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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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매일 매일 반복된다. 친구를 선택하기 위해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 심지어 만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좋아하는 연예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사람을 평가한다. 그럴 자격이 감히 있느냐는 반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 사람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짐작만 할 뿐 지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는 너무나도 정당한 것처럼 사람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러한 평판은 당사자가 없는 가운데 공공연하게 도마 위에 올라간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게 된 이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할 때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함께 일하게 된 그 사람에 대한 내 안의 데이터를 조심스럽게 재생시킨다. 그리고 내가 확인한 데이터가 맞는지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이에게 은연 중에 검증을 하게 된다. 비슷하거나 똑같은 견해가 나누어질 때 '역시 내가 잘못 본게 아니었어'라는 짐짓 우월감에 휩싸이다가도 '어째서 그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일까'란 교만함의 늪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뒷담화의 주인공인 그가 중대한 제재를 받게 될 경우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다'라는 혐오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은 정말 구제불능인 상태인 것일까? 변화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조차 없는 것일까? 


  예전과 다르게 '좀 아니다'라고 단정지었던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철이 좀 덜 든 것 같은 나이 때의 행동과 습관으로 그 사람의 한 평생을 단정지을 수 없다는 유연한 마음이 든 것인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시간을 애쓰며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혹은 나의 이해의 폭이 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는 이미 굳어진 모습으로 단정지어진 그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나 또한 그 사람에게 또 한 번의 기대를 품는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고 나니 우리가 의례히 생각해왔던 '시작-고통-찰나의 기쁨과 만족-성장'이라는 도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삶은 스토리가 아니라 실재이기 때문에 고통과 슬픔을 겪고도 반드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의 극적 반전도 없고 어떤 미지의 절대적 힘에 의해 구원받는 기막힌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너무나 지지부진하고 무력해서 도대체 이 이야기의 끝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이 될 뿐 단 하나의 조력자조차 없이 알몸을 아스팔트 바닥에 짖이기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우에게 도마뱀 용식이 어떤 의미인지, 채운에게 반려견 뭉치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십대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지우와 소리와 채운은 부모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이혼한 엄마가 뇌에 종양이 생겨 두통을 겪다가 실족사를 하고, 이른 나이에 중병에 걸려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사업 실패로 분노 조절이 불가한 아버지가 술에 취해 엄마와 아들을 흉기로 위협하다가 도리어 몸싸움 가운데 칼에 찔려 의식불명이 되었다가 죽음에 이르는 불행과 고통의 한 가운데에 세 명의 아이가 있다. 다행스럽게 지우에게는 이제는 아무 상관없는 관계이지만 함께 살게 된 것을 기뻐하는 엄마의 애인인 선호가, 소리에게는 모서리 공포증이 있지만 아내를 그리워하며 딸을 돌보는 호민이, 채운에게는 뭉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이모와 아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각자의 길을 가게 될지라도 엄마의 부탁을 잊지 말라며 죽은 남편의 의심이 사실이었음을 고백하는 엄마 태선이 있다. 


  이 세 아이는 인생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 앞에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만 결코 자기 자신을 망가트리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지우와 소리는 그림을 통해서 그리고 채운은 얼굴만 알고 있던 지우의 그림을 통해서 뜻밖의 위로를 얻게 된다. 지우가 보고 겪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연재한 만화는 비극적인 결말을 구상하지만 소리에게 맡긴 도마뱀 용식의 죽음으로 엄마의 애인 선호가 제안한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으로 인해 채운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이야기로 변화된다. 지우와 소리와 채운이 겪은 일은 일생에서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이 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 만화로 서로를 알게 된 세 아이의 내면적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로 알아채지 못할 미세한 움직임일지도. 하지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으로 인해 간절히 살고자 애쓰는 이들의 실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깜짝 놀라며 반기는 커다란 변화는 아닐지언정 스토리가 아닌 우리 삶에서는 이보다 더 큰 기적과도 같은 변화는 없지 않을까.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85)"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뺨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 여기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걸리는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우는 그 과정에서 겪을 실망과 모욕을 포함해 이 모든 걸 어딘가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뒤 저쪽 세계에서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와 용식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232-233)"


#김애란 #이중하나는거짓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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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1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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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여선 작가의 [푸르른 틈새]를 읽었다.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인물을 지칭할 때에는 대부분 높임말을 붙이지 않은 채 죽기까지의 직책이나 직업을 붙여 부르곤 한다. 직관적으로 가늠이 되지 않은 시간의 간격은 생사의 연도가 괄호안에 붙어 있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냥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산 인물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몇 백년 차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는데 몇 십년 아니 몇 년 차이는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싶다가도, 막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0년이란 꽤나 긴 차이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억지로라도 그 차이를 만들어내려고까지 한다. 


  주인공 손미옥이 살아간 시대는 1980년 대 군부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날마다 이어지고 전경들이 쏘아대던 최루탄이 매케한 연기를 자아내 눈과 코에서 쉴세없이 분비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격동의 시기였다. 당장이라도 전쟁 못지 않은 큰 사단이 날 것처럼 위태롭기도 했지만 보도블록의 돌을 깨어 손에 쥐고 있는 학생이나 방패와 곤봉을 쥐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전경은 사실 모두 앳띤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혈기 왕성한 열정과 몰입하고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그런식으로 해소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열렬했다. 


  미옥의 20대를 실패한 운동권 학생의 암울한 나날로만 바라본다면 이 소설은 무척이나 지루할 것이며, 도태되고 자학적인 나날을 술취한 채 소비하는 무력한 사상가의 하소연 쯤으로만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옥이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학생운동을 하며 그 중에 한 명과는 연애를 하다  이별을 감행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갑작스레 끼어드는 갓 사춘기를 맞이할 나이에 교감했던 친구들과의 회상과 미옥이 미워한 아버지를 꼭 닮게 만들어준 외가쪽 여자들의 일화는 젖은 반지하 방에서 30대를 맞이한 한 여성의 성장담만을 그려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미옥의 실패담인 운동권, 연애, 아버지의 죽음에 연이은 자살에 관련된 주변 인물들과의 사건과 미옥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회상의 기억들은 스스로를 평가해 온 비참함과 자기 혐오의 시간들이 오히려 언젠가는 그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희미한 틈새를 파고들어 올 것임을 확신하는 빛줄기를 만들어냈냈다. 


  생각해보면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부끄러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는 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때 좀 더 잘 참았더라면,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후회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자아비판의 시간을 갖게 만들고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에 따른 영예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없지 않을까, 내가 무슨 염치로 이런 호사를 누리는가'라는 결국 겉으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비겁한 혼자만의 단죄식을 거행하곤 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아마도 '사람들 다 그렇게 비슷하게 살아, 너만 그러는거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마'라는 손쉬운 위로를 건네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위로는 몇 잔의 취기로 얻게 되는 흐물흐물해지는 정의의 탑처럼 오히려 나 자신을 혐오하는 반작용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런지 짐캐리의 마스크처럼 아주 찰싹 들러붙어 엔간해서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깊은 가면을 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아주 거추장스러운 일을 발생시킬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 가면을 쓴 모습도 나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기대감이 샘솟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이터널션사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상처를 헤집게 만드는 기억들을 말끔히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오지만, [푸르른 틈새]의 미옥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온 몸으로 설득한다. 


  "나는 내일 이사를 떠난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처럼 내가 또 어떤 기다림의 간이역에서 다시금 내 삶을 향해 새로운 일별을 던질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언제이든 그때는 나는 이렇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기억의 화살을 향해 내 가슴을 과녁으로 내보이리라. 이런 생각만으로도 몸속의 푸르른 창이 열리고 그 틈새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하다.(308-309)"


  미옥은 지난 과거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악한 기억들이 화살처럼 내리 쏟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온 몸을 과녁으로 내보이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소낙비처럼 상처의 화살을 온 몸으로 감내해내낼 때 어딘가에는 반드시 빛이 들어오는 틈새가 열릴 것이라고 나를 응원한다. 


  "어떤 실패에 대한 실패인가. 미옥은 바로 살아 있음에 실패하는 데 실패한다. 이 글은 미옥이 이십대에 세 가지 실패를 겪었다고 말해왔지만, 소설이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 '실패'의 의미는 다시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 청춘에게 실패란 기대와는 다르게 성숙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번번이 초라하고 우스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거나 부인해왔던 자신의 초라하고우스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찢겨서 열림 틈새를 통해 과거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계속 바라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채로.(인아영 평론가 329)"


#권여선 #푸르른틈새 #문학동네 #문학동네한국문학전집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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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팝니다 - 다 아는데 왜 재밌을까 싶은 대한민국 영어 설명서(All The Korea You May Not See)
박재영 지음 / 난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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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작가의 [K를 팝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다 아는데 왜 재밌을까 싶은 대한민국 영어 설명서"이다. 언제부터인지 해외여행지가 정해지면 그 나라와 관련된 여행 책자를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을 가기 전에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과 더불어 여행 관련 책자를 보는 것 자체가 여행의 시작인 것처럼 설레이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행정보를 깨알같이 알려주는 여행지 설명이 지루하게 연속되는 책을 주로 살펴봤었다. 간단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했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끝까지 다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주로 우리나라의 여행전문작가라던지, 기행문과 같은 개인적 후기를 주로 살펴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방문한 나라 사람이 직접 쓴 여행기를 읽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근래에 서울의 번화가에 가면 외국인 여행객이 꽤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우리나라에 1년에 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류의 인기가 꽤 대단하다는 놀라움과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데도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쓴 외국인을 위한 영어로 쓰인 제대로 된 여행 안내서가 없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당연히 내가 해외를 갈 때 처음 접하는 천편일률적인 지역정보지와 같은 여행책자는 존재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저자의 우리나라 소개서이자 쉽게 접할 수 없는 깨알같은 개그가 접목된 주요한 정보들은 사진 한 장 게재되지 않았음에도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벽돌책처럼 600페이지가 넘는 두이지만 절반은 영어로 똑같은 내용을 번역한 것이기에 우리말로만 된 내용을 본다면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은 양이다.


사실 외국인이 영어로 번역된 내용을 읽는다면 그렇게 빨리 읽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가 예로 든 음식과 재료들을 검색하느라 아마도 시간이 배는 걸리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우리나라 사람이 읽게 되면 대부분의 내용은 아는 터라 술술 넘어가기는 하지만, 의외로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다수 등장하고 잘못 알고 있던 것도 꽤나 많았다. 외국인 안내가 아니더라도 짐짓 아는 척 뽐낼 수 있는 상식들도 많아서 더욱 흥미로웠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의 좋은 곳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을 알려주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가 한결 같겠지만, 국뽕에 젖어들지 말고 뼈아픈 역사의 사실 또한 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K팝과 K드라마와 K음식에 흥미를 갖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K콘텐츠의 범람과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박재영 #K를팝니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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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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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작가의 [동경]을 읽었다. 전작인 [나주에 대하여] 소설집에서 그랬듯이 김화진 작가는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타고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작고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라 그 감정을 느낀 자기 자신조차도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세밀함을 누구보다고 잘 캐치해서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을 이어가는 데 탁월한 묘사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심각한 갈등을 읽으키는 사건이 발생되지 않아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조금은 밋밋한 감이 없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심리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언젠가 나 또한 그런 감정의 상태였을 때를 저자가 적절히 설명해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름, 민아, 해든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연령대로 예상되며 나이 차이는 나지만 언니와 직장 선배라는 호칭에서 벗어나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직장 동료 이상의 관계를 꿈꾼다. 셋이 아니라 둘이었다면 다분히 퀴어적인 요소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일과 개인적 성향의 연관성과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데에서 오는 세밀한 내적 묘사는 성적 관계와는 무관한 인정과 애정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여자들의 우정과 남자들의 우정은 표면적으로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스킨십을 나누는 데 머뭇거림이 덜하고 특히나 상대가 극심한 슬픔과 고통에 처해 있을 때에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고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체온으로 위로해주고자 한다. 반면에 남자들은 그런 위로에 익숙하지 않다기보다는 과연 그런 위로가 도움이 될까 미리 부정적으로 단정짓는 것 같다.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다음 기회가 와도 선뜻 따뜻이 안아주지 못한다. 이건 생물학적 기질의 차이일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에 대한 무의식적인 학습의 결과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름과 민아와 해든의 관계처럼 남자들도 똑같이 직장 상사이자 선배인 누군가가 내게 일을 가르쳐 주었을 때때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다른 누군가를 더 예뻐하면 질투가 난다. 아름처럼 매사에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남자도, 민아처럼 사업을 잘 이끌어가며 믿을만한 직원인 아름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에 익숙한 남자도, 해든처럼 아빠에 대한 상처로 부서지고 페허가 된 곳만을 찾아다니는 겉으로만 쿨녀 같은 남자도 있다. 결국 아름과 민아와 해든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특정한 성에 대한 우정의 묘사가 아니라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인간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름과 민아와 해든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채 어쩌면 유년시절에 만난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 일로 만난 사이이기에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워지고 헤어지게 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게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 알려준다. 작가가 세 명의 주인공의 마음 속에 들어가 서로에 대한 생각을 독자들에게만 알려주듯이 어쩌면 우리 삶의 모습을 무던히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커져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된다 하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실패와 성공의 유무를 떠나 조금은 용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그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하고 분노도 표출하고 뒷담화도 하며 나의 감정을 풀어놓으며 응원을 요청할 때 우리는 관계가 어그러저도 다시금 살 수 있는 힘이 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셋은 일로서만 만날 수 없고 사는 곳도 다 떨어져 있기에 함께 달리기를 하기로 약속한다. 셋이 모여서 달릴 때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 같은 시간에 혼자라도 달리기를 멈추지 말 것. 전력질주를 30초 밖에 못하겠다는 아름의 메시지에 연속된 'ㅋㅋㅋㅋㅋ'와 '저질'이라는 짧은 답장이 아름에게는 혼자임에도 웃을 수 있고 달리기가 아닌 이유로 가슴벅찼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친구를 선배를 동료를 만나기를 꿈꾼다. 


"아무래도 슬픔은 고체다. 내가 제일 많이 떠올리는 형태는 어릴 적 봤던 바이올린 활에 바르는 송진덩어리다. 슬픔은 마음 한구석에 송진 같은 고체 형태로 존재하다가 어떤 녹는점에서 녹아 흐른다. 액체가 되어 온몸으로 퍼지기도 하고 자칫하면 눈물이 되어 쏟아지기도 한다. 슬픔의 녹는점은 누군가의 한마디나 체온, 혹은 해질녘의 버스 정류장이나 혼자 멍하니 보내는 주말의 긴긴 낮일 수도 있다.(66-67)"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불완전함과 불확실함, 배제되는 느낌을 견디는 일을 의미한다.(모아 사너, 어른 이후의 어른) 그것은 아름이 품어온 마음 그대로였다. 어른이 되는 시간은 그런 걸로 잔뜩 채워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다리는 시간. 견디는 마음. 참는 눈빛. 삼키는 말. 모르는 척하는 시선. 아는 척하지 않고, 상대가 준 것까지만 받고, 상대가 모르게 더 받았어도 고마움을 견디고, 다른 것을 내밀고, 마침내 주고받고, 또다른 우리가 된다. 또다시, 또다시 생각하며. 그렇게 이어져오는 관계의 시간이 있었다.(196)"


#김화진 #동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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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김진욱 옮김, 무라카미 요코 사진 / 문학사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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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읽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거의 다 빠짐없이 읽고 소장하고 있는데, 간혹 이렇게 에세이는 아직도 읽어야 할 책들이 몇 권 남아 있었다. 어차피 원고의 내용은 같을 테지만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개정판이 나오면 책을 팔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겉표지나 디자인 같은 것들마저 유행과 감각이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옷을 입은 개정판은 마치 최신작처럼 산뜻하게 다가오고 이미 절판된 책의 표지는 왠지 모르게 구리다. ㅋㅋ


무라카미 하루키를 최애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생각하면서도 '소확행'이라는 줄임말의 유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386세대에서 X세대로 그리고 지금의 MZ세대로 시간은 흘러가며 행복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생겨났다. 근래에 유행어처럼 번진 '소확행'이라는 말에는 기성 세대의 성공에 대한 무리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 치면, 하루키는 나이로 따지면 지금은 할아버지 연배이지만 이 책을 쓴 시기가 무려 30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어쩌면 일본의 거품 경제가 사그러들기 시작하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은연 중에 알려주고 싶은 하루키의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거나 이번 에세이를 쓸 당시의 하루키는 꽤나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 같은 느낌이 팍팍 다가온다. 그리고 간간히 전해주듯이 캠브리지에 머무는 동안 태엽 감는 새 장편의 초고를 끝내며 무엇을 했는지,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담백하게 전해주어 더욱 좋았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며 다 알고 있듯이 하루키는 굉장히 성실한 작가이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보통 사람들이 대작을 쓰는 작가라 하면 의례히 엄청나게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나 밤낮이 바뀐 생활패턴 또는 헤비스모커나 알코릭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다. 인간의 내부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자기 학대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빈정거림도 담겨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젊을 때가 아니고서는 그런 악습관을 가지고 하루키처럼 많은 책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온 몸을 굴리는 육체 노동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장시간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70대를 넘긴 하루키가 500페이지에 달하는 신작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건강 관리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인지 알 수 있는 지표이다. 


이번 책에서 보스톤 마라톤을 완주한 내용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달리기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42,195km를 달린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마라톤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접하게 되면 그 긴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발이 부어서 런닝화는 평소보다 큰 사이즈를 신어야 한다거나 남자의 경우 맨 몸에 셔츠만 입고 달리게 되면 꼭지 부분이 헐게 되는 아픔도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키는 어떤 중요한 예식을 치루는 것처럼 마라톤을 준비하고 즐긴다. 부서질 것 같은 극한의 육체적 소모를 겪은 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처럼 행복한 게 없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 삶에서 진짜 행복은 그 누가 억지로 가져다 줄 수 없는 영역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여느 하루키의 에세이보다 아내와의 일화도 많이 등장해서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내용은 하루키의 자동차를 누가 훔쳐간 부분이었다. 그야 당연히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아마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하루키가 머물렀던 마을에서는 좀처럼 없던 일이기에 이웃들도 많이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도난된 차량은 바퀴가 다 빠진 채 휠도 망가진 상태이고, 보험사 직원은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리기도 당당하니 그야말로 빡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나 싶었다. 외국에 살다보면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의 언어 실력을 한탄하게 된다. 그 어이없는 보험사 직원이 인종차별을 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무능력한 건지, 하루키의 영어 실력이 확실히 따질 정도에서 조금 모자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럴 때는 정말 모국어로 성질을 부리지 못하는 게 서럽기만 하다. 내가 잘하는 모국어로 대차게 쌍욕을 퍼부어야 속이 시원할텐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번 등장하는 이웃집 고양이 고타로 또는 제임스에 대한 이야기는 하루키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계기였다. 그냥 길고양이인줄 알았던 제임스는 같은 집의 또 다른 세입자가 키우는 고양이었고 한 동안 고타로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되었던 하루키가 집 주인에게 물어보자 다른 세입자가 이사가면서 데리고 갔다는 말에 놀라는 장면 또한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하루키가 아주 오래전에 결혼하기 전부터 키웠던 고양이에 대한 소회는 마치 한 편의 아주 짧은 소설 같았다. 그런 경험을 누구나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정말 소설가로서의 삶이 하루키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되는 고양이와의 영험한 추억담이었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일상 속에서 내가 잘하는 것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서 많고 긴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재미있고 유쾌한 에피소드로 엮어낸 저자의 탁월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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