맛이 변하기도 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어릴때 즐겨먹던 간식과 주전부리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요즘처럼 더운 날이라 해도 점심 식후에 슈트를 입은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아니라 뽕따를 입에 물고 회사로 복귀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뽕따가 값도 싸고 더 시원할텐데 말이다. 건강 걱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걸 마구마구 먹을 수 있던 때가 그립다. 시간이 갈수록 이건 이래서 먹으면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좋을텐데 라는 입맛 떨어지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진짜 꼰대가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이런 저런 이유가 먹지 않고 못 먹는 상황이 생겨나지만 이 책 덕분에 유년 시절을 추억하며 한바탕 웃고 아직도 내 안에 동심이 남아있기를 바라게 된다. 조만간 아이스크림 털러 가야지. 


“한 사람의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에 나는 관심이 많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그의 취향이 궁금해진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가가 있는지, 역 근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골목 깊숙한 곡의 작은 개인 카페 중 어느 쪽이 더 편한지. 살아온 시대와 지역,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 잊지 못할 추억,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취향에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하나의 취향이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43-44)”


“나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마음은 아마도 의심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 내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대한 의심,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한 의심, 나의 노력과 의지에 대한 의심, 다음 기회에 대한 의심… 의심에는 끝이 없어서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다른 것들도 줄줄이 무너진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손을 떼도 이미 늦었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본다. 다 무너질 때까지. 더 좋은 방법도 있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143)”


“누군가의 최선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모두가 돌아서도 끝까지 응원할 용기를 주니까. 가능성은 숨은그림찾기의 아주 작고 희미한 그림 같아서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존재를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장 멋진 모습을 발견하면 그 장면이 흐릿해지기 전에 마음속 깊이 새겨놓는다. 그게 나 자신일 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때도. 형편없이 눅눅해질 미래의 어떤 날에도 우리의 최선은 거기 남아 변함없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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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숲의 아이들
손보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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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사라진 숲의 아이들]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탐정, 형사 추리물과 같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난폭함, 긴장감, 잔인함 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일반적이지 않은 기괴한 패턴을 가진 행동들이 가진 의미를 묘사한 부분들이 극의 긴장감을 가속시켰다. 또한 베트남 전쟁 때에 월남으로 파병갔던 군인들만이 아니라 파월노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동자와 군인으로 목숨을 건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자 당시 그들을 월남으로 보냈던 회사에 불을 지르고 저항하다 주동자들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분명 뉴스와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며 주목을 받았겠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얼마든지 언론은 조작될 수 있었고 상당수의 시민들은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결국은 그렇게 억울함을 폭력으로 표현한 이들은 불운한 삶을 보내게 되었고 소설 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들 중 보상을 받은 이들은 아무도 없으며, 불을 지른 이들을 감옥에 보낸 회사는 그 주변의 땅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그곳에서 살던 이들을 내쫓아 서울의 랜드마크라는 건물까지 올리게 되었다. 소설 속의 표현처럼 그렇게 올린 건물에서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벌이며 즐기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어디선가 그런 억울함을 안고 한 평생 남을 원망하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화풀이와 폭력을 행사하며 스러져간 이들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떠올려본다. 소설의 주인공 채유형과 진경언 형사와의 만남은 마치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그러한 선택 말고도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사랑은 자기들을 망가뜨린 이들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사랑일 거라고도 말해주는 것 같다. 사회부적응자인 채유형은 지방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붙지 못했으며그 이후에 들어간 어느 회사에서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마지막은 항상 해서는 안될 말까지 내뱉으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외톨이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유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회적으로도 유명한 성공한 이들이었고 이들은 유형을 채근하지도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렇게 거리감을 갖고 대하는 이유가 자신이 입양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6살 때 입양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고등학생 무렵 3년 동안 이어진 의문의 우편물은 유형의 친부가 파월 군이이었고 그가 어느 건물에 불을 질러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었다. 


어쩌면 유형이 자신을 학대하며 벌을 주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간과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자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유형에게 어느날 학교 후배라는 윤종에게 연락이 오고 외주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의 피디로 입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유형은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의 만드는 팀에 들어가게 되고 최피디를 만나게 된다. 회사의 젊은 사장이 부임하면서 최피디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종용당하고 유형은 최피디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윤종과 함께 살인죄로 재판을 앞둔 10대 학생 심효전을 만나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사라진 숲의 아이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심효전은 동갑인 여학생과 그 여학생이 만난 2살 위의 남자를 죽이게 된다. 여기까지는 막나가는 10대의 극단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형이 새로운 사건을 찾다가 부루퉁한 얼굴의 진형사를 만나면서 심효전의 사건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진형사는 바쁘고 정신없는 동료 형사들과는 다르게 평온하게 책상에 앉아 새로운 빵집과 맛있는 빵의 레시피를 끄적거리며 유형을 차갑게 대한다. 유형은 진형사에게 뭐라고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진형사에게 빵과 커피를 사다주게 되고, 진형사는 그때부터 유형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형사가 경찰서에서 그렇게 무인도에 있는 사람처럼 지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서서히 실마리가 드러나게 된다. 채유형과 진형사 그리고 최피디와 윤종 등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락하고 통화하거나 또는 연락을 외면하는 수단으로 휴대폰이 자주 등장한다. 마치 현대 사회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상대방이 자취를 감취려고 잠적하게 되면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상대방과 연결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를 막연함을 가진채 인내심을 갖고 내 연락을 받길 바라며 지속적으로 연결시도를 해야만 한다. 채유형과 진형사가 서로 모진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주고 서로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이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서로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결국 유형에게는 진형사가, 진형사에게는 유형이 구원자가 되어준다. 이는 유형이 처음으로 연락하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본가를 찾아간 것과 진형사가 자살한 후배 형사가 선물로 준 변압기가 필요한 커피 머신을 치워버리는 일로 상처가 극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빌딩숲이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 아무도 살거나 일하지 않는 멀쩡한 빌딩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곳이 꽃이 피는 숲으로 모든 것을 다 갖고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만한 가득한 아이들과 그 정반대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순간적인 일탈을 벌이는 장소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사회의 각박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마치 그 두 부류의 아이들이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일탈의 행동을 할 때에는 가까워진듯 해도 결국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고 말 것이라는 소설속 아이들의 외침은 단지 소설 속의 가정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이제는 전설 속의 말로 사라졌다는 슬픈 자화상을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 이 세상은 쓰레기이고 자신들도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만드는 것들이 사라지고 진짜로 자기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어른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지나가는 그 가냘픈 통증의 정체가 수치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움, 무자비하게 자신을 덮치는 참혹한 부끄러움.(119)"


"넌 어때?

이 세 글자를 볼 때마다, 아니, 이 세 글자를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녀는 그 의미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바뀌곤 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남자의 딸로서 살아가는 게 넌 어때? 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넌 어때? 다른 사람들과 평범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게 넌 어때?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게 넌 어때? 거칠게 바닥에 펼쳐져 있는 기사와 사진들을 다시 가방에 넣은 후 옷장 안 깊숙이 숨겨두었다.(193)"


"비교 우위를 점하는 것.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서 사태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건 기만적인 태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때로는 사태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기만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통해서만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삶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삶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진실이 있다.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바로 여기에.(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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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쓰기그림그리기 2022-08-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