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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탄에 삽니다
고은경 외 지음 / 공명 / 2022년 8월
평점 :
고은경, 이연지, 김휘래 님의 [우리는 부탄에 삽니다]를 읽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예전에는 그렇게 많이 출판되는 것 같던 여행기들이 자취를 감춰서 더 그런지 다른 나라에 대한 신간 정보에 더욱 눈길이 끌린다. 특히나 ‘부탄’이라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 부탄에 대한 정보라면 히말라야 부근에 있는 작은 나라,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행복지수가 엄청 높아 거의 1위에 랭크된 경제적인 지표는 낮지만 국민들이 행복함을 느끼는 나라라고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탄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다는 것 정도.
히밀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마디로 가서 정말 드럽게 고생을 하고 드럽게 지내다가 와야 하고 잘못하면 고산병에 걸려 고생만 하다가 온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그런데도 적은 비용이 아님에도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오를 수 있는 높이까지 트래킹을 다녀온 분들은 마치 중독된 것처럼 또 다시 히말라야 트래킹을 꿈꾸고 있었다. 남미에 다녀온 이들 또한 남아메리카의 상당수의 나라가 높은 지대에 형성된 곳이 많기에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뭔가 어질한 느낌이 들며 마추픽추 같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산병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하고 올라가기 전까지는 당최 누가 고산병에 약한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은 1,950미터이기에 고산병의 증세를 느껴보기란 불가능하다. 언젠가 방송인 알베르토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 중의 하나인 알프스를 가기 위해서 뭐하러 비싼 돈 들여 스위스를 가냐고 말한 적이 있다. 알프스는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치는 거대한 산맥이기에 스위스의 융푸라우와 인터라켄 같은 곳에 가고 싶다면 차라리 이탈리아 북부의 돌로미티를 가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토의 말이 맞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알프스 물가는 아마도 거의 두 배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는 상당히 커서 높은 지대에 오르는 코스가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다. 그런데 3,000미터 이상의 높은 지대를 물론 트래킹으로 오를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가 워낙에 잘 되어 있어서 두 번 정도 바꿔서 타게 되면 순식간에 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를 밟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8월을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낮의 더위와 뜨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돌로미티를 갔을 때에도 산을 오르기 전에는 35도 정도 되는 무더위가 한창이었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15도 정도가 되어 쌀쌀함이 느껴졌다. 공기는 얼마나 맑고 하늘은 얼마나 파란지 정말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 높은 고지에 관광객들을 위한 펍도 있어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티롤 지역의 소세지를 먹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러니 비싼 돈 주고 스위스를 갈 것이 아니라 돌로미티를 가자는 알베르토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함께 선배가 신이 나서 그런지 평소와 다르게 무척 업이 되어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신나게 뜀박질을 했다. 그런데 케이블카를 타자마자 선배형이 마치 고꾸라지듯이 맥을 못추며 잠이 들어버렸다. 지상으로 내려와 보니 아마도 알콜 기운과 뜀박질 때문에 고산병 증세가 살짝 온 것 같았다. 선배는 무척 신기한 경험을 한 것처럼 잠시 후에 멀정해졌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 대한 기억은 돌로미티의 추억이 유일한데, 부탄의 수도 팀푸는 2,400미터 고지에 있다니, 더군다나 도시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니 신비한 미지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부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세 명의 저자는 신기하게도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대표하고 있다. 부탄에 사는 우리나라 교민이 10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니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신기했을까. 그런데 막상 책에 삽입된 사진을 보면 부탄 사람들의 외모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너무 흡사하여 말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외국인인지 구별하기 힘들 것 같아 보인다. 아니 어째서 인도, 네팔 그 부근의 사람들은 우리와 확연히 다른 외모인데 부탄만이 그렇게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해주는 은경 님은 코이카 코디네이터로 부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미 제주에서도 유사한 일을 해왔기에 가능하겠지만 저자의 가족이 모두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해외봉사단원들이 다시 돌아가게 되고 결국은 사무실마저 철수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부탄의 문화적 특성을 살뜰히 전해주기에 부탄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왕성해지고 지구상에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과 습성을 지닌 국가가 존재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해주는 연지 님은 어찌보면 세 명의 저자 중에 가장 부탄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벌써 10년 째 부탄에서 살아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부탄 사람과 혼인하여 살고 있기에 저자가 전해주는 말은 외부인의 시선보다는 부타인들의 삶에 충분히 녹아들어간 부타인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특히나 불교국가로서 집집마다 정성스레 꾸민 제단을 갖고 있는 그들의 신실한 믿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나눔은 그들이 믿는 불교가 단지 종교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인본주의 사상에 흠뻑 젖어든 현대인들에게 인간이 이 모든 자연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만 같다. 부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채집과 식용의 권리가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심지어 파리 한 마리를 때려 죽이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연지 님의 남편 타시의 에피소드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경제적 빈국임에도 행복함을 누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 이야기를 전해주는 휘래 님은 세 저자 중에 가장 젊은 피로 부탄을 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부탄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부탄 정부의 일을 도와주는 유엔 상주조정관실에서 분석관으로 일하며 알게 된 내용을 어찌보면 세 명의 저자 중에 가장 객관적인 수치와 평가로 전해주고 있다. 부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해들은 것처럼 가장 행복한 나라가 맞는가? 부탄에는 우리와 비슷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해주며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부탄 유엔 사무실에서 만난 직장 동료들과의 이야기는 세상 어느 곳이나 일터에서 발생되는 갈등과 어려움은 비슷함을 전한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이들과의 산행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곳과는 뭔가 다른 따뜻함과 산뜻함이 느껴졌다면 그게 바로 부탄이 가진 힘이려나?
“무엇인가에 쫓기듯 무섭도록 속도가 빨라져버린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걸음을 유지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이곳을 특별하고 이상한 나라로 만들어버린 부탄에서,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220)”
“Don’t try to find yourself, just be you.
비슷하게, 나는 부탄에서 산을 오르면서 내가 조금 더 좋아졌다. 산을 잘 올라서가 아니라, 무엇을 더 잘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산을 잘 못 올라도,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이 아름다운 자연의 한 부분이 나라면, 그냥 그 자체로 충분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좋아하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바뀌는 산처럼, 나도 삶의 단계를 따라 자연스럽게 그냥 내 자신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