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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찰란 피크닉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5
오수완 지음 / 민음사 / 2024년 8월
평점 :
오수완 작가의 [아찰란 피크닉]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45번째 작품이다. 2100년이라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아찰라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십대 청소년들이 종평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피라미드 안으로 입성하기 위한 마지막 피날레인 피크닉을 향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피라미드인 헤임에 들어가기 위한 '종합 적합도 평가'이라는 이름의 최종 시험은 마치 우리나라 현실의 입시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소설 속 배경과 설정은 모두 가상의 미래를 가정한 상상의 산물이지만 계속해서 읽다보면 이건 꾸며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우리 삶의 현실을 민낯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입시를 앞둔 시기에 학교에서 성적으로 우열을 매겨 특별반을 편성했던 기억이 난다. 전교 등수를 기준으로 소수의 학생들만을 모아 방과 후에 따로 수업을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학교의 명예가 무엇보다고 중요하게 여겨졌기에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특혜를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은 공교육의 장에서 그런 차별적인 구분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이미 사교육 시장이 너무나도 확고하고 두드러져 쪽집게 도사가 있는 좋은 학원을 다니며 되는 일이기에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대학은 출세를 위한 아주 기초적인 스펙으로 인정되지만 안정되고 높은 보수를 보장하는 좋은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기에 대학 졸업 이후에도 거쳐야 할 과정은 피라미드처럼 높고 가파르기만 하다.
아찰라 공화국은 이미 예견되고 있는 것처럼 전쟁과 환경오염과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인 재편이 이루어진 나라의 형태이다. 아찰라 안에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헤임이라는 피라미드가 존재하고 헤임에 들어가진 못한 이들은 그나마 장벽의 보호를 받으며 언제 아찰이 될지 모르는 운명을 안은 채 살아간다. 아찰이 된다는 것은 몸에 생긴 종양이 늘어나 종국에는 몸의 크기가 커지고 살이 터지는 끔찍한 변화를 거듭하여 아찰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쫓겨나게 되고 경비대의 감시에 놓이게 된다. 아찰이 된 이후에는 인간과의 적절한 소통은 불가하며 인간에게 공격적일 수 없다. 아찰 중의 과거의 악한 일로 수라가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수라는 경비대를 공격하는 폭력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소설 속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아찰란 공화국에서 최종 종평을 앞둔 7명의 아이들이 한 명씩 소개된다. 마치 현실의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는 것처럼 종평에서 1등을 한다면 꿈에 그리던 헤임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얻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아이들은 목숨을 건 레이스에 돌입한다. 이미 종평 등수가 좋지 않아서 애초에 포기해버린 아이들도 있지만 7명의 아이들은 피라미드를 오르는 피크닉이 다가올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란, 요제, 네즈, 디본, 카렐, 히에, 이투 이렇게 7명의 소년 소녀들은 낯선 이름을 가진 먼 미래의 가상 인물처럼 들리지만 실상 이들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고민하고 갈등하다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은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7명의 사연과 사건들을 묘사한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청소년 소설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지만, 이들의 고민은 결국 경쟁사회에 길들어져 무엇인 문제인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무한 질주해온 기성세대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나 7명의 아이들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종양이 늘어나 갑자기 아찰이 된 이후의 변화는 점점 심각해지는 계급의식과 종적으로 나는 특별한 그룹에 속해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어떤 차별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오래전에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몹쓸 병에 걸린 멀리해야 할 천한 이들로 바라보았던 비열한 시선처럼 오늘날에 이르러 아이들의 시선에는 새로운 기준법이 생겨나고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여 아찰처럼 거리를 헤매는 이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몰아넣고 피라미드처럼 더러운 공기는 한 줌도 머물 수 없는 청결한 공간에서 고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들의 무한경쟁터가 더 이상 소설 속의 가공한 무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피크닉이 시작되어 피라미드를 오르는 7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앞지르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다가 갑작스레 경보가 울리며 수많은 아찰들이 나와 피라미드의 유리를 몸으로 닦는 모습을 보게 되고 공격적인 성향의 수라가 나타나 피크닉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카렐과 이투는 수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달려들지만 수라의 엄청난 파워를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으로 인해 무조건 종평 1등을 받아 헤임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의 최종 목적으로 생각했던 철옹성 같은 이기심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피크닉을 통해 7명의 아이들은 반드시 누군가를 이기고 위에 올라서야만 성공한 삶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임과 아찰라에 머무는 이들을 구분짓는 피라미드와 아직 종양이 나타나지 않아 일반 시민의 삶을 사는 이들과 아찰이 된 이들을 구분짓는 구역과 최종적으로 장벽이라는 울타리로 아찰라 공화국 모든 이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심각히 기울어진 편협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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