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뒤에 쓴 유서 오늘의 젊은 작가 41
민병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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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작가의 [달력 뒤에 쓴 유서]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41번째 작품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양장으로 출판되기에 책장에 순서대로 꽂아두면 훨씬 더 폼이 나는 것 같다. 그 고유의 폼을 내주는 치트키는 바로 표지에 그려진 화가들의 그림이다. 소설의 내용이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사용하기에 표지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유독 표지의 그림에 눈길이 많이 갔다. 아마도 지금 어느 집에서는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둥그런 모양의 철제 밥상. 소재가 스테인리스인지 알루미늄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아함과 고상함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걸 만드는 사람도 알았는지 밥상 윗면에는 항상 화려한 꽃과 같은 무늬가 형형색색 새겨져 있었다. 밥상의 다리 또한 부실해서 오래 사용하게 되면 다리 한 쪽이 시원치 않아서 금방 밥상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어쩌면 다리가 세 개인 이 밥상은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장면처럼 누군가 밥상을 손쉽게 뒤엎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라도 밥상을 뒤엎은 이가 시간이 지난 뒤에 계면쩍음을 느끼며 다시 살아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밥상의 소재와 촌스러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밥상 위에 놓인 음식에 눈길이 저절로 가며 순식간에 침이 고인다. 흰쌀밥에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과 김치, 계란말이, 날고추, 양파와 마늘 짱아치, 그리고 이 밥상의 하이라이트인 잘 구운 조기 두 마리. 이런 메뉴 설정은 자기 자신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 차림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살지 않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정성껏 준비한 상차림이다. 없는 살림에 미리 찬거리를 준비하지 못했지만 얼려둔 조기가 생각나 두 마리나 구워 올린 것이다. 날고추가 풍성한걸 보니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한 상차림에는 밥과 고추와 김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상차림을 가능케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부모 밖에 없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며 그렇게 상을 차려주신다. 


식탁 옆에는 당연한 소품으로 언제나 달력이 등장한다. 밥을 먹으며 일상을 기억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연로해질수록 점점 커지는 달력 숫자는 그리운 이와의 만남을 카운팅 한다. 그래서 식탁 옆에는 언제나 달력이 있다. 그렇게 당연한 소품의 뒷면에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적혀 있다. 저자의 이름과 동명인 화자 병훈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달력 뒤에 아버지의 유서가 씌어 있다. 농약을 마셔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죽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면 그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결심이 섰을까 싶다. 아들 병훈은 병원에 실려간 아버지가 며칠 간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라리 자신이 더 늦게 발견을 했더라면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의 시간이 짧아지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를 한다. 때마침 엄마 마저도 집을 떠난 때라 화자인 ‘나’는 홀로 그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아버지의 자살을 고백하며 시작하는 화자의 이야기는 무엇 때문에 아버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는 또 왜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여타의 소설처럼 어떤 사건과 정황을 토대로 유추해볼 수 있는 이야기도 전개되지 않는다. 그저 이 소설에서 어떤 화제가 된 일이란 아들과 엄마가 오키나와로 여행을 갔다는 정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버지의 자살의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화자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이야기를 뛰따라가 가지만, 작가는 그렇게 쉽게 독자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주인공은 소설을 쓰며 아버지와 엄마와의 흔적을 기억하려 애쓴다. 유독 마음이 가는 장면은 엄마가 온 장터를 들쑤셔서 찾아낸 스케이트 날로 썰매를 만들어 동네 아이들의 주목을 받던 아들을 위해 썰매장에 연결된 관이 얼지 않도록 빙벽에 오른 아버지를 발견한 주인공이다. 행여나 잠깐의 실수라도 있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도 아버지는 왜 이리 무모한 것일까란 생각에 화자인 병훈은 온 몸이 덜덜 떨리지 않았을까? 도대체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기도록 만들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자식이 제일 먼저 발견할 것을 뻔히 알면서 농약을 들이마시는 결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에두르고, 빙빙 돌고, 중요한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뉘앙스만을 풍겼다. 가령 이런 문장. 당신은 소설에게 당신의 손을 빌려준다. 명확한 서사와 분명한 주제를 쓰지 않았다.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소설을 따라오도록 안내하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은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왜 자꾸 명확하고 분명한 것들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 이 이야기를 쓰는가. 나의 가족 이야기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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