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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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원 작가의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를 읽었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 하이틴 소설일까,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일까 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오빠는 혈육인 친오빠를 뜻하고 채하나인 여동생이 채강천인 오빠가 서울에서 진짜 사고를 친거라 생각하고 고향인 태백으로 데리고 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지난 이틀 동안 강릉으로 출강을 다녀오면서 기차를 타고 가며 창밖으로 보이는 논밭과 작은 야산들을 보고 있자니 드문드문 작은 마을이 보이고 집 한 채만 덩그러니 놓인 곳도 있었다. 물론 아파트도 중간 중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층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딜가나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살다가 한적한 시골에 가면 더 답답함이 느껴지곤 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도저히 살지 못할 것 같은 환경에서도 어느 순간 적응하고 그곳을 편안하게 느끼며 벗어나길 거부하게 되니 말이다. 도시의 번잡스러움에 익숙해진 나는 시골의 한적함을 견디지 못한다. 자동차의 소음과 경적소리, 사람들이 술마시며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화를 내며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음에도 어둠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오는 시골의 고요함은 이름모를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석탄 소비가 줄어들면서 거의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한때 강원도의 사북과 태백은 수많은 광부들이 있었다. 태백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주인공 채하나와 절친 미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경제적 상황이지만 하나는 미주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미주는 하나에게 있는 척을 하지 않아 친구로 지내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하나의 오빠 강천을 짝사랑하는 미주, 그리고 미주의 오빠 우주를 짝사랑하는 하나라는 인물 설정은 오히려 소설의 긴장감을 저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란 의구심이 들지만, 우주는 거의 등장하지 않기에 하나와 미주의 관계 설정에 집중하며 과연 하나의 우려처럼 강천이 정말 사기꾼의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앳된 하나와 미주는 여전히 학생처럼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지만 하나는 엄마의 병환으로 인한 죽음과 아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혼자가 될까 두렵기만 하다. 하나는 육상부였던 오빠를 만나러 학교에 갔다가 투포환 선수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나중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동안 올림픽을 보면서 거의 대부분의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독 육상의 필드경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나의 경우처럼 여자 투포환 선수가 국내가 아닌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체격 조건이라고 한다. 메달을 따는 여자 투포환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100kg이 넘는 신체 조건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 여성이 그런 조건을 갖추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기 때문에 메달권에 진입하는 힘을 뿜어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85kg에서 무게가 멈춘 하나는 현실을 파악하고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공장에 취직해 아빠 때문에 열악해진 거주지를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며 우연히 유튜브에 나온 오빠 강천의 얼굴을 보고 하나는 경악하며 오빠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오빠를 잡으러 서울에 가기 위해 거의 불가능한 연차를 내고 함께 따라 나선 미주와 함께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빠의 흔적을 찾게 된다. 하나와 미주의 경제적 상황이 정반대라면, 태백의 황지 페투페라는 카페 겸 호프집은 도시의 스타벅스와 대조를 이루며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미주를 기다리며 스타벅스에 머물던 하나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그곳은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곳인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또 하나의 전쟁터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스타벅스는 우리나라에서 도시화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은 비싼 매물이 될 확률이 높고 유동 인구는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으며 차량의 흐름도 만만치 않게 복잡한 곳이 대부분이다.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오빠와의 만남을 위해서 미주와 함께 옛 고향 언니 하연은 언론사에 취직하여 기자로 생활하고 있지만, 막상 하연 언니를 만나 설명을 들으니 그녀가 하는 일이란 고작 다른 기사의 내용을 우라까이 하여 다시 웹상에 게재하는 기래기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연은 하나와 미주보다 냉철한 시각으로 강천이 하는 일이 분명 책기꾼에 만들어놓은 사슬에 걸려들었다고 자신했다. 그럴만한 것이 유튜브에 나온 강천의 소개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스타트업 대표이자 교수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렇게 어이없는 뻥을 치는 강천이 누구에게 홀딱 속아 넘어간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강천에게 마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상에 자기 혼자 남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어서 빨리 강천을 제정신 차리도록 태백에 데리고 가야 한다고 종용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하연이 하나와 미주와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며 책기꾼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부분은 강천의 사기로 의심되는 부분과 상관되기에 필요한 설명이기도 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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