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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평점 :
셸리 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었다. 원제는 "Go as a river"이다. 올봄 우연히 SNS를 통해 이동진 작가님이 추천한 책을 보고 장바구니에 넣어놨었는데, 차일피일 주문을 미루다 권남희 작가님이 블로그에 올린 리뷰를 보고 당장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에 읽은 소설 중에 단연코 최고라고 할 정도의 놀라운 가독성과 짙은 감동을 선사했다. 광활한 미국 서부 콜로라도 지역의 산과 강을 둘러싼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그 터전이 될 수 밖에 없는 자연의 무한한 포용력을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전세계 어느 나라든 발전 단계와 상관없이 빌딩이 가득한 도시와 드넓은 들판과 산과 강 또는 호수가 있는 시골이 공존한다. 도시에 살면서 가끔씩 수련한 자연 경관을 그대로 보존한 곳을 방문하게 되면 숨통이 뜨이면서 여지껏 제대로 숨 쉬는 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처러 크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혼잡함이 사라진 곳에서 세상의 미물들이 살아가며 내는 소리와 하늘의 흐름을 지켜보며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 얼마나 작은지 무상함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막상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의 여정이 지속되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지속적으로 터져나오기 마련이고, 이제 다시 내가 지내던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빅토리아의 굴곡진 삶을 따라가면서 인간은 원래 현대 사회가 마련해놓은 편리함과는 무관하게 생존해오지 않았나 하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나 빅토리아가 산장에서 홀로 아기를 출산하고 극심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아기의 탯줄을 잘라내고 젖을 주는 장면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다 비슷한 과정을 겪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인간의 생명력은 참으로 위대하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도시와 시골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도대체 한 시도 인터넷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를 사는 하루를 조명하게 된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놀이와 볼거리가 넘쳐나서 그런지 뭔가 하나에 집중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자연이 전해주는 소리에 눈을 감고 단 10분도 집중하기 힘들다. 무한히 이어지는 릴스와 쇼츠의 홍수에 빠져 이어지는 뒷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되'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관념이 되어버려 어떤 사건에 대한 전후사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빅토리아가 전해주는 고백은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삶의 터전인 이 땅과 하늘과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쏟는 순간 온세상이 나를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격려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억지로 전쟁에 끌려간 젊은이들의 비참한 말로와 그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 또한 그리고 있지만, 빅토리아의 동생 세스를 대표격으로 내세운 인디언 원주민에 대한 너무나도 강렬히 만연된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열 일곱살이 된 빅토리아는 마을 중심부에서 우연히 마주친 윌슨 문과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윌과의 만남이 그려지는 첫 장면에서는 빅토리아가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급급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엄마와 사촌 오빠와 이모를 한 순간에 데려간 비극적인 사건과 더불어 세스라는 고집불통에 온갖 심술과 불만을 폭력적으로 드러낼 거리를 찾는 동생이 있다는 내용을 알게 되면서 더군다나 윌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폄하하는 인전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빅토리아의 선택이 불러러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빅토리아는 윌이 단지 인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받으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현상금까지 걸리자 그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말한다. 윌은 빅토리아의 맘에 없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세스 같은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아.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143)"
생각해보니 윌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빅토리아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윌이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간다 한들 세스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 어디로 간들 세스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려는 사람이 없겠는가?" 말이다.
빅토리아의 가족에게도 자동차 사고로 한 번에 가족 셋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이 미친 할머니라고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 루비앨리스 에이커스 또한 독감으로 가족 모두를 떠나보낸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세스가 끊임없이 분노를 표출하며 타인에게 불편함과 불안함을 제공했다면 빅토리아는 루비앨리스 에이커스를 피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주님루비앨리스에이커스를도와주세요아멘'이라고 짧게마나 화살기도를 바치며 악과 선의 평행선을 이루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결국 빅토리아의 짧은 기도는 훗날에 처참한 몰골에서 멀정한 옷차림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한평생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배회하던 루비앨리스가 편안히 임종할 수 있는 손을 잡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극적이고 위태로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빅토리아가 임심한 몸으로 산장에서 머무는 시간은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극적으로 다가오도록 묘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복숭아 밭을 일구며 자연의 흐름에 익숙했던 빅토리아마저도 산 높은 곳에 있는 산장에서의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고, 8월 말에 갑자기 내려간 기온과 눈으로 간신히 일궈놓은 텃밭마저 엉망진창이 되자, 빅토리아는 이성의 끊을 놓고 만다. 급기야 극심한 배고픔으로 아직 턱없이 못자란 비트마저 뽑아 먹으며 흙 한 줌을 입에 넣는 장면은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슬픔과 고통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감히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슬픔과 고통의 막바지에 갓난아기인 아들에게 줄 젖이 나오지 않자 홀린듯이 산에서 내려가다 마주친 젖을 물린 어느 여인이 타고 왔을 차에 아들을 놓고 떠나며 절정에 달한다.
"세상에는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그런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심장에서 시작되어 모든 세포로, 모든 혈관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한번 덮치고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땅도, 하늘도, 심지어 자기 손바닥마자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209)"
사랑했던 엄마와 캘 오빠와 비브 이모를 떠나보내며 깊은 슬픔을 경험해 봤다고, 이미 빅토리아의 유년 시절의 촘촘한 태피스트리에는 큼직한 구멍이 나 있다고, 그 무지막지한 슬픔은 빅토리아를 앗아가려고 했지만, 아기를 차 뒷좌석에 놓고 도망치듯 달리는 그녀는 유년 시절의 슬픔을 뛰어넘는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루비앨리스의 보살핌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빅토리아는 윌이 가르쳐 준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아빠를 마주하게 된다.
"끔찍하든 아름답든 절망적이든 어떤 결과가 닥치든 간에 그저 최선을 다해 마주하면 된다고.(224)"
아빠가 돌아가신 후 복숭아 농장을 돌보게 된 빅토리아는 아빠가 가르쳐 준대로 성실하게 나무들을 돌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이 평화로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겉으로는 모든 게 질서 정연해 보였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심장을 후벼 파는 진실과 함께 눈을 떴다. 이곳을 향한 내 사랑도 우리 가족이라는 끝장난 나무에 간당간당 매달린 시든 잎사귀 하나에 불과하다는 속삭임이 매일 아침 나를 깨우는 알람이었다.(237)"
극심한 내적 고통에 시달릴 때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지옥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잠을 자고 있을 때가, 나에게 닥친 일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하지만 이내 잠에서 깨어나면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통과 슬픔은 아주 조금씩 나를 갉아먹으며 공존하는 것만 같았다.
빅토리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댐 건설로 수몰될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미련없이 지을 처분하기로 결정한다. 빅토리아의 선택을 배신이라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본체만체하며 적대시하지만, 빅토리아는 서둘러 조부모 때부터 지켜낸 복숭아 나무를 옮겨심을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다행스럽게도 빅토리아를 도와주는 그리니 교수와 학생들 덕분에 완벽한 내시 복숭아를 열매 맺게 할 나무들은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게 된다. 복숭아 나무의 이동과 더불어 빅토리아는 새로운 삶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는데, 부동산 중개인의 부인이자 빅토리아의 가장 친한 이웃이 된 젤다는 빅토리아가 상처를 안고 힘겹게 삶을 버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진심어린 충고와 격려의 말을 이렇게 건넨다.
"빅토리아가 강한 사람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요. 나무도 구하고 농장도 운영하고 열심히 일하고 걷고... 뭐든 혼자서 척척 잘 해낸다는 거. 그래도 슬픔을 혼자 짊어지고 사는 건 강인한 게 아니에요, 빅토리아. 그건 누가 봐도 벌이야.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든 자신을 비난하는 것만큼은 멈췄으면 해요.(340)"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만한 불행을 마주한 사람은 몹시 괴로워하다가 그 불행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옷을 뒤집어 먼지를 탈탈 털어내듯이, 서랍을 통째로 빼내어 보이지 않는 구석에 걸려 있는 것은 없는지 확인하듯이 너무 가물가물해서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기억을 재생시키며 '그 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라는 가정으로 자신을 비난한다. 그 비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통함과 죄책감은 커져만 가고 부작용으로 불같은 화를 내뿜기도 하다 결국은 자신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길만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란 극단의 상태에 이른다. 흐르는 강물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며 복숭아 농장을 돌보던 빅토리아마저 자신의 아들과 같은 나이 또래의 이웃집 카를로스를 보며 슬픈 눈을 감추지 못한 모습을 눈여겨 살펴본 젤다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자신의 불행에만 매몰되지 않고 때로는 억척스럽게 가끔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방식으로 마음을 열지 않던 빅토리아에게 젤다의 인내로운 기다림과 배려는 종국에 가서 빅토리아가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를 품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잉가, 루카스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마중물 역할까지 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고.
그랬다. 젤다의 말이 옳았다. 내 과수원이 그랬듯 나 역시 새로운 토양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뿌리째 뽑히고도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러나 셀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는 강인함은 이 어수선한 숲 바닥과 같다는 걸 배웠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였다.(41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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