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틈새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1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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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여선 작가의 [푸르른 틈새]를 읽었다.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인물을 지칭할 때에는 대부분 높임말을 붙이지 않은 채 죽기까지의 직책이나 직업을 붙여 부르곤 한다. 직관적으로 가늠이 되지 않은 시간의 간격은 생사의 연도가 괄호안에 붙어 있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냥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산 인물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몇 백년 차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는데 몇 십년 아니 몇 년 차이는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싶다가도, 막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0년이란 꽤나 긴 차이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억지로라도 그 차이를 만들어내려고까지 한다. 


  주인공 손미옥이 살아간 시대는 1980년 대 군부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날마다 이어지고 전경들이 쏘아대던 최루탄이 매케한 연기를 자아내 눈과 코에서 쉴세없이 분비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격동의 시기였다. 당장이라도 전쟁 못지 않은 큰 사단이 날 것처럼 위태롭기도 했지만 보도블록의 돌을 깨어 손에 쥐고 있는 학생이나 방패와 곤봉을 쥐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전경은 사실 모두 앳띤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혈기 왕성한 열정과 몰입하고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그런식으로 해소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열렬했다. 


  미옥의 20대를 실패한 운동권 학생의 암울한 나날로만 바라본다면 이 소설은 무척이나 지루할 것이며, 도태되고 자학적인 나날을 술취한 채 소비하는 무력한 사상가의 하소연 쯤으로만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옥이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학생운동을 하며 그 중에 한 명과는 연애를 하다  이별을 감행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갑작스레 끼어드는 갓 사춘기를 맞이할 나이에 교감했던 친구들과의 회상과 미옥이 미워한 아버지를 꼭 닮게 만들어준 외가쪽 여자들의 일화는 젖은 반지하 방에서 30대를 맞이한 한 여성의 성장담만을 그려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미옥의 실패담인 운동권, 연애, 아버지의 죽음에 연이은 자살에 관련된 주변 인물들과의 사건과 미옥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회상의 기억들은 스스로를 평가해 온 비참함과 자기 혐오의 시간들이 오히려 언젠가는 그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희미한 틈새를 파고들어 올 것임을 확신하는 빛줄기를 만들어냈냈다. 


  생각해보면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부끄러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는 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때 좀 더 잘 참았더라면,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후회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자아비판의 시간을 갖게 만들고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에 따른 영예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없지 않을까, 내가 무슨 염치로 이런 호사를 누리는가'라는 결국 겉으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비겁한 혼자만의 단죄식을 거행하곤 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아마도 '사람들 다 그렇게 비슷하게 살아, 너만 그러는거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마'라는 손쉬운 위로를 건네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위로는 몇 잔의 취기로 얻게 되는 흐물흐물해지는 정의의 탑처럼 오히려 나 자신을 혐오하는 반작용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런지 짐캐리의 마스크처럼 아주 찰싹 들러붙어 엔간해서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깊은 가면을 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아주 거추장스러운 일을 발생시킬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 가면을 쓴 모습도 나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기대감이 샘솟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이터널션사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상처를 헤집게 만드는 기억들을 말끔히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오지만, [푸르른 틈새]의 미옥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온 몸으로 설득한다. 


  "나는 내일 이사를 떠난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처럼 내가 또 어떤 기다림의 간이역에서 다시금 내 삶을 향해 새로운 일별을 던질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언제이든 그때는 나는 이렇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기억의 화살을 향해 내 가슴을 과녁으로 내보이리라. 이런 생각만으로도 몸속의 푸르른 창이 열리고 그 틈새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하다.(308-309)"


  미옥은 지난 과거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악한 기억들이 화살처럼 내리 쏟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온 몸을 과녁으로 내보이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소낙비처럼 상처의 화살을 온 몸으로 감내해내낼 때 어딘가에는 반드시 빛이 들어오는 틈새가 열릴 것이라고 나를 응원한다. 


  "어떤 실패에 대한 실패인가. 미옥은 바로 살아 있음에 실패하는 데 실패한다. 이 글은 미옥이 이십대에 세 가지 실패를 겪었다고 말해왔지만, 소설이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 '실패'의 의미는 다시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 청춘에게 실패란 기대와는 다르게 성숙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번번이 초라하고 우스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거나 부인해왔던 자신의 초라하고우스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찢겨서 열림 틈새를 통해 과거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계속 바라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채로.(인아영 평론가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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