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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어 원더풀 월드
정진영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5월
평점 :
정진영 작가의 [왓 어 원더풀 월드]를 읽었다. What a Wonderful World. 전작인 [젠가]와 [침묵주의보]에서 그랬듯 이번 작품도 술술 잘 읽혔다. 로또 복권 1등 당첨자를 둘러싼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듯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 순간 이미 늦었다고 체념하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허쉬처럼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의 국토종주가 가능한 자전거길이 소개되는 명장면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 상익은 여상정공이라는 자동차부품 납품 중소기업의 품질관리팀의 말단 사원이다. 소설의 첫머리에 그려진 사장 오제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속물로 그려져 있다. 온갖 얍삽하고 졸열한 방법을 동원해서 직원들의 연봉을 줄이고 야근 수당을 비롯한 추가 비용이 나가지 않도록 법을 적용할 줄 아는 치밀함도 갖고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을 통한 관계가 우선된다 하더라도 오제일과 같은 사장 밑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제일은 가장 믿음직한 부하 직원 중의 하나인 문희주 과장이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송별회식까지 열지만 그의 결정은 요지부동이다. 홧김에 로또 복권을 사서 회식한 참석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복권에 당첨되면 돌아오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까지 청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에 오제일이 사서 나눠준 복권 중의 하나가 1등에 당첨되어 누가 당첨된 것인지 직원들의 지갑을 들춰보는 치졸한 모습에서 시작된다.
오제일의 팔렴치하고 야비한 모습에 분노한 직원 중의 하나인 우희철이 사장과 대거리질까지 하며 자신을 데리고 오기 위해 거짓으로 연봉을 뻥튀기한 사실을 밝히며 사표를 내민다. 궁지에 몰린 오제일은 직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1등 복권이 당첨되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문희주 과장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연봉 1천만원을 올려줄 것이라는 각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후 박상익과 우희철, 이재유, 임정연은 문 과장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게 되고 그가 자전거로 국토대장정길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전거 길에서 문과장을 만나기 위해 차로도 걸어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자전거를 구입하여 문과장을 뒤쫓게 된다.
한강자전거길에서부터 시작된 대장정은 우희철과 이재유의 갈등과 다툼이 지속되는 계기가 된 야유회 때의 노래 사건을 전해주고 사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임정연의 놀라운 반전 또한 드러나게 된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상익은 처음에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관망하는 제3자처럼 나오지만 자전거 종주가 지속되면서 점차 주인공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추노꾼처럼 문과장을 추척하는 중간에 간발의 차이로 놓치게 되는 장면이 반복되며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기도 하지만 문과장이 올리는 인스타그램의 인증샷에 담긴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증은 지속되었다. 그리고 로또 복권 1등 당첨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심준호의 카톡 메시지를 통한 지속적인 안부 인사는 그가 소설의 정점을 향한 결정적인 키를 갖고 있음을 충분히 예상케 했다.
이재유가 과거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꽤나 유명한 노래를 만들고도 빼앗긴 사실이 드러나며 서로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게 만들어주는 부분은 감동적이면서도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졌다. 이재유의 결심을 계기로 임정연 또한 사장과의 관계를 고백하고 회사의 대주주임이 밝혀진다. 임정연의 사이다가 같은 발언들은 그저 항상 을에 불과했던 수많은 약자들을 심정을 대변하는 모습이었기에 소설 속에서나마 오제일과 같은 이들이 몰락하고 회사가 제대로 자리잡는 이상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인 상익 또한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것인지, 그저 번듯한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상익의 고민을 해소시킨 자전거종주길을 끝까지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은 독자로 하여금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로 단념했던 꿈을 향해 질주해 볼만한 가치가 있음을 전해주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깨달은 건데, 판단하기 어려울 때 죽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많은 고민이 줄어든다는 거였어. 내일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봐. 오늘의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도 않을 테고, 온종일 침대에 퍼져 잠만 자지도 않을 거야. 그때 어머니는 진심으로 무지개를 보고 싶으셨던 거야. 그러니까 아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겠지. 자기에게 남은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우리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기억 말고는 아무것도 없잖아. 사장한테 섭섭하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냐. 하고 싶었던 일에 한번쯤은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졌어.(227)"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 건데, 지구상에서 가장 비행을 잘하는 생물이 잠자리래.
잠자리는 앞날개 두 장과 뒷날개 두 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네 장의 날개를 각각 따로 움직일 수 있다고 이재유가 설명했다. 그 덕분에 방향 전환은 물론 정지비행, 급선회, 급하강, 급상승, 상하좌우 이동, 심지어 후진 비행까지 가능하다는 추가 설명도 더해졌다.
더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날개를 접을 수 없는 곤충이 접을 수 있는 곤충보다 더 오래된 곤충이라는 거야. 날개를 접지 못하는 잠자리는 한 마디로 구닥다리라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접을 수 없는 날개로 접을 수 있는 날개보다 더 멋진 비행을 하는 걸까. 그게 진화의 결과래. 기존의 불완전함 위에 새로운 불완전함을 반복해 얹으며 세상에 적응하는 것, 그게 진화라는 거야.
이재유의 말은 세상 모든 게 불완전한 것들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우리의 삶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리셋하거나 회귀할 수 없다. 좋든 싫든 주어진 환경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삶이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아름다움은 그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문득 차장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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