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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사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4
이희주 지음 / 민음사 / 2024년 3월
평점 :
이희주 작가의 [나의 천사]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44번째 작품이다. 스마트폰이 아닌 2G 아날로그폰이나 삐삐라는 무선 호출기를 사용할 무렵 1004라는 네 자리 숫자가 유행이었다. 발신번호 표시를 제맘대로 바꿀 수 있었기에 1004라는 번호로 알쏭달쏭 누굴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천사라는 말은 사실 종교적 용어임에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종교적 용어로의 천사는 당연히 절대자인 하느님을 도와주는 선을 상징하기에 착함과 진실함이 내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천사라는 말을 쓸 때에도 그와 유사한 의미를 담아 전달하기에 익명의 누군가가 나에게 무상의 도움을 주었을 때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처럼 특정인을 항상 지켜보며 사랑을 마음껏 베푸는 이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 속의 천사는 전혀 다른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 근래에 들어 AI 곧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지만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로봇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소설 속의 시대적 연대는 오히려 지금보다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로 올러가는데, 이미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로봇이 절대적 아름다움을 가진 천사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몇 번 언급이 되기는 하는데 천사와 같은 외적 미를 가진 로봇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판매되었다. 섹스봇과 같은 아마도 분명 심각한 윤리적,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켰을 문제를 벗어나 자비천사라는 로봇은 관용사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아 인간의 육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외적 미를 완성시키게 된다.
우리나라의 외모지상주의는 이제 자리를 잡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추앙하다시피 하여 더 이상 성형을 숨기지 않고 심지어 그냥 잘 생기게 태어난 연예인에게 얼굴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일단 외모가 호감형이면 아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가산점을 먹고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입으로는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시각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 인간의 메카니즘은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마음의 따뜻함보다 외모 점수를 금방 매겨버리게 된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인간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본능적으로 미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코가 높든 낮든, 눈이 크든 작든 숨쉬고 보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잘 생기고 예쁘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은 눈과 코와 입이 얼굴 전체에 균형이 잡혀 있다는 것을 순식간에 파악하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이 '풀꼿'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말한 이유가 어쩌면 순식간에 파악되는 미적 균형감보다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눈과 코와 입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예쁨을 깨달을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에 해당되는 유미와 미리내는 어린시절 환희에게 끌려다니시피 자비천사를 찾아다니곤 한다. 약아빠진 환희는 미리내를 구박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지마 유미는 별 생각없이 환희와 미리내와 무리를 지어 놀러 다닌다. 유미가 사는 동네에 자비천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에 망을 보다가 학교에 한동안 나오지 않는 이오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갑자기 시간은 뒤로 흘러 셋 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리내와 환희의 처지는 정반대가 되고 미리내는 돼지 같던 소년에서 말끔한 배우 시온이 되어 나타난다. 유미는 특수청소용역에 해당되는 일을 하며 홀로 혹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사후를 정리하게 된다. 유미는 의뢰받은 일을 하다가 추가로 정리를 부탁받은 창고에서 이오를 재회하고 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은 줄 알았던 이오는 천사라는 로봇이었음이 드러난다. 미리내가 시온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배우가 되어 자신의 대역인 류를 통해서 천사로봇이 만들어진 곳의 추악한 진실을 밝혀내려 한다. 그곳에서 천사의 모델이 되었던 수많은 소년들은 제2차 성징이 시작되자 선우선생에게 버림받게 된다. 결국 관용사의 디자이너로 추앙받던 선우선생은 가장 아름다운 청소년 시기 아이들의 싱그러움만 빼앗고 만 것이다.
"이제까지 윤조에게 천사는 천사였다. 모나리자는 그림이었다. 기숙사 앞의 니케상은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장미를 심으면 장미가 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천사를, 모나리자를, 니케상을, 장미를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름다움은, 천사와 모나리자와 니케상과 장미가 아닌 그게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변화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요동치는 물줄기를, 변하는 내 마음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 거다.(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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