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일지도 몰라 - 배우 최희서의 진화하는 마음
최희서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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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서 배우의 산문집 [기적일지도 몰라]를 읽었다. 부제는 "배우 최희서의 진화하는 마음"이다. 저자의 책이 나온지도 몰랐었는데, 얼마 전 김소영 작가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의 감상과 인용된 구절을 읽고 접하게 되었다.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나 많이 있지만 이렇게 누군가 먼저 읽고 가이드를 해주니 너무 좋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분은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분명 작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내용이 좋았다. 많은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고 특히나 영화 [박열]의 일본 상영 후 관객들과의 만남에 대한 내용은 덩달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배우로서의 출발과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연극의 연출과 배역과 영화의 단역을 거쳐 주연에 캐스팅 되기까지의 여정과 더불어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자신에 대하여 솔직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배우와 같은 연예인들의 책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더불어 에세이, 산문집을 출판하는 유명인들 또한 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책은 읽고 나면 그냥 어느 유명인의 성공담을 본 것 것에 그칠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산문집이지만 한 인간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여정 중간에 주인공이 내뱉는 한계에 다다른 독백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나와 동떨어진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있던 곳에 나보다 먼저 혹은 조금 뒤늦게 머물렀던 이의 고백에 서서히 젖어들어가게 했다. 


포털 사이트의 연예란에 올라오는 잊혀진 연예인의 생활고나 어려운 사정 등에 대한 뉴스에 흔히 ㅏ람들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고, 그들이 아무리 어려워도 일반 사람들보다 형편이 나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 그렇게 유명이 된 사람은 일반 사람들과 계층이 달라진 계급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배우이자 유명인이라는 생각이 앞서지 않았다. 그저 연극과 영화를 사랑하고 어느 배역을 맡게 되면 극중 인물의 삶을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지 부단히 온 몸을 다해 노력하는 한 인간의 모습만 보였다. '이러 이러한 역경을 딛고 운 좋게 따낸 배역이 대박이 나서 월드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꿈을 쫓기 위해 포기하지 말고 달려갑시다'라는 상투적인 스토리가 없다. 그녀에게 닥친 행운과 우연이 좋은 기회를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행운과 우연을 통해서 영화란 결과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 만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나 영화 [아워바디]를 찍는 과정에 대한 내용 중에 7년이란 시간 동안 시험에 낙방하여 좌절감에 빠진 주인공이 우연히 달리는 사람을 발견하고 따라서 뛰게 되는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어려움을 토로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일정부분 타고난 끼가 있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내가 전혀 살아보지 않았던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애써 헤아려보려 한 들 가족의 짐이 된 듯한 열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용돈을 받지 않고서는 생활이 불가능한 고시생의 헛헛한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주인공이 시험 낙방으로 좌절의 늪에 빠진 것이 아니라 무작정 달리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그리고 저자가 가장 어려워했던 대목으로 묘사된 남산을 뛰어 오르다 숨이 차올라 헉헉 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11차례나 다시 촬영하며 지문에 설명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지만 아쉽게 이전에 촬영된 컷으로 편집되었음을 소상히 알려준다. 자신 때문에 연장된 촬영 시간과 자기만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스태프들의 시선의 압박을 이겨내고 11테이크 만에 토할듯이 숨을 내쉬며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원하는 장면을 얻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 가장 빼어난 이 구절이 탄생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 왜 달릴까.

나는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나는 내 자신을 오늘도 단련하고 있는가.

그 단련의 끝이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보잘것없는 내 모습을, 그 진실된 내 모습을, 나는 감당하고 있는가.(218-219)"


[아워바디]의 주인공처럼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이들을 모두 실패자와 낙오자로 부를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삶의 의미를 가진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무슨 방법을 다 동원해도 우리 삶에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 아무리 달려도 가닿을 수 없는 결승선을 바라봐야만 할 때 그럼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한계를 가진 나 자신을 단련하고 그 나약한 나를 감당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단련하고 감당해 낼 때 저자의 말처럼 아주 조금씩 조금씩 기적의 날과 순간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모든 성장과 변화에는 모슨과 불편함이 따른다. 가끔은 그 불편함 따위 모르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빗방울에 체육복이 젖어서 팔뚝에 달라붙어도 아랑곳하지 않던 시절이. 불편함이 아무렇지도 않던. 아니, 그저 노느라 비도 햇살도 바람도 변하는 계절도, 그 어떤 것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던 무구하던 시절이.(62)"


"들여다보고 싶어도 영영 볼 수 없을 뿌리에 막걸리를 콸콸 붓는다. 삽을 들어 두세 줌의 흙을 뿌린 후, 토닥토닥 삽 머리로 보듬는다. 무럭무럭 자라라. 가끔 떠올릴 거야, 어두운 곳에서 홀로 버티는 힘에 대해서. 

어둠은 차고 바람은 억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는 지금도 버티고 서 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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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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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사인스 보르고의 [스페인 여자의 딸]을 읽었다. 다큐멘터리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남미의 특이하고 고유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자주 접하곤 했다. 그곳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지만 남미를 여행지로 택하기에는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너무 멀고 불안정한 치안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특히나 마약과 마피아에 얽힌 영화를 보게 되면 그러한 두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남미의 문학을 접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처음 읽는 베네수엘라 작가의 소설을 통해 뉴스를 통해서만 들어왔던 그곳의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따름이다.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너무 먼 사람들의 고통받는 이야기는 즉각적인 공감을 자아내기 힘든 것 같다. 특히나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그냥 혀를 차는 정도의 안타까움만 자아낼 뿐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렇게 소설을 통해 나와 동시대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떻게 지옥같은 나날들을 버티고 있는지 몰입해보는 시간은 공감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요즘처럼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개인주의의 시대에 타인에 대한 생각과 배려를 마땅히 받아들이는 내면의 여유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에, 억지로라도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머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 이웃의 고통도 외면하는 매몰찬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1980년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배경으로 주인공 아델라이다 팔콘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베네수엘라가 전세계 원유 매장량 1위로 엄청난 부를 양산해 낼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독재 정권의 무분별한 정책과 인센티브 남발로 엄청난 하이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아주 간단한 생필품조차도 몇 뭉치의 돈다발을 지불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상황이 극심해졌을 때에는 아예 지폐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해 물물교환과 같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달러나 유로와 같은 해외 화폐를 통해서만 몇배에서 몇십배의 가격 상승에 이른 생필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지옥불이 펼쳐진게 아닌가 싶다.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가 비유적으로 지명한 혁명의 아이들과 보안관과 같은 부류의 등장은 당시의 국민들이 아무런 공권력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한당 같은 무리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팔콘이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귀하게 여기던 스페인 산 식기를 쓰다듬으며 해가 진 이후에 거리에 나서는 행위는 거의 '나를 잡아잡수셔'와 같은 위험천만한 일임을 묘사한다. 밤이 되면 들려오는 총소리와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더불어 끊이지 않고 스며들어오는 최루탄 가스 냄새와 불에 탄 냄새는 어머니를 잃고 애도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팔콘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보안관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무리들이 그녀의 집을 버젓이 불법점거하고 있다. 그들에게 린치를 당한 팔콘은 이웃 사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항거하려다 우연히 옆 집에 살던 아우로라 페랄타의 문을 열어보게 된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우로라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아델라이다는 그곳에서 보안관 무리의 동태를 살핀다. 아우로라의 시신을 옮기려다 포기하고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은 손에 땀이 흥건해지는 긴장감을 자아내며 도대체 시신을 그렇게 밖으로 내던지는데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광란의 상황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상에 떨어진 아우로라의 시신을 불에 태우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아델라이다는 극적으로 상황을 마무리하지만 그곳에서 친구 아나의 동생 산티아고를 만나게 되고 정부에 끌려갔던 산티아고는 모진 고문을 받았던 이야기를 젆해준다. 


산티아고와의 함께 머무는 동안 아델라이다는 아우로라의 방에 남겨진 앨범과 서류를 통해 자신이 이 불구덩이 같은 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이한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스페인 여자의 딸이라 불리던 아우로라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멀쩡했던 시기에 많은 유럽이민자들이 몰려왔고 아우로아의 어머니 또한 그렇게 카라카스에서 식당을 열어 스페인 음식과 베네수엘라 음식을 만들며 자리잡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아우로라가 어떻게 사망한 것인지 나오지 않는다. 열살 차이가 나지만 아델라이다는 아우로라의 신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아주 오래전에 방문하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마주하지 못한 마드리드의 친척들과 연락을 취해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고자 한다. 여권을 만들고 서류를 조작하는데 꽤 많은 돈을 쓰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한 아델라이다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묘지를 찾아간다. 대체 얼마나 열악하고 질서가 무너진 것인지 도둑이 도둑의 것을 훔치고 강도가 강도의 것을 빼앗는 상황이니, 묘지를 파헤쳐 시신과 함께 묻어둔 것을 훔치고 비석에 새겨진 것마저 떼어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설마했던 일을 눈으로 확인한 아델라이다는 비참한 슬픔에 젖어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여자와 아이들 같이 약자를 유독 심하게 검문하는 이들은 오히려 코카인을 배달하는 이들이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고 뒷돈을 바라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러가지 질문으로 긴장감에 휩싸인 아델라이다는 스페인 여권을 보여주고 검문하는 이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도와주어 가까스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출발을 앞두고 아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산티아고가 마약을 소지한 채 총에 맞아 숨졌다는 비보를 전하며 끊긴다.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는 통화는 아델라이다와 베네수엘라의 연결점이 끊기고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린다. 아델라이다가 아우로라의 시신을 유기하고 불에 태우고 신분증을 위조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아델라이다가 처한 상황이라면 그녀의 선택이 과연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불한당에게 점령당하고 언제 어디서 폭행당할지, 가진 것을 다 빼앗길지, 혹은 팔려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발견했다면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아델라이다가 아우로라의 집에서 유로를 찾는 순간부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여권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엑스레이 검사를 하겠다는 말에 절대로 걸리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는 어느 독자라도 아델라이다를 응원하고 지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다는 것, 아직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자 죄책감이라는 이빨로 나를 물어뜯는 기적, 생존한다는 것은 도망치는 사람과 동행하는 공포의 일부이다. 누군가 당신보다 더 살 가치가 있었음을 알려주겠다고, 우리가 건강할 때 무너뜨릴 틈을 노리는 해충이다.(31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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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김성호 지음 / 포르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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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기자의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이다. 아주 오래 전의 옛날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인터넷이 요즘처럼 상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종이 신문을 읽는 것이 지성인의 필수요건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논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당일 신문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를 논평한 사설을 읽는 것을 권장시켰다. 지금도 한자가 게재된 지면 신문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한자를 모르면 신문을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겨례 신문의 사설을 읽을 때면 무척이나 반갑고 편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조사를 제외한 거의 중요한 단어들은 거의 다 한자로 병기했기에 옥편을 옆에 두지 않고는 사설을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주제를 어렵게 서술한 깨알같은 글을 읽기 싫었는데 한자까지 찾아야 하니 그야말로 양도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소요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저자가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인터넷의 발달로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이들이 대다수이다니 보니, 지면으로 된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희박해졌다. 예전에는 신문사에서 정한 순서에 따라 그날의 쟁점의 우선 순위가 정해졌다면, 이제는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이가 눈에 띄는 것을 클릭한 순서에 따라 중요도가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때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 순위가 항상 메인 화면에 떠 있을 때에는 상위에 올라간 주제가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어도 기하급수적으로 관심도가 올라가 버렸다. 지면으로 된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읽는 사람이 적었던 것처럼, 인터넷을 통한 뉴스 접속은 더욱 산발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다보니 대체 뭐가 중요한 뉴스인지, 오늘 내가 읽은 기사가 정말로 정확하고 신뢰한 만한 것인지 의구심이 커져만 갔다. 


지면으로 된 신문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때에는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같은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어느 한 쪽의 의견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보다는 왜 이렇게 상반된 시각이 나온 것인지 견주어 볼 수 있었고, 독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신문사들은 좀 더 완성되고 수준 높은 기사를 게재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한 기사가 어느 신문사에 속한 기자의 기사인지 확인하지 않는다. 가끔 오타가 심하거나(심지어 머릿말에서도) 비문을 접하게 되면,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지 의심이 들어 댓글을 확인해본다. 그런 여지없이 그 글을 쓴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안 좋은 말들이 뒤를 잇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런 오타와 비문들은 수정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의아했는데 저자의 책을 읽고 나서야 지금처럼 변질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행간에 떠도는 말에 이제는 정규 방송의 뉴스나 신문보다는 유튜브를 봐야 제대로 된 뉴스를 보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유튜버의 실력과 노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과 동시에 회사처럼 정식으로 구성된 방송사와 신문사가 제대로 된 취재와 기사작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오늘도 몇 번이나 클릭했던 기사의 내용을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인지, 이 기사는 또 어디에서 우라까이를 한 것일까란 의심부터 들었다. 어차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기에 많은 품을 들일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요즘 시대의 소모품처럼 소비되는 행태를 더욱 자극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분명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기사를 옳곧은 마음으로 쓰려는 분들이 있기에 기레기라는 말이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의 글을 읽고 우리나라 언론사의 심각한 병폐와 저널리즘의 의식이 희박해져가는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지만, 저자가 취재한 과거의 사건들을 읽다보니 소수와 약자들의 사연을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저자의 말처럼 사회적으로 이목을 집중할 거대한 사건이 아닌 경우에 사람들의 시선은 금방 사그러들고 피해자들은 홀로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게 된다. 그들의 고독한 싸움과 투쟁은 그들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님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자신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그들의 투쟁을 손쉽게 말한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해진 삶이라고 하지만 거대하고 복잡해진 사회 구조 속에서 비참함과 무력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되' 혹은 '그건 난 모르겠고' 라는 냉소적인 시선은 소외된 사람들을 패배감에 빠지도록 만들어 결국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마음은 자긍심을 놓치 않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의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렇게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으니 그대로 주저앉지 말라는 마음이 이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고 있다. 


"세상엔 억울함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매일 아침 메일함을 열 때마다 확인하는 제보들 중에서도 그런 억울함이 적지 않았지요. 억울함이란 위험한 감정입니다. 스스로 보기엔 부당한데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그래서 해소할 수 없게 된 감정이 묵어서 억울함이 됩니다.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 억울함은 점점 단단해지다가 뜨거워집니다. 따로 해소할 방도가 없으니 파괴적으로 분출되기 쉽습니다. 상대를 부수지 못하면 나를 부수고, 끝내 가슴에 한으로 남아 스스로를 갉아먹습니다. 해소되지 못한 억울함이 떠다니는 세상, 그런 세상은 대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요. 

기자는 남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일입니다. 언제나 풀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귀를 기울이고 함께 돌을 던질 수는 있지요. 그런 직업이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차가운 세상에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직업이란 얼마나 귀한가요.(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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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한은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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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작가의 [거짓말]을 읽었다. 제20회 한겨례문학상 수상작이다. 작년에 [레이디 맥도날드]를 읽고 너무 큰 감동을 받고 저자의 왕팬이 되었는데, 2015년에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 나와서 기대를 안고 읽게 되었다. [레이디 맥도날드]에서도 느꼈지만 이번 [거짓말]에서도 독특하게 다가온 것은 인간에 대한 작가만의 시니컬한 시선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중요한 핵심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한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 것 같은, 나라면 도저히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기구한 운명에 처한 이들을 쉽게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삶을 단정짓는 습관에서 벗어나 나와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은 한 객체로서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거짓말에 능수능란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최하석은 자살을 꿈꾸고 있다. 방과 후 학교에서 남학생과 알몸으로 교실 커튼을 떼어내 덮고 있다가 경비 아저씨에 발각되어 정학 처분을 받지만, 부유한 부모님의 학교 방문과 학교측의 선처로 정학은 근신으로 바뀐다. 하지만 하석은 근신을 받는 기간에 어이없는 반성문을 써내며 결국 스스로 자퇴를 결행한다. 자살과 자퇴라는 말에는 스스로 뭔가를 결정한다는 주체성이 담겨 있지만, 그러한 행위 이후에 벌어진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주변 인물들에게는 적지 않는 충격을 남길 수 밖에 없는 류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석은 그냥 사춘기 소녀의 반항이라고 보기에는 남다른 냉소적인 시각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이가 좀 많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형편이기에 엄마 미구 씨는 꽤나 세련되어 보인다. 그리고 여느 부모들과는 달리 미구 씨와 아빠는 하석의 일탈에 그다지 흥분하지 않고 되려 과도한 너그러움으로 자식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도록 한다. 


꽤 괜찮은 학교를 자퇴한 하석은 기숙사가 있는 새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집과는 다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온통 불합리함으로 가득한 이들과 마주하게 된다. 1990년대의 중고등학교가 다 엇비슷했듯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체벌이 난무하던 때였다. 선생님들은 마치 어디에서 단체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법을 배웠기라도 한 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체벌을 행사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시계를 풀고 본격적으로 때리겠다는 작정을 과시하듯 마대 자루가 부러지면 제 분에 못이겨 눈앞에 놓인 손에 잡히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며 너무나도 이상한게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님과 대신 1시간 이상 잔소리를 퍼붓는 선생님 중에 선택을 하라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차라리 맞고 말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석이 다니기 시작한 새 학교도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법인가란 반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규율들이 많았다. 1시간 이상 지속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라든지, 국민 체조와 별다르지 않는 무용 체조를 만들어 그 앞에서 지휘를 하는 선생님이라든지, 남자와 여자 기숙사의 중간에 철문을 만들고 잠궈 사감 선생님이 철저히 감독하고 있다든지, 우등반과 열등반을 나누고 성적순으로 방 배정을 한다든지, 결정적으로 여학생 반에서는 순한 양처럼 수업을 하던 국어 선생님이 남학생 반에서는 책상을 집어 던지는 괴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에서 진부한 체벌 스토리가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하석이 학교를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니스 공이 반복적으로 땅을 튕기며 내는 소리를 듣고 심리적 안정을 취하던 하석은 남 기숙사 학생들이 놓고 간 열쇠로 금지된 구역에 머물게 된 것이 발각되고, 다른 학생들에게 응근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소설 속에 묘사된 하석의 행동은 그 나이대 답지 않은 강철 멘탈을 지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하석의 기이한 행동들은 어차피 자신이 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체념에서 기인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석이 자살을 동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유분방해 보인 엄마 미구 씨와 아빠의 고백으로 반전에 이르게 된다. 엄마와 아빠의 고백 이전에 하석에게는 죽은 언니가 있다는 내용이 간간히 나오는데, 어떻게 죽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미구 씨와 아빠는 천천히 하석이 언니라고 알고 있는 재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석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언니라고 알고 있었던 재인이 실제로는 자살시도와 3번의 가출 끝에 하석을 인큐베이터에 놔두고 미구 씨와 아빠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완벽한 딸에 가까웠던 재인이 갑자기 어느 날 대체 왜 가출을 하고 부산의 여관 방에서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깨어난 재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얼마 후 다시 가출을 하고 하석을 낳게 된다. 간난쟁이 하석을 남겨 둔 채 재인은 또 다시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구 씨와 아빠는 하석을 자기들의 딸로 키울 것을 다짐하고 하석이 성인이 되면 모든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하석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왜 그렇게 자살을 동경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 생각에 빠진다. 언니가 아닌 엄마 재인의 피를 받아 자신의 DNA에도 20살 이전에 죽고 싶은 마음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다. 


그나마 하석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마음껏 터놓을 수 있었던 PC통신에서 프로작이라는 대화명을 가진 친구를 만나게 되고, 하석은 쥴이라는 이름으로 프로작에게 자살을 감행하기 전에 스스로를 망가뜨릴 계획을 알려준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즉흥적인 거짓말에 능한 쥴 마저 프로작을 대면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단정으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쥴은 프로작이 누군지 모른 채 물빛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안 좋은 소문으로 유명한 남학생인 프로작을 마주하게 된다. 프로작은 쥴의 이야기를 통해서 쥴이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게 된다. 프로작의 등장에 하석은 화들짝 놀라지만 이내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살 하고자 하는 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일까? 프로작은 하석의 말 중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담겨 있는지 눈치 챘을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진짜야라는 말로 확인하지 않는다. 하석의 계획을 방해하지도 모함하지도 않고 그저 하석이 자신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기차를 타고 하석이 상상해온 작은 꽃병이 놓인 식당칸에서 프로작과 마주하지만 그동안 막연히 계획해 온 여러가지 자살의 방법을 실현할 수는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석의 엄마 재인이 그랬던 것처럼 호연히 사라지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에게 이유를 찾고 싶어한다. 대체 왜 그런 거냐고? 뭐가 문제냐고 답을 알려달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재인의 사라짐에 대한 이유가 소설에서 나오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그 이유를 결코 알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석의 거짓말을 용납하고 경청하며 지켜봐 준 미구 씨와 아빠와 영재 씨와 프로작처럼 그냥 그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누군가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 준다면 그들의 거짓말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동아줄이 되지 않을까!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게 무섭다. 왜? 대학에 가고 싶지 않으니까. 왜? 어떤 과에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니까. 왜? 뭐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니까. 왜? 무얼 바라는지 모르니까. 왜?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모르니까. 왜?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니까. 왜?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왜?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왜? 무서우니까.

그래서 집을 나간다. 왜?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할 수 밖에.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들을 만난다. 그련들에게는 꿈이 있다. 무엇? 여고생이 되는 것. 그다음에는 여대생이 되는 것. 혹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집안을 위해 보탬이 되는 것.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소녀들은 언니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언니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고, 가난에서 벗어날 필요도 없고, 집안을 위해 뭔가를 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사회를 위해? 그것도 아니다. 언니는 혼자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언니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다. 학교생활이 숨 막혀서 도망쳤는데, 자신이 도망쳐버린 학교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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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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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를 읽었다. 벌써 5년 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저자의 첫 번째 책인 [진작 할 걸 그랬어]를 읽고 독후감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첫 번째 리뷰는 저자의 남편인 오상진 아나운서의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연히 TV에 나온 두 분의 모습을 보면 괜히 반갑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도 든다. 처음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아주 짧게 감상을 남겼었다. 매번 책을 읽고 나서도 얼마 후면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뭔가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하루 일과 중 아주 중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독후감을 쓰지 않고는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강박까지 생긴 것은 아닌지 부작용이 의심되지만, 어차피 한 평생 뭔가를 써야 하기에 독후감은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뭐 검사 받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제출할 것도 아니니 맘편히 쓰기만 하면 되어서 좋다. 


전작을 읽었을 때도 아나운서의 모습만 생각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었는데, 그 당시 저자가 책방을 내는 준비를 하며 쓴 내용들이라 더욱 호기심을 유발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자가 엄청난 독서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다음 책을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이번 에세이 또한 아주 훌륭한 책 길잡이 한편이 아닌가 싶다. 3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각 7권씩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서점을 운영하면서 북클럽의 북큐레이터로 책을 권하는 편지를 모은 내용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던 때에 무분별하게 책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책 읽는 속도가 책을 사들이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보니 읽지 못한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책장의 저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한숨을 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책에 대한 내용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을 것인지 아닌지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고르고 고르다보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나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책들을 자꾸 외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다독가들은 다 읽지 않아도 표지만 보아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책을 사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고 하지만,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형편에 무턱대도 책을 사들이는 것은 짐을 쌀 때마다 지옥불을 경험하게 해 준다. 솔직히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아카이브나 정재승 교수의 서재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는 환경이기에 그냥 침흘리며 부러워만 해야할 것 같다. 


그런면에서 이번 책은 나처럼 새로운 분야와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을 주저할 때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준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저자가 소개한 21권의 책을 모두 다 읽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소개된 책 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은 예전에 쓴 나의 리뷰를 다시 읽어보고 저자의 감상을 뒤따라 가게 되고, 대부분 제목조차 몰랐던 책들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하나씩 검색해보게 되었다. 어차피 소개된 모든 책들을 다 읽겠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고 그 중에서 몇 권만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다. 이번에 소개된 책들은 크리스티앙 보뱅 [그리움의 정원에서], 이슬아 남궁인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마르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이장욱 [트로츠키와 야생란],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서], 김겨울 [책의 말들], F. 스콧 피츠제럴드 [행복의 나락], 김혼비 [다정소감], 프레드 울만 [동급생], 김민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스페인 여자의 딸], 클레어 챔버스 [스몰 플레저],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에리카 산체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최희서 [기적일지도 몰라],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금정연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이다. 


서점을 갈때마다 책장처럼 진열된 곳에는 오래된 책들이, 매대에 뉘어 있는 책들은 주로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들이다. 당연히 매대에 놓여 있는 책들이 눈에 잘 띄이게 되고 책을 보러 온 사람들은 표지와 목차를 둘러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신간코너에 놓여 있는 책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 나열 순번처럼 정해진 책장에 꽂히게 된다. 책장에 꽂히게 되면 책머리만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책을 꺼내보기 전까지 책표지와 그 안에 담긴 매력은 고스란히 감춰지게 된다. 마치 오래된 와인이 코르크 마개로 오랜시간 고유한 맛과 향을 응축하고 있는 것처럼 책 등에 쌓여가는 먼지는 도대체 언제쯤 이 책의 주인이 나타날까 고요히 내려앉는다. 그렇게 신간코너를 쓰윽 살펴보고 책장 숲을 지날 때면 무력함이 밀려오곤 한다. 아니 대체 누가 이렇게 책을 많이 내는 걸까? 어디에 사는 누군가가 이렇게 많은 글을 써대는 것일까?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서점에 있는 책의 한 부분이라도 읽을 수 있을까란 무력함 말이다. 그렇게 책장 하나도 다 읽지 못하면서 사람들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내 생각을 내뱉었다니 이런 만용이 또 있을까란 생각도 더불어서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책을 많이 읽는다고 나에게 엄청난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웬만하면 고착된 생각을 쉽사리 바꾸지 않으려 할 것이고 오히려 잡식이 늘어나서 아는 척을 더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겪고도 살아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 그리고 내가 가본적 없고 앞으로도 갈 일이 없는 미지의 곳에서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또 누군가는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명확한 사실을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주지시킨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머릿속에 그려 내고, 나와는 관계없는 희로애락을 헤아리며 한층 깊어지곤 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도 우리가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삶에 놓인 선택지를 진실로 이해하고 깊이 감사하며 실해하는 사람이 되려면, 때로는 우리의 일상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128)”


“나는 오늘 왜 달릴까. 나는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나는 나 자신을 오늘도 단련하고 있는가. 그 단련의 끝이 비록 실패더라도, 그 보잘것없는 내 모습을, 그 진실한 내 모습을, 나는 감당하고 있는가 -최희서 [기적일지도 몰라]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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