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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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의 [기울어진 미술관]을 읽었다. 부제는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이다. 얼마 전 뉴스 기사에 교권 추락에 대한 타이틀과 더불어 충격적인 사진이 하나 게시되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판서를 하는 도중에 학생 한 명이 교단 바닥에 누워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연결한 채 마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후 또 다시 등장한 기사에는 그 학생의 스마트폰을 포렌식 검사 한 결과 선생님을 촬영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수업 중에 교단 앞에서 학생이 대놓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이나, 또 그 학생의 스마트폰에 전문적인 포렌식 검사까지 적용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의 체벌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군대보다도 더 폭력적이었던 학창 시절을 어떻게 군말없이 버틴 것인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단체기합을 받고 줄빠타를 맞을 때면 이건 학생의 악습관을 선도하기 위한 체벌이 아니라 이 선생이 미치거나 어디선가 받은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거의 대다수가 반항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다. 


‘라떼는 말이야’가 유행어가 되면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 ‘라떼는’는 상대적인 평가로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어리고 젊은 세대를 보면 충분히 좋고 편안한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힘들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기성세대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썰을 푸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떼는’ 이야기를 듣는 젊은 세대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구’의 냉소를 퍼붓는다. 하지만 지금의 기성세대도 분명 앳된 시대를 보냈고 그들에게 ‘라떼는’을 시전한 올드세대가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다. 어쩌면 무한루프처럼 반복되는 ‘라떼는’이란 어려운 시절의 경험담은 세대를 연결하고 싶은 어설픈 시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수록 ‘라떼는’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좀 쿨하게 세태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같이 누리고 싶은데 자꾸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수많은 부조리와 불평등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분명하게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행복한 줄 알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5.25, 3.5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다니며 행여나 디스크에 담긴 파일이 뻥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때가 있었다. 메가에서 기가로 이제는 테라바이트 용량의 소형 드라이브가 일상화된 시대이니 정보를 공유하고 저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진 한 장도 쉽게 찍을 수 없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는 그림과 건축물을 통해서 오래전의 일상들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전세계의 미술관에 전시된 오래된 명화들은 너무나도 귀중히 보관되며 금전적 가치를 환산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작품들도 꽤 될 것이다. 미술에 대한 문외한이라도 몇몇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가 이름과 작품의 제목까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유명세와는 반대로 미술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책에 나온 그림들은 거의 상당수가 잘 알지 못하는 작품들이었지만 저자의 배경 설명과 화가들의 이야기가 곁들이지 않았다면 그 명화 속에 담긴 시대적 상황을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대단한 작품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사실 화가의 의도가 생각보다 옳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이해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명화를 그린 화가를 비판하고 평가절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화가의 명화 속에 담긴 인간과 자연과 세상에 대한 온갖 기울어지고 삐뚤어진 시선을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저자가 매 쳅터마다 강조한 것처럼 그림 속에 나타는 온갖 불합리와 불평등한 시선들은 과연 지금의 시대에는 얼마나 변화된 것인지 자성하는 시간을 갖게 만든다. 


“노년의 지혜란, 노년들은 긴 시간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니 삶이라는 여행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게 소중한 안내판 한두 개쯤은 전승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삶이라는 여행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묻고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싹튼다. 삶의 의미가 활용 가능한 자원이나 기술 등을 이용해 얻는 성공이나 부, 권력으로 환원되는 사회문화 맥락에서라면, 지금과 같은 기술 환경에서 노년들에게 청해 들을 지혜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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