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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었다.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이다. 지금쯤 동구는 중년의 트럭운전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박영은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날을 꿈꾸지 않을까란 저자의 말이 남긴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칭송하고 부러워하며 소수의 그들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것 같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반드시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남들보다 운이 좋아서 거기에 개인적인 노력이 더해져 보통 사람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서 타인에게 빚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전문직종에서 탁월함을 보인다거나 특출난 사업수완을 발휘해 대성공을 거두는 이들을 보고 막연히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게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동구는 난독증이라는 언어 장애를 갖고 있다. 열심히 치료를 받고 노력한다면 분명 나아지겠지만 당소설의 배경인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능력결여로 비춰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동구의 남다른 재능은 그의 심성에 있었기에 그와 아주 오랜 시간을 을 함께 보내며 유심히 지켜보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보속 같은 마음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동구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신나게 뛰어놀기를 좋아하지만 동구가 사는 윗마을의 초입에 있는 3층 집의 아름다운 정원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유일한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6살 터울의 여동생의 이름을 짓게 되는 순간부터 동생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표현하는 동구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여동생에게 쏠리는 것에도 전혀 질투하지 않는 또 하나의 부모처럼 행동한다.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여동생에 대한 동구의 아낌없는 배려와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여동생 영주가 동구의 담임 선생님께 드릴 카스텔라를 망치기 위해서 반죽그릇에 석회가루를 뿌렸을 때에도 동구는 행여나 영주가 혼날까 싶어 그릇을 바지 위에 뒤엎는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엄마에게 직살나게 얻어터지면서도 절대로 영주가 그런거라고 핑계를 대지 않는 대인배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에 반해 동구와 영주의 할머니는 대체 사람의 심술보가 얼마나 더 악해질 수 있는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동구의 엄마가 안쓰러워서 차라리 갈라서는 것이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혹독했다. 일상다반사가 욕과 비속어를 썩어 동구의 엄마를 비난하기를 반복하는 시어머니와 매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 아니었을까? 남편마저도 아내를 위로하고 어머니의 심술을 중재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아내를 무시하고 복종하기를 강요하다 폭력까지 휘두르는 상황에서 그냥 참고 사는 것이 통념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동구와 영주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구는 아주 어린 나이이지만 엄마의 힘든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으며 할머니와 아버지의 잘못된 처신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괴팍스러운 성격과 말 때문에 바람잘날 없는 동구의 일상에서 3학년 2학기에 새로운 박영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면서 놀라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국민학교에서 촌지를 준 부모의 아이에게 유독 관심과 편애를 일삼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했었다. 동구가 4학년이 되어 만난 오파리 같은 최악의 선생님은 학교마다 있었을 테지만 훈육이라는 미명하게 폭력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체벌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시대였기에 무조건 참을 수 밖에 없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박영은 선생님처럼 존재감이 거의 제로였던 동구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의 마음 속에 있던 보석 같은 심성을 알아채어 동구의 부모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난독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만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구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은 날이갈수록 커지고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매번 시험을 망치고 부모님에게 혼이나던 암흑기를 벗어나 그야말로 동구 가족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동구가 선생님 보낸 편지를 부모님 앞에서 자랑스럽게 읽던 장면에서 너무나도 기뻐 감동한 엄마가 동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박영은 선생님의 비극적인 실종과 여동생 영주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이어지며 자식 잡아먹은 년이라 막막을 퍼붓는 할머니의 폭언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급박한 전개에 가슴이 턱턱 막혀와 동구네 가족이 견뎌야 하는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이 되지 않았다.
박영은 선생님을 그리고 여동생 영주를 떠나보내고 엄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동구는 그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만 있다면 자기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애절함은 비단 동구만의 아픔이 아닌 우리 모두가 돌아가고 싶은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였던가. 엄마와 영주가 학교로 찾아왔던 그날. 선생님은 칠판에 예쁜 글씨를 쓰셨고 지저귀는 어린 새 같은 영주는 배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그 글씨들을 읽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고 엄마는 교실 문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누르며 겸손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던 행복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훗날 박 선생님이 나에게 그렇게 큰 은혜만을 베풀고 자취 없이 떠나가실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나의 동생이 그렇게 덧없이 어린 숨결을 거둘 줄도 몰랐고, 엄마가 광인이 되도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줄도 몰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깊고 소중한 찰나라는 사실도 까맣게 게 모른 채 그저 신명 나게 손바닥이 부풀도록 박수만 치고 있었다. 지금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이 한 몸을 던질 것이라 약속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나는 몸을 던져 그들을 지켜야 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잃어갔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나의 사랑하는 이, 나의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350-351)"
엄마를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동구의 바람이 닿기라도 한 것인지 꿈 속에서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을 만나고 엄마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와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할머니의 기이한 행동과 말은 기대할 희망이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은 동구로 하여금 일생의 결단을 내리게 해준다. 할머니의 고향으로 떠나기 전 겨울을 보내며 아름다운 정원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구에게 죽을 줄만 알았던 금빛 가슴 털을 가진 야윈 곤줄박이와의 의 조우는 동구의 삶에 닥친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동구에게는 여전히 살아갈 날이 있다는 그래서 희망해야 한다는 정원의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영주는 우리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애정 표현이 자유롭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벌리는 팔과 그 아이가 내미는 입술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아이를 통하지 않고는 웃지도, 이야기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 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는 교차로를 지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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