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찰란 피크닉 오늘의 젊은 작가 45
오수완 지음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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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완 작가의 [아찰란 피크닉]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45번째 작품이다. 2100년이라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아찰라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십대 청소년들이 종평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피라미드 안으로 입성하기 위한 마지막 피날레인 피크닉을 향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피라미드인 헤임에 들어가기 위한 '종합 적합도 평가'이라는 이름의 최종 시험은 마치 우리나라 현실의 입시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소설 속 배경과 설정은 모두 가상의 미래를 가정한 상상의 산물이지만 계속해서 읽다보면 이건 꾸며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우리 삶의 현실을 민낯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입시를 앞둔 시기에 학교에서 성적으로 우열을 매겨 특별반을 편성했던 기억이 난다. 전교 등수를 기준으로 소수의 학생들만을 모아 방과 후에 따로 수업을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학교의 명예가 무엇보다고 중요하게 여겨졌기에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특혜를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은 공교육의 장에서 그런 차별적인 구분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이미 사교육 시장이 너무나도 확고하고 두드러져 쪽집게 도사가 있는 좋은 학원을 다니며 되는 일이기에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대학은 출세를 위한 아주 기초적인 스펙으로 인정되지만 안정되고 높은 보수를 보장하는 좋은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기에 대학 졸업 이후에도 거쳐야 할 과정은 피라미드처럼 높고 가파르기만 하다. 


아찰라 공화국은 이미 예견되고 있는 것처럼 전쟁과 환경오염과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인 재편이 이루어진 나라의 형태이다. 아찰라 안에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헤임이라는 피라미드가 존재하고 헤임에 들어가진 못한 이들은 그나마 장벽의 보호를 받으며 언제 아찰이 될지 모르는 운명을 안은 채 살아간다. 아찰이 된다는 것은 몸에 생긴 종양이 늘어나 종국에는 몸의 크기가 커지고 살이 터지는 끔찍한 변화를 거듭하여 아찰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쫓겨나게 되고 경비대의 감시에 놓이게 된다. 아찰이 된 이후에는 인간과의 적절한 소통은 불가하며 인간에게 공격적일 수 없다. 아찰 중의 과거의 악한 일로 수라가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수라는 경비대를 공격하는 폭력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소설 속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아찰란 공화국에서 최종 종평을 앞둔 7명의 아이들이 한 명씩 소개된다. 마치 현실의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는 것처럼 종평에서 1등을 한다면 꿈에 그리던 헤임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얻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아이들은 목숨을 건 레이스에 돌입한다. 이미 종평 등수가 좋지 않아서 애초에 포기해버린 아이들도 있지만 7명의 아이들은 피라미드를 오르는 피크닉이 다가올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란, 요제, 네즈, 디본, 카렐, 히에, 이투 이렇게 7명의 소년 소녀들은 낯선 이름을 가진 먼 미래의 가상 인물처럼 들리지만 실상 이들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고민하고 갈등하다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은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7명의 사연과 사건들을 묘사한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청소년 소설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지만, 이들의 고민은 결국 경쟁사회에 길들어져 무엇인 문제인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무한 질주해온 기성세대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나 7명의 아이들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종양이 늘어나 갑자기 아찰이 된 이후의 변화는 점점  심각해지는 계급의식과 종적으로 나는 특별한 그룹에 속해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어떤 차별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오래전에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몹쓸 병에 걸린 멀리해야 할 천한 이들로 바라보았던 비열한 시선처럼 오늘날에 이르러 아이들의 시선에는 새로운 기준법이 생겨나고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여 아찰처럼 거리를 헤매는 이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몰아넣고 피라미드처럼 더러운 공기는 한 줌도 머물 수 없는 청결한 공간에서 고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들의 무한경쟁터가 더 이상 소설 속의 가공한 무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피크닉이 시작되어 피라미드를 오르는 7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앞지르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다가 갑작스레 경보가 울리며 수많은 아찰들이 나와 피라미드의 유리를 몸으로 닦는 모습을 보게 되고 공격적인 성향의 수라가 나타나 피크닉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카렐과 이투는 수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달려들지만 수라의 엄청난 파워를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으로 인해 무조건 종평 1등을 받아 헤임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의 최종 목적으로 생각했던 철옹성 같은 이기심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피크닉을 통해 7명의 아이들은 반드시 누군가를 이기고 위에 올라서야만 성공한 삶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임과 아찰라에 머무는 이들을 구분짓는 피라미드와 아직 종양이 나타나지 않아 일반 시민의 삶을 사는 이들과 아찰이 된 이들을 구분짓는 구역과 최종적으로 장벽이라는 울타리로 아찰라 공화국 모든 이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심각히 기울어진 편협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수완 #아찰란피크닉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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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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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를 읽었다.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다. 어딘가에선 폭탄이 떨어질까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차가운 습기가 내뿜는 지하 방공호의 시멘트 위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연휴를 잘 보냈냐는 살가운 인사만이 오갈뿐이다. 최근 개봉한 넷플릭스 신작 [무도실무관]에서 주인공이 전자발찌를 제거하고 도주하여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다 칼에 찔려 죽을 위기를 가까쓰로 넘기게 된다. 의당 아버지는 펄펄 뛰며 아들이 다시는 그럼 위험천만한 일에 가담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고, 도망간 범죄자를 쫓으려는 아들을 막아선다. 


그때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3달 전의 나는 전자발찌가 뭔지도 몰랐어. 근데 이제 다 알아. 너무 많이 알아. 내가 배운걸 잊을 수 없잖아. 내가 그날 구해 줬던 그 애는 사람이 무서워서 아직 밖에도 못 나온데. 걔 10살이야 겨우. 근데 그 어린애가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이미 마음을 닫아버렸어. 그리고 오늘 내가 뭘 알게 됐는지 알아. 그 악마 같은 새끼가 또 다른 애를 다치게 했다는 거야. 모르면 상관없는데, 그걸 이제 내가 다 아는데 어떻게 가만있어?"


우리는 지금 지구 저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간간히 전해오는 뉴스를 통해서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과는 다르게 알면서도 가만히 있게 된다. 이건 너무 먼 나라의 일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생업을 때려치고 그곳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지금 그곳에 간다고 해도 도움될 만한 것이 없을테니까. 너무나도 자명하고 현실적인 비겁한 이유들을 백만개 정도 만들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약자를 보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는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권은과 승주는 다큐멘터리 인터뷰로 재회하게 된다. 권은은 한 눈에 승주를 알아보지만 승주는 권은을 기억하지 못한다. 학교에 며칠 째 결석한 권은을 찾아가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반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마지못해 마주한 권은의 현실은 이불 속에서 스노볼 빛과 멜로디에 의지해 떨고 있는 작은 소녀의 애처로움이었다. 이후 승주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권은에게 이것 저것 먹거리와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주고 종국에는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와 장롱 속에 넣어둔 필름 카메라를 건네게 된다. 생의 의지를 서서히 소멸시키던 권은은 승주의 보살핌과 카메라로 인해 다시금 불을 붙일 수 있게 된다. 


권은을 기억한 승주는 인터뷰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권은의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견디고 있는 나스차를 취재하게 된다. 나스차와의 화상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승주의 아내 민영은 어린 지유에게 행여나 불운이 끼칠까 두려운 마음에 남편 승주가 전쟁 지역의 여성과 인터뷰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승주는 지유에게 좋은 것만을 보여주고 싶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전쟁 중인 지역의 사람들을 외면하려고는 이기적인 민영에게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분쟁 지역을 활보하던 권은은 사고로 다리 한 쪽을 잃게 되고 사진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게리 앤더슨의 여동생인 애나 앤더슨의 초대로 영국에서 잠시 머물게 된다. 애나는 권은에게 아버지 콜린 앤더슨의 일생이 담긴 영상 제작을 부탁하게 되고, 권은은 파키슨병과 치매를 앓는 콜린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하며 게리와 콜린과의 불화의 이유를 알게 된다. 콜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드레스덴 지역에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기 조종사였기에 아들 게리는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게 만든 것인지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며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못한다. 하지만 게리와 콜린의 상처와 분노를 너무나도 잘 알았던 애나는 권은을 통해 시리아 난민인 살마를 딸처럼 보살펴 준다. 


게리 앤더슨이 만든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에는 노먼 마이어라는 사람이 분쟁 지역에 구호품을 나르다 폭격을 맞아 죽게 되는 장면이 담기게 된다. 노먼 마이어의 어머니 알마 마이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가게 되는데, 알마의 연인이었던 장 베른은 목숨을 걸고 그녀의 이주를 도와주지만 알마가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노먼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투신하게 된 것은 아버지 장 베른의 영향이었고, 노먼의 구호품 차량을 찍던 게리는 폐암 투병 중에도 분쟁 지역의 사진 촬형을 포기하지 않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분쟁 지역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던 권은과 애나와 살마와 나스차의 만남은 우리 삶의 우연성에 대한 고찰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코멘터리북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 방문했던 런던을 떠나며 내 생에서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15년 전 [로기완을 만났다]를 위해 왔던 영국을 떠나며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생에서 장담이란 정말이지 쓸모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지 지역은 아마도 절대로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시리아의 난민들이 고국을 떠나 작은 보트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몸을 실고 서유럽의 작은 섬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국민들을 선동하는 이들의 배타적인 마음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우리가 절대로 만날 일이 없고, 절대로 엮일 일이 없다고 장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비극적인 일일 발생된 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해도, 죽어가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는다고 해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려 한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말이다. 승주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죽고 싶던 권은을 살리게 했고, 권은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의 선택은 시리아 난민 살마와 애나를 연결시켜주고 살마는 우크라이나 여성 나스차를 같은 방식으로 구해준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나와 무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을까.


"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45)"


"가령 미국의 폭격에 많은 국민을 잃은 이라크는 다른 곳에서는 쿠르드족을 죽였다. 삼백 년 넘게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는 약국의 슬픔을 어느 나라보다 잘 알 텐데도 동티모르를 공격했고 인구의 사분의 일 이상을 학살했다. 이십 세기 들어 가장 처절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은 테러리스트를 차단하고 솎아낸다는 명목을 내세워 그 위로 고압 전류가 흐르는 팔 미터 높이의 장벽을 세웠고 가자지구에 주기적으로 폭탄과 미사일, 로켓을 투하해왔다. 무기에는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식별할 능력이 없는데도,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을 한 명이라도 죽이는 게 꿈인, 고작 그런 것을 꿈이라고 믿는 소년과 소녀들을 키워낼 뿐인데도, 그들 중 일부는 몸에 폭탄을 두르고 이스라엘 군인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테러가 아니라 신앙이라고, 아니, 사랑의 경지라고, 자신의 몸이 신전이 되어 순교할 기회를 얻은 것뿐이라고,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176-177)"


#조해진 #빛과멜로디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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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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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을 읽었다. 욕망 3부작 중에 두 번째 작품으로 인터뷰를 보니 성취적 욕망에 대한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전작들이 주로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을 담은 스릴러가 많았다면 이번 작품에는 로맨스와 가상 세계에 대한 판타지도 접목되어 있어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성찰이 깊이 있게 깔려 있어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변화를 지켜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이를 잃지 않고 삶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는 저자의 응원이 담겨 있음이 느껴졌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어떤 종교적 요소가 가미된 판결에 귀결점을 둔 것이 아닐까 예상했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고, 과학의 발달로 언젠가는 영생을 꿈꾸는 인간이 육체적 소멸을 앞두고 스스로 데이타화 되기를 선택하여 완벽한 홀로그램 속 세상에서 살아가는 곳을 제목으로 선택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영원한 천국의 이름은 롤라 라는 가상 세계이고 소설 속에서는 아직 완전하게 구현되지 않은 일종의 베타버전을 실행하고 있는 상태로 나온다. 롤라를 구상한 이들은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 고릴라, 보노보의 생체실험을 마쳤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착수하여 실험대상자들을 고르기 시작한다. 


"롤라에 보낸다는 건 정보 형태로 네트워크에 업로드시킨다는 얘기야. 몸을 뺀 나머지, 그러니까 한 개체의 고유한 의식, 무의식, 본성, 반사작용, 감각이나 신경 회로 같은 것들 모두(319)"


데이타화된 인간의 고유한 요소들이 롤라에 보내지고 난 다음에 동일한 본성의 주인인 육체가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없기에 롤라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대상으로 노숙자들을 선택했고 무작위로 그들에게 롤라에 업로드 될 수 있는 앱이 구동되는 유심칩을 무상으로 나눠주게 된다. 한국에는 5명에게 유심칩이 주어졌고 롤라에 가고자 유심을 강탈하려는 이들이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랑이 언니가 경주에게 "자기야, 삶이 소중한 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야.(491)"라는 카프카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매순간 나의 몸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한 줌의 흙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고자 애쓴다. 그렇기 때문에 불로장생을 막연히 꿈꿔왔다 하더라도 롤라에 입성하여 드림시어터의 설계대로 원하는 삶을 마음껏 살 수 있다고 해도 끝이 없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을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해상이 어머니와 동일한 루게릭병에 걸려 몸이 굳어가기 전에 마지막 소원처럼 탐방했던 바하리아 사막에서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사막여우를 첫눈에 반한 제이와 함께 보았다면, 롤라행을 간절히 바라게 되지 않았을까? 


소설의 시작은 경주와 해상이 롤라에서 만나 경주가 원하는 드림시어터의 구상이 무엇인지 전해주는 내용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경주가 해상에게 해줄 이야기가 제이와 해상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경주와 제이의 삼애원에서의 비극적 사건으로까지 치닫을 것이라고는 좀처럼 예상할 수 없었다. 마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액자식 구성처럼 경주와 해상이 서로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방식의 차이일뿐임에도 화자가 바뀔 때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이렇게 서로 다른 화자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져 경주를 구원하고자 하는 해상의 기막힌 시나리오가 마지막 순간에 전혀 먹혀들지 않고 영원히 경주를 놓아버리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해상은 뜻밖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게 바로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주제임이 드러난다. 


주인공 경주는 유년시절 엄마와의 이별과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실패에 이어 수년 동안 병수발을 들던 착한 동생 승주가 폐인처럼 지내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나가 죽으라'는 막말을 내뱉고 그 말이 사실이 되어 승주가 탄 버스를 번번히 놓치는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회성은 거의 제로이고 심지어 의료사고에 연류되어 직장까지 잃은 경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삼애원이라는 알콜릭 노숙자들의 재활원인 삼애원의 보안팀에 지원한다. 경주는 그곳에서 입사동기 제이를 만나게 되고 2교대라는 혹독한 근무상황 중에 삼애원의 이상기후를 목도한다. 여기에 소설의 암울함을 조금이마나 옅게 만드는 인물이 나오는데, 베토벤과 랑이 언니와 공달이다. 다른 입소자들과는 다르게 지내는 베토벤은 장미정원에서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주고 랑이 언니는 노래를 가르치며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공달은 베토벤을 아빠라 부르며 호위하는 홍금강앵무이다. 소설의 서두에 경주가 왜 해상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그의 곁에 공달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는 내용이 이어진다. 


주변인물에 불과할 것 같았던 베토벤은 삼애원의 설립자로 드러나고 베토벤이 삼애원에 소속된 이들 중 마지막 유심을 가진 이라는 것이 밝혀져 칼잡이와 그의 하수들의 공격을 받게 되며 극적 반전을 거듭하게 된다. 삼애원이 소설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배경으로 등장하기에 그곳에서 경주와 제이가 칼잡이를 비롯한 유심칩을 노리는 이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긴장감을 드높인다. 삼애원의 풍경이 묘사될 때마다, 경주의 심란한 마음이 그려질 때마다 삼애원 앞의 바다에서 유빙이 부딪치며 나는 '쿵쿵' 반복된 소리는 경주의 불안함과 위기를 최고로 고조시킨다. 어찌보면 저자기 실제로 홋카이도와 이집트의 사막을 취재하여 소설 속에 그려낸 삼애원과 바하리아 사막은 유빙이 쉴세 없이 부딪히는 망망대해와 풀 한 포기 없는 모래사막이라는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을 대조적으로 그려내며, 해상은 사막에서 자신을 구원할 사랑을 만나게 되고 경주는 유빙이 쉴세 없이 밀려오는 절벽 끝에서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분투하며 동생 승주를 떠나보낸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게 된다. 


해상과 제이의 사막에서 시작된 로맨스는 해상이 루게릭병을 고백하고 제이의 예상치 못한 결정으로 몰입감을 주었지만, 해상에 경주를 구하기 위해 계획한 새로운 드림시어터의 삶인 경주와 지은의 러브스토리는 그동안 저자의 다른 소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상큼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등장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납치와 복수와 접목되며 칼잡이는 끝까지 경주를 괴롭히는 악한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칼에 찔린 트라우마와 세 명의 죽음으로 인해 롤라의 부름을 기다리며 무력한 삶을 살던 경주가 윤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갇혀 있던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 소설을 읽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경주의 복수가 해상의 설계에 불과했고 경주를 극도의 공포와 불안으로 떨게 했던 칼잡이가 해상의 역할이었다는 놀라운 반전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이르지 못한 경주가 다시 롤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 해상이 자신의 설계가 실패가 아님을 경주가 정말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치못하게 마주하는 성처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삶을 놔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519)"


"종종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자체를 조롱하거나, 가치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흐름이 읽히기도 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요인도 분명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기억해주시기를. 우리의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 삶의 소중한 무기라는 것을.(저자의 말 중에서 523)" 


#정유정 #영원한천국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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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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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었다.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이다. 지금쯤 동구는 중년의 트럭운전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박영은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날을 꿈꾸지 않을까란 저자의 말이 남긴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칭송하고 부러워하며 소수의 그들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것 같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반드시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남들보다 운이 좋아서 거기에 개인적인 노력이 더해져 보통 사람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서 타인에게 빚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전문직종에서 탁월함을 보인다거나 특출난 사업수완을 발휘해 대성공을 거두는 이들을 보고 막연히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게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동구는 난독증이라는 언어 장애를 갖고 있다. 열심히 치료를 받고 노력한다면 분명 나아지겠지만 당소설의 배경인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능력결여로 비춰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동구의 남다른 재능은 그의 심성에 있었기에 그와 아주 오랜 시간을 을 함께 보내며 유심히 지켜보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보속 같은 마음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동구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신나게 뛰어놀기를 좋아하지만 동구가 사는 윗마을의 초입에 있는 3층 집의 아름다운 정원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유일한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6살 터울의 여동생의 이름을 짓게 되는 순간부터 동생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표현하는 동구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여동생에게 쏠리는 것에도 전혀 질투하지 않는 또 하나의 부모처럼 행동한다.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여동생에 대한 동구의 아낌없는 배려와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여동생 영주가 동구의 담임 선생님께 드릴 카스텔라를 망치기 위해서 반죽그릇에 석회가루를 뿌렸을 때에도 동구는 행여나 영주가 혼날까 싶어 그릇을 바지 위에 뒤엎는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엄마에게 직살나게 얻어터지면서도 절대로 영주가 그런거라고 핑계를 대지 않는 대인배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에 반해 동구와 영주의 할머니는 대체 사람의 심술보가 얼마나 더 악해질 수 있는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동구의 엄마가 안쓰러워서 차라리 갈라서는 것이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혹독했다. 일상다반사가 욕과 비속어를 썩어 동구의 엄마를 비난하기를 반복하는 시어머니와 매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 아니었을까? 남편마저도 아내를 위로하고 어머니의 심술을 중재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아내를 무시하고 복종하기를 강요하다 폭력까지 휘두르는 상황에서 그냥 참고 사는 것이 통념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동구와 영주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구는 아주 어린 나이이지만 엄마의 힘든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으며 할머니와 아버지의 잘못된 처신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괴팍스러운 성격과 말 때문에 바람잘날 없는 동구의 일상에서 3학년 2학기에 새로운 박영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면서 놀라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국민학교에서 촌지를 준 부모의 아이에게 유독 관심과 편애를 일삼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했었다. 동구가 4학년이 되어 만난 오파리 같은 최악의 선생님은 학교마다 있었을 테지만 훈육이라는 미명하게 폭력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체벌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시대였기에 무조건 참을 수 밖에 없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박영은 선생님처럼 존재감이 거의 제로였던 동구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의 마음 속에 있던 보석 같은 심성을 알아채어 동구의 부모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난독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만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구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은 날이갈수록 커지고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매번 시험을 망치고 부모님에게 혼이나던 암흑기를 벗어나 그야말로 동구 가족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동구가 선생님 보낸 편지를 부모님 앞에서 자랑스럽게 읽던 장면에서 너무나도 기뻐 감동한 엄마가 동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박영은 선생님의 비극적인 실종과 여동생 영주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이어지며 자식 잡아먹은 년이라 막막을 퍼붓는 할머니의 폭언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급박한 전개에 가슴이 턱턱 막혀와 동구네 가족이 견뎌야 하는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이 되지 않았다. 


박영은 선생님을 그리고 여동생 영주를 떠나보내고 엄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동구는 그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만 있다면 자기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애절함은 비단 동구만의 아픔이 아닌 우리 모두가 돌아가고 싶은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였던가. 엄마와 영주가 학교로 찾아왔던 그날. 선생님은 칠판에 예쁜 글씨를 쓰셨고 지저귀는 어린 새 같은 영주는 배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그 글씨들을 읽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고 엄마는 교실 문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누르며 겸손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던 행복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훗날 박 선생님이 나에게 그렇게 큰 은혜만을 베풀고 자취 없이 떠나가실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나의 동생이 그렇게 덧없이 어린 숨결을 거둘 줄도 몰랐고, 엄마가 광인이 되도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줄도 몰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깊고 소중한 찰나라는 사실도 까맣게 게 모른 채 그저 신명 나게 손바닥이 부풀도록 박수만 치고 있었다. 지금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이 한 몸을 던질 것이라 약속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나는 몸을 던져 그들을 지켜야 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잃어갔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나의 사랑하는 이, 나의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350-351)"


엄마를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동구의 바람이 닿기라도 한 것인지 꿈 속에서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을 만나고 엄마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와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할머니의 기이한 행동과 말은 기대할 희망이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은 동구로 하여금 일생의 결단을 내리게 해준다. 할머니의 고향으로 떠나기 전 겨울을 보내며 아름다운 정원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구에게 죽을 줄만 알았던 금빛 가슴 털을 가진 야윈 곤줄박이와의 의 조우는 동구의 삶에 닥친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동구에게는 여전히 살아갈 날이 있다는 그래서 희망해야 한다는 정원의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영주는 우리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애정 표현이 자유롭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벌리는 팔과 그 아이가 내미는 입술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아이를 통하지 않고는 웃지도, 이야기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 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는 교차로를 지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321)"


#심윤경 #나의아름다운정원 #한겨레출판 #제7회한겨레문학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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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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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었다. 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작별 선물', '푸른 들판을 걷다', '검은 말', '삼림 관리인의 딸', '물가 가까이', '굴복', '퀴큰 나무 숲의 밤' 이렇게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 6편이 모두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10년 전의 여행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8월 말이었음에도 반팔만 입고 다닌 날은 하루나 이틀 정도의 낮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저녁에 되며 긴팔 하나로는 부족해 겉옷을 둘러야 했고 새벽에는 추워서 잠이 깰 정도였다. 그래도 더블린의 트리니티대학교와 기네스팩토리를 방문하고 코크 가는 길에 들른 블라니성까지는 날씨가 꽤나 좋았는데 골웨이에서는 거의 내내 비가 내렸었다. 특히나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는 모허 절벽 앞을 서성이는 듯한 주인공의 묘사가 나와서 비바람과 싸우며 간신히 내려다봤던 골웨이의 명소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의 기후와 지형이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많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높은 산이 없고 구릉지와 같은 들판이 무척 넓게 펼쳐져 있어서 꼬불꼬불한 길을 차로 달리면 그야말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의 표지에 나온 것처럼 아주 너른 들판에 외롭게 있는 집들이 그림같이 놓여 있지만 막상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건 정말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내가 갔던 때가 가장 날씨가 좋은 시기였음에도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려서 그런지 골웨이에서는 계속 축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린에서 숙소로 머물렀던 수도원의 층간방은 아주 검소한 수도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식당에 있는 화목난로를 보니 겨울에는 진짜 장난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에 추위에 엄습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훨씬 높다보니 심지어 썸머타임까지 적용하기에 여름에는 거의 9시까지 해가 떠 있지만 겨울이 되면 오후 3시만 되면 어두컴컴해진다고 한다. 더블린에서 공부하던 친구는 추위와 비는 그래도 견딜만 한데 겨울의 밤이 너무 길어서 우울증이 올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해만 나면 미친듯이 벗어 째기고 일광욕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영국도 마찬가지지만 아일랜드에서도 펍 문화를 논하지 않을 수 없는데, 비도 많이 내리고 우중충한 날이 지속되거나 밤이 긴 겨울이 시작되면 야외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렇게 펍에 모여들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펍에는 당연히 소설 속에 나온 것처럼 술에에 취하기 위해서 모이는 염소 똥 냄새를 풍기는 거친 남자들의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가족단위로 방문해서 아이들과 함께 오락을 즐기는 장소라고도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에서는 펍으로 시작해서 펍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여행 코스이다. 맥주와 위스키의 나라라서 그런지 어딜가나 생맥주의 맛은 끝내주고 아마도 추위를 이기기 위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위스키가 들어간 커피 또한 유명해서 한 잔 마시면 시뻘건 얼굴로 시내를 종횡무진할 수 있다. 근데 커피에 위스키를 정말 아낌없이 넣어주는 것 같다. 


아일랜드 갬성은 이만 떠올리고 소설 속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7편이 다른 주제와 인물들이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키건만의 독특한 문체가 느껴진다. 독자로서는 단숨에 몰입하기에 조금 불편한 생략과 건너뜀이 반복된다. 장편과는 다르게 단편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의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사건이 진행되는 것만 같다. 애써 이런 내용이 아닐까 짐짓 가상의 무대를 떠올려보다보면 갑자기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특히나 이번 단편의 주인공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소소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다 사라져버렸다면 조금 덜 빈 마음이 들었을텐데,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상처는 너무 깊었다. 심연을 녹여버릴만큼, 모허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자식들을 다 내팽겨치고 도망치고 싶을만큼 회복되기 힘든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겨울이면 좀처럼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추위와 눅눅함을 그나마 견디게 해줄 따뜻한 난로를 채울 장작마저 부족한 나날이 지속된다면, 푸른 들판의 외딴 집에서 보낼 혼자만의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술을 마시고 우연히 만나게 된 이웃 사람에게 쉼없이 다른 사람의 험담을 들추며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사러 시내를 나가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을 헌신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그럼에도 푸른 들판의 삶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클레어키건 #푸른들판을걷다 #WalktheBlueFields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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