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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김진애 작가의 [여행의 시간]을 읽었다. 부제는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이다. 바야흐로 팬데믹의 종식이 눈앞으로 다가오며, 몇 년동안 억누르던 여행세포가 마구마구 폭발할 것만 같은 시기이다. 일상을 견디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딘가 떠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막상 어디를 갈 것인가, 누구와 갈 것인가를 비롯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다 보면 비용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냥 집에서 쉬지 뭐’ 라는 단순한 결론에 다다르곤 한다. 요즘 시작한 여행 예능 중 ‘지구마불 세계여행’이라는 프로는 유명한 여행 유튜버 세 명이 나와서 우리가 어릴 때 했었던 부루마불 보드게임처럼 실제로 주사위를 던져 나온 나라를 여행하는 컨셉이다. 여행 유튜버들이다 보니 일반인들과는 다른 여행의 고수처럼 어느 곳이든 아무 문제없이 일정을 수행할 것 같지만, 그들도 낯선 곳에서는 긴장과 두려움과 설렘을 드러내며 좌충우돌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튜부 채널은 구독자와 조회수를 늘리는 것이 제일 중요할텐데, 여행 채널에서 조회수가 올라가는 영상은 한 마디로 유튜버가 여행지에서 개고생을 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 말이 설득력있게 느껴지는게 어차피 여행지의 드라마틱한 영상들은 이미 제대로된 촬영을 마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널려 있다. 여행 채널을 통해서 독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영화와 그림 같은 영상이 아니라, 내가 만약 그 곳에 가게 된다면 혹은 실제로 그 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몸으로 감당해야 할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학생 때 단체로 어디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야겠다거나 가고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제일 친했던 친구는 방학이 되면 항상 어딘가 여행을 다녀왔다. 방학을 마치고 다시 만난 그 친구는 당시 우리 나라임에도 처음 듣는 이름의 장소를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 이후로도 며칠씩 집을 나서는 것, 집을 나서기 위해 짐을 꾸리는 것, 단체로 잠을 자고 세면과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귀찮은 일로만 여겨졌었다. 어찌보면 여행을 즐기게 된 것은 유학시절에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도피처로 생각한 다른 도시의 방문과 언제 다시 살아볼지 모를 타지에서의 삶을 즐기기 위한 방편이었다. 없는 살림과 짧은 일정으로 다른 도시를 다녀오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딘가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리고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여행을 다녀오고 몇 번 후회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철저히 계획을 세운 탓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MBTI의 영향도 있겠지만 여행지에서 동선을 생각했을 때 미리 장소를 생각해두지 않으면 거리에서 시간과 체력 낭비를 너무 많이 하게 된다. 마치 어떤 미션을 완수하겠다는 강박증을 가진 사람처럼 여행지에서도 쓸데없고 불필요한 동선을 거부하겠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이 주는 커다란 선물 중의 하나는 바로 우연성이다. 어차피 낯설고 어색한 곳에 가는 것이니 일상의 삶이 있는 곳처럼 자연스러울 수는 없다. 길을 잃기도 하고 맛이 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현지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것이 여행일텐데, 그런 것들을 반갑게 맞이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에 나오는 어이없는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방구석에만 머물려고 한다면 나를 기다리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는 것과 마찬가지일텐데, 지금까지의 여행 습관을 버리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여행길이란 일상을 깨뜨리는 시간이다. 모르던 세계, 처음 가보는 공간, 낯선 문화, 익숙지 않은 문물, 낯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떨어지는 상황 그 자체가 비일상이다. 이 비일상은 나의 일상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낯선 여행길은 나를 비추고, 나의 관계, 내가 익숙해했던 모든 것을 비춰준다. 그 과정에서 여행은 인생에 풍부한 소재와 주제를 던져준다. 여행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를 다시 찾고, 찾았다고 생각한 나를 다시 잃어버리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11)”
“홀로여행이란 ‘결단의 행위’이자 ‘용기의 행위’이고 ‘모험의 행위’이자 ‘자신을 대면하는 행위’다. 그만큼 두렵고 주저하는 시간이지만 그만큼 완벽한 시간이 된다.(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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