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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의 [스페인 여자의 딸]을 읽었다. 다큐멘터리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남미의 특이하고 고유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자주 접하곤 했다. 그곳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지만 남미를 여행지로 택하기에는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너무 멀고 불안정한 치안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특히나 마약과 마피아에 얽힌 영화를 보게 되면 그러한 두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남미의 문학을 접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처음 읽는 베네수엘라 작가의 소설을 통해 뉴스를 통해서만 들어왔던 그곳의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따름이다.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너무 먼 사람들의 고통받는 이야기는 즉각적인 공감을 자아내기 힘든 것 같다. 특히나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그냥 혀를 차는 정도의 안타까움만 자아낼 뿐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렇게 소설을 통해 나와 동시대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떻게 지옥같은 나날들을 버티고 있는지 몰입해보는 시간은 공감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요즘처럼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개인주의의 시대에 타인에 대한 생각과 배려를 마땅히 받아들이는 내면의 여유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에, 억지로라도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머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 이웃의 고통도 외면하는 매몰찬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1980년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배경으로 주인공 아델라이다 팔콘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베네수엘라가 전세계 원유 매장량 1위로 엄청난 부를 양산해 낼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독재 정권의 무분별한 정책과 인센티브 남발로 엄청난 하이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아주 간단한 생필품조차도 몇 뭉치의 돈다발을 지불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상황이 극심해졌을 때에는 아예 지폐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해 물물교환과 같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달러나 유로와 같은 해외 화폐를 통해서만 몇배에서 몇십배의 가격 상승에 이른 생필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지옥불이 펼쳐진게 아닌가 싶다.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가 비유적으로 지명한 혁명의 아이들과 보안관과 같은 부류의 등장은 당시의 국민들이 아무런 공권력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한당 같은 무리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팔콘이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귀하게 여기던 스페인 산 식기를 쓰다듬으며 해가 진 이후에 거리에 나서는 행위는 거의 '나를 잡아잡수셔'와 같은 위험천만한 일임을 묘사한다. 밤이 되면 들려오는 총소리와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더불어 끊이지 않고 스며들어오는 최루탄 가스 냄새와 불에 탄 냄새는 어머니를 잃고 애도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팔콘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보안관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무리들이 그녀의 집을 버젓이 불법점거하고 있다. 그들에게 린치를 당한 팔콘은 이웃 사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항거하려다 우연히 옆 집에 살던 아우로라 페랄타의 문을 열어보게 된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우로라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아델라이다는 그곳에서 보안관 무리의 동태를 살핀다. 아우로라의 시신을 옮기려다 포기하고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은 손에 땀이 흥건해지는 긴장감을 자아내며 도대체 시신을 그렇게 밖으로 내던지는데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광란의 상황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상에 떨어진 아우로라의 시신을 불에 태우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아델라이다는 극적으로 상황을 마무리하지만 그곳에서 친구 아나의 동생 산티아고를 만나게 되고 정부에 끌려갔던 산티아고는 모진 고문을 받았던 이야기를 젆해준다.
산티아고와의 함께 머무는 동안 아델라이다는 아우로라의 방에 남겨진 앨범과 서류를 통해 자신이 이 불구덩이 같은 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이한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스페인 여자의 딸이라 불리던 아우로라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멀쩡했던 시기에 많은 유럽이민자들이 몰려왔고 아우로아의 어머니 또한 그렇게 카라카스에서 식당을 열어 스페인 음식과 베네수엘라 음식을 만들며 자리잡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아우로라가 어떻게 사망한 것인지 나오지 않는다. 열살 차이가 나지만 아델라이다는 아우로라의 신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아주 오래전에 방문하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마주하지 못한 마드리드의 친척들과 연락을 취해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고자 한다. 여권을 만들고 서류를 조작하는데 꽤 많은 돈을 쓰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한 아델라이다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묘지를 찾아간다. 대체 얼마나 열악하고 질서가 무너진 것인지 도둑이 도둑의 것을 훔치고 강도가 강도의 것을 빼앗는 상황이니, 묘지를 파헤쳐 시신과 함께 묻어둔 것을 훔치고 비석에 새겨진 것마저 떼어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설마했던 일을 눈으로 확인한 아델라이다는 비참한 슬픔에 젖어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여자와 아이들 같이 약자를 유독 심하게 검문하는 이들은 오히려 코카인을 배달하는 이들이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고 뒷돈을 바라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러가지 질문으로 긴장감에 휩싸인 아델라이다는 스페인 여권을 보여주고 검문하는 이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도와주어 가까스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출발을 앞두고 아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산티아고가 마약을 소지한 채 총에 맞아 숨졌다는 비보를 전하며 끊긴다.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는 통화는 아델라이다와 베네수엘라의 연결점이 끊기고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린다. 아델라이다가 아우로라의 시신을 유기하고 불에 태우고 신분증을 위조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아델라이다가 처한 상황이라면 그녀의 선택이 과연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불한당에게 점령당하고 언제 어디서 폭행당할지, 가진 것을 다 빼앗길지, 혹은 팔려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발견했다면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아델라이다가 아우로라의 집에서 유로를 찾는 순간부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여권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엑스레이 검사를 하겠다는 말에 절대로 걸리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는 어느 독자라도 아델라이다를 응원하고 지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다는 것, 아직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자 죄책감이라는 이빨로 나를 물어뜯는 기적, 생존한다는 것은 도망치는 사람과 동행하는 공포의 일부이다. 누군가 당신보다 더 살 가치가 있었음을 알려주겠다고, 우리가 건강할 때 무너뜨릴 틈을 노리는 해충이다.(31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