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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
하재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평점 :
하재영 작가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를 읽었다. 부제는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다. 얼마 전 [친애하는 나의 집으로]를 읽고 한마디로 ‘너무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신작을 읽고 나니 저자가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번 책도 너무 좋고 감동적이고 논리적이고 진솔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책 읽기를 좋아해도 결말을 알고 싶고 책 한 권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지막 페이지가 그렇게 아쉽지 않은데, 유독 하재영 작가의 책은 항상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생면부지의 남남이고 앞으로도 우연히라도 마주칠 기회가 없겠지만, 이렇게 책으로 누군가의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계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나온 시간을 가감없이 들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저자의 책을 읽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에 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받고 체력이 떨어져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갑자기 엄마는 내가 모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란 궁금증이 생겼다. 마치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처럼 나중에 아주 나중에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집안을 정리하다가 혹시나 내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본가를 떠나와 살기 전에는 집에서 가끔 가족 앨범을 둘러보곤 했다. 정리되지 않은 부모님의 흑백사진을 대충 훓어보며 우리 엄마 아빠도 이렇게 젊을 때가 있으셨구나라는 잠깐의 감흥에 빠지곤 했는데, 이제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함께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저자도 고백하고 있지만 사춘기를 비롯한 20대 시절에는 그야말로 자기 밖에 몰라서 그런지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임에도 부모들의 마음 상황을 헤아릴 여지가 거의 없다. 그 당시에는 마치 인생의 가장 큰 고뇌에 빠진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대놓고 드러내며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특출난 사춘기를 보낸 기억이 없다. 큰 사고를 친 적도, 가출이나 일탈을 한 적도 없다. 어쩌면 너무 밋밋하게 열정의 시기를 보낸 것이 아닌가란 아쉬움마저 든다.
전작에서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집안의 흥망성쇠를 어느 정도 설명했기에 이번 신작에서 언급된 사건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갖고 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벌어진 같에 대해서 딸와 어머니의 관점과 처신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인지 놀람을 금치 않을 수 없었고, 어머니의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직하여 그 사랑의 헌신 덕분에 이렇게 무관한 나와 같은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읽는 혜택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와 집안 일, 고부간의 갈등, 자녀와의 반목, 남편의 냉담함 등 어찌보면 이미 지난간 일이라 할지라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려주시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책이 가진 재미의 9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구전 동화를 듣는 것처럼 어머니의 이야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함께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심각하고 진지하다. 어머니는 마치 세상사를 초월한 도사같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딸인 저자는 어머니가 겪은 상황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겪은 불합리함과 편협한 사고는 그때만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도 새로운 세대에게 지속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알게 모르게 ‘가부장제의 수혜자’로 살아온 남자인 나 또한 아주 오랜시간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인내한 시간을 모른척 해왔기 때문이다. 여자가 공부는 해서 뭐하냐며 책을 아궁이에 쑤셔넣어 불태워버렸던 일이 비일비재했던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 세대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체념과 수동성을 배웠을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로 아내에게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용인하던 시대는 이미 생물학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음에도 감히 가부장의 말에는 토를 달지 못하게 만드는 독재자의 권위를 갖고 있었다. 딸들이 공장을 다니며 하나 뿐이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대고 출세한 아들과는 반대로 지지부진한 생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 오랜시간 동안 여성들은 남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더 많은 노동을 감내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세뇌에 시달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도 동등하거나 더 우위에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보직을 맡기거나 승진을 시킬 때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배제시키는 일이 여전히 발생된다. 워킹맘이라는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자가 언급한 일하는 여성에게는 자신의 일과 더불어 가사일과 육아돌봄이 가중된다. 우리 사회는 그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는 여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것이겠지.
“엄마에게 여성의 일생이란, 특별한 사람으로 고독하게 지내는 삶과 평범한 사람으로 원만하게 지내는 삶으로 이분되어 있었고,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후자가 더 행복한 삶이라고 믿었다.(34)”
“‘평범한 여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로서 결혼 제도권에 편입하는 것,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지위를 갖춘 남편과 자녀를 두는 것, 중산층에 안착하는 것,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 등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것이 평범성이라면 미디어가 ‘노출’하는 동시에 ‘누락’하는 삶을 ‘평범한 삶’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평범함은 정체성, 가족 형태, 경제적 배경 등의 다름을 무시한 채 남용된다. 모두가 스스로 평범하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등의 가치는 어디에서 배회하고 있을까?(39)”
“엄마가 선택한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져온 일을 생각하면 수많은 가정과 질문 들이 떠오른다. 가사노동이라는 ‘반복의 노동’이자 ‘필수적 노동’을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만 담당한다면, 그 한 사람이 어머니-아내-며느리로 부리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성역할 모델에 맞춰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와 그녀가 추구하는 자화상이 동떨어져 있다면, 다시 말해 그녀의 노동이 ‘스스로 원해서’ 맡은 일이 아니라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아분열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결국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란 선택권이 없는 자의 자아분열이 아닐까? 현실과 의식이 유리되어 있을 때 그녀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으니 그저 현실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 의식의 깨어남을 억누르거나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은 아닐까?(209)”
“…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 위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면 바뀌는 모자를 알아채주는 정도의 일만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한정원 시인 [시와 산책]: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중에서(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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