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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평점 :
가와카미 데쓰야의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를 읽었다. 음악, 영화, 책은 공통적으로 그것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즐기고 누리게끔 해 준다는 것이다. 이는 감상하는 이에게 실질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1차원의 욕구를 넘어서는 2차원 이상의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문화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감상하는 이들에게 충족감을 주기 위한 창작자들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편이다. 소수의 히트작을 만는 이를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음악가와 영화 관련 종사자와 작가들은 때로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순수 창작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 가깝고 아끼는 이가 그러한 창작의 길을 직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대부분은 응원보다는 진심어린 걱정으로 염려하며 그가 큰 좌절을 겪지 않을까 우려할 것이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음원 사이트에서는 매일매일 신곡이 넘쳐나고 영화 또한 매 주일 새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며 서점에 가면 대체 누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책을 쓰는 것인지 신간 또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출판된다.
음악과 영화도 상당 부분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겠지만 책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된다.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음악과 영화를 설명해주고 짤막하게 요약해서 보여주는 경우도 많고 유튜브에서도 십분만에 두 시간짜리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감상할 수 있는 채널들이 많다. 하지만 가뭄에 콩나듯 책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 생겼다가도 얼마 안가서 없지기가 일쑤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책과 저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야 관심도 생기고 흥미가 유발될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작가는 유명한 소수에 불과하며 그 작가를 안다고 해도 실제로 그 작가의 저작 중에 읽은 것은 한 두 권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기란 여간해서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책은 음악과 영화와 비교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음악과 영화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미디어의 향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기 구독료를 내며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있다. 하지만 책은 그렇게 즐기기가 어렵다. 특히나 멀티태스킹과 인터넷 서칭에 길들여지게 되면 우리의 뇌 구조가 활자를 인식하여 생각하고 고뇌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몇 시간 동안 활자에 집중해서 책에 나온 내용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언젠가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있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응가가 마려워졌다. 처음 몇 번은 그냥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만 머물렀는데, 그런 현상이 몇 차례 반복되지 혹시 책장을 마주하면 그런 생체적인 반응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서점과 도서관에서 책에 쌓인 먼지와 책에서 나는 냄새가 배변활동을 왕성하게 만든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런 신기한 화학 반응이 생겨나는 이유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내 몸이 이상한게 아니라는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책을 고르다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곤 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굳어진 습관 중의 하나는 매일 아침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업데이트된 신간을 살펴보는 것이다. 마치 트랜드에 민감한 MZ 세대인 것처럼 마음에 드는 신간을 누구보다도 빨리 읽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온다. 그리고 MZ 세대가 힙한 장소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처럼, 나또한 신간을 빨리 읽어서 서평을 쓰고 업로드 하고 싶어하는 관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 서점보다 신간 판매가 늦는 오프라인 서점에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서점에 가더라도 대충 매대 위에 놓인 서점과 출판사가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주력하는 책들만 살펴보고 어딘가에 숨겨진 채 보석같은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책들을 고르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 나온 실제 모델인 고바야시 서점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독립서점이 늘어가고 있다. 제주도에 머물 때에는 소리소문 서점에 가끔 들르곤 했었는데, 일반 대형서점과는 다르게 베스트셀러와 메이저 출판사 위주가 아닌 평소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 메인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는 양식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기도 했다. 독립서점에 가면 마치 책을 좋아하더라도 편식해온 습관을 고치라고 종용받듯이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관을 펼치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럽기까지 했다. 가끔 독립서점에 가면 어떤 주인분은 가까이 다가와서 어떤 책을 고르냐고 묻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꺼려지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독립서점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비대면과 시니컬함을 대명사로 하는 차가운 현대사회에서 자신이 읽은 책을 자신있게 권하며 대면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마음은 지속되어야 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